[니가 사는 그책] 탄알처럼 날아와 심장에 꽂히는 소설들
[니가 사는 그책] 탄알처럼 날아와 심장에 꽂히는 소설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15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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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언어는 장전된 권총과도 같다.”(words are loaded pistols) 생전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참여했던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장전돼있고, 독자에게 쏘아진다. 그것이 독자의 심장을 관통했다면 세상은 변화한다. 

잘못된 점을 꼬집어 사회 변화의 선두에 서는 문학이 참여문학이라면, 지금 서점에는 장전된 총과도 같은 책이 소설 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 장탄 수 일곱 발짜리 리볼버, 특별 보급가로 1년 동안 가격은 단돈 5,500원.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문학동네)이다. 소설들은 여성(3편), 낙태(1편), 장애인(1편), 성소수자(2편) 문제에 목소리를 낸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강화길은 대상 수상작 「음복」에서 결혼 후 첫 시댁 제삿날 풍경을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로 그려낸다. 소설은 고모가 시댁의 악역을 맡은 이유를 파헤치는 ‘후더닛’(범인이 누구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서사) 구조를 탁월하게 감춰놓는데, 이 소설에서 범인은 다름아닌 가부장제와 남성들이다. 

화자는 고모를 보고 역시 집안의 악역이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결국 고모를 이해하게 된다. 고모와 어머니는 가부장제 착취 구조의 피해자였으면서도 평생 이해와 희생을 강요받았지만, 집안의 남성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여성주의 문학이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이 겪는 피해에 집중했다면, 「음복」은 여성이 당하는 피해를 모르는 남성들을 겨냥한다. 왜 여자의 적은 여자가 됐고, 왜 여성은 남성보다 속이 좁은 것으로 인식되는가. 남성은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고, 따라서 이러한 남성의 무지는 권력이다. 평론가 오은교는 이를 “가부장제라는 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매끈하게 만드는 모든 지저분하고 치사한 인식, 행위, 감정노동들을 여성들이 도맡고 있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선생님이 젊은 여자 강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희원은 십 년 전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여성 강사가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얼어붙는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나도 변화하지 않는 공고한 성차별을 용산 참사와 연결한다. “빛나던 젊은 강사였던 그녀가 더 이상 내가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동안에도 그곳은 여전히 빈터였다. 나는 이제 그곳을 피해 지나가지 않는다.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내쫓느라 그렇게도 분주하고 그렇게도 가혹했던 마음이 어디로 가지 않고 여전히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임신중지가 언제나 예외 없이 한 여성의 절실한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라는 고정관념은 그것이 항상 절박한 상황에서 절박하게 취해져야만 하는 조치처럼 여겨지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논리 끝에 임신중지가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로만 가정된다면 우리의 주체성은 지워질 것이며, 타인의 선의에 의해 구조받는 나약한 존재로만 재현될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에서도」의 화자인 산부인과 의사 지수는 이렇게 쓴 칼럼을 끝내 발표하지 못한다.

작가 이현석은 작가노트에서 에리카 밀러의 『임신중지-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를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여성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욕망으로서 모성이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결정(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고 한 해가 지난 지금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은 작년 4월 15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부 개정 법률안이 유일하며 집권 여당이나 제1야당 소속 의원의 이름은 공동발의자 명단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조용한 외면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많은 사람들이 끝났다고 여겼던 이 싸움은 사실,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작가 김초엽은 SF소설 「인지 공간」에서 공동체의 사고를 관장하는 독특한 ‘인지 공간’을 보여준다. 이 공간은 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평균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데, 몸이 약해 인지 공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는 도태되고 잊힌다. 여기서 인지 공간은 곧 장애인을 배제하는 비장애의 공간을 상징한다. 

김초엽은 작가노트에서 “장애학에서는 몸의 손상이 장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 특정한 형태의 몸에 맞춰 설계된 세계가 어떤 종류의 몸을 장애화한다는 것”이라며 “그 강력한 아이디어를 접한 이후로, 소설 속의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접근 가능한 미래’가 있는지 묻게 된다. 기술이 약속할 미래는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동시에 접근 불가능한가.” 

작가 장희원은 「우리의 환대」에서 가족을 떠나 호주로 간 성소수자 영재를 방문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그리는데, 작가는 이 방문의 과정에서 흔히 우리가 축사(畜舍)로도 부르는 ‘우리’와 가까운 이들을 이르는 ‘우리’를 상징적으로 대비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행당했던 영재가 사는 호주의 풍경과 영재와 함께하는 호주 사람들은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할 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쓰러질 만큼 달콤하다. 영재는 가족이라는 우리(畜舍)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진정한 ‘우리’에게로 갔기에 행복하다. 독자는 성소수자에게는 어째서 어떤 곳은 지옥이며 어떤 곳은 천국인가를 묻게 된다.

이 외에도 김봉곤의 「그런 생활」은 성소수자를, 장류진의 「연수」는 여성을 대변한다. “문학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잘못이다”라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르트르가 생각난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수상작 모두가 탄알처럼 날아와 심장에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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