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평행이론
『녹나무의 파수꾼』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평행이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20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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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달 17일 발행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이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단지 이 책이 두껍기(556쪽) 때문이다. 다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렇기에 입소문이 퍼지는 속도도 느렸을 것이다. 다소 장황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 소설은 흠을 찾기 힘든데, 특히 ‘파수꾼’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은 J.D.셀린저의 명저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오르게 한다. 두 소설은 모두 ‘순수성의 보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거대한 녹나무 안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의식(‘예념’과 ‘수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예념은 일종의 유언을 남기는 행위이고, 수념은 그 유언을 받는 행위다. 예념을 하고자 하는 이가 그믐달 밤에 남긴 예념을 수념자가 보름달 밤에 수념한다. 수념자에게는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 예념자와 한 핏줄이어야 하고, 예념자에 관한 추억이 풍부해야 한다. 

글로 쓴 유언과 달리 예념은 수념자에게 예념자의 신념을 온전히 전달한다. 녹나무의 마법은 예념자의 생각과 마음을 “통째로 드러내” 수념자에게 전달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념이나 잡념, 좋지 않은 생각, 악감정 등 역시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사람은 예념하기를 꺼리고, 떳떳한 사람은 자신의 ‘순수한 신념’을 온전히 후대에 전달한다. 

예념과 수념을 중심 소재로 하는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고객을 위한 야나기사와 치후네의 순수한 경영이념을 대대로 보전하려는 이야기, 그리고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알코올 중독자가 돼 사망한 사지 기쿠오의 순수한 사랑을 가족이 수념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가족들이 순수성을 수념하기 위해 노력하며 벌어지는 일들, 느끼는 감정들을 그린다.   

그런데 이 소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오르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소설의 제목에 ‘파수꾼’이 붙어서가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 나오이 레이토는 녹나무가 있는 월향신사를 지키며 ‘녹나무의 파수꾼’(クスノキの番人)으로 불린다. 그런데 ‘파수꾼’이라는 직함과 순수한 신념의 전승을 보전하는 그의 역할은 어쩐지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를 떠오르게 한다. 콜필드 역시 순수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콜필드가 순수하지 못한 세상에서 방황하며 구토감을 느끼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콜필드는 속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해 다니던 고등학교를 때려치우는데, 전학 간 새로운 학교 역시 전에 다니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다시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난다. 가령 새로 전학 간 학교의 광고에는 언제나 영국 귀족들의 놀이인 폴로 경기를 하는 사진이 들어가는데, 그 고등학교에는 폴로 경기는커녕 말 한 마리도 없다. 광고에는 “1888년 개교 이래 본교는 언제나 두뇌가 명석하고 우수한 청년들을 양성해 왔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는데 콜필드는 학교에 명석하고 우수한 청년이 많아 봐야 두명 정도임을 생각하며 ‘양성’이라는 단어를 기만과 사기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학생들은 속물주의와 패거리문화에 젖어있었으며, 학교 밖 세상 역시 허위와 위선을 넘어 적나라한 폭력의 전시장이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서부로 떠나고자 하는 콜필드는 마지막으로 여동생 피비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가는 길에서 여러 차례 어지러움과 구토감, 살인충동을 느낀다. 피비의 학교 벽에 외설스러운 욕이 적혀있고, 피비와 만나기로 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집트 무덤에조차 상스러운 낙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문명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의 순수성을 모독하는 행위를 상징한다. 콜필드는 피비를 비롯한 순수한 아이들이 그 낙서들을 볼까 두려워 낙서를 지워보지만, 칼로 새겨진 것들은 지울 수 없음에 분노한다.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레이토가 파수꾼일을 받아들인 것처럼, 콜필드는 결국 서부로 떠나지 않는다. 동생을 만난 후 동생의 순수성을 곁에서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비가 “오빠는 무엇이 되고 싶어?”라고 묻자 그는 아이들이 호밀밭에서 놀다가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돌보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그 의미는 세상의 허위와 기만, 위선으로부터 아이들이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지키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론가들에 따르면,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진보주의라는 순수성을 억압했던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보전하고자 하는 순수성이 젊은 세대에게 있느냐(『호밀밭의 파수꾼』) 기성세대(『녹나무의 파수꾼』에게 있느냐만 다를 뿐 두 소설은 이렇게 ‘순수성의 파수꾼’에 대한 이야기다. 한편, 두 소설은 결말조차 비슷하다.  

“그토록 큰 공적을 여러분은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어요.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세대교체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는 나이 들어 늙습니다. 하지만 공로자가 남긴 공적까지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요? 야나기사와 가의 염원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그걸로 야나기사와 그룹이 앞으로도 번창할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정말로 그래도 괜찮습니까?”(521쪽) 레이토의 분노에 찬 말에 사람들은 “그래, 잘 들었어. 수고했네. 이제 만족했나?”라며 내던지듯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그리고 『호밀밭의 파수꾼』은 콜필드가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요양소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결국 콜필드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순수성을 지키려는 두 파수꾼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채로 두 소설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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