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한국의 J.K. 롤링 탄생? 『달러구트 꿈 백화점』
[니가 사는 그책] 한국의 J.K. 롤링 탄생? 『달러구트 꿈 백화점』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9.16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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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꿈을 사고파는 백화점이 있다면 어떨까? 잠에 빠진 순간 우리의 영혼이 그 백화점으로 가서 원하는 꿈을 고른다면, 그리고 그 꿈을 꾸고 느낀 감정을 조금 떼어내 꿈값으로 지불한다면… 이미예 작가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의 인기가 심상찮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이 나온다.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최근이지만, 소설의 인기는 1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저자는 1년 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의 펀딩을 진행했고 목표 금액의 1,812%를 달성했다. 당시에는 펀딩에 참여한 일부 독자들만 소설을 읽어 볼 수 있었지만, 지난 4월 출판사 쌤엔파커스에서 전자책으로 출간하면서 모두가 볼 수 있게 됐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이후 리디북스에서 4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종이책 없이 전자책만 출간된 책이 리디북스에서 1위에 오른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 소설은 독자의 요청 쇄도로 지난 7월 드디어 종이책으로 출간된 후 지난 7일 10쇄를 찍고 대형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참신하다. 꿈속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독특한 세계관은 국내외 판타지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다. 이 세계는 꿈을 만드는 제작자들과 꿈을 파는 상점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상점에는 손님의 눈꺼풀 무게를 재는 저울들이 있는데 이 저울의 눈금이 ‘렘수면’(수면의 여러 단계 중 꿈을 꾸는 단계)을 가리키면 어김없이 손님이 찾아와 꿈을 고른다. 엄밀히 말하면 찾아오는 것은 손님의 영혼인데, 이 영혼이 자신이 고른 꿈을 꾸고 다시 본인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세계에 빗댄다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해리포터』 같은 소설을 꼭 써보고 싶었다는 저자는 정말 『해리포터』에 등장할 법한 마법 같은 소재들을 펼쳐내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다. 그 소재들이 마법사의 나라가 아닌 꿈속 세계의 것이기 때문이다. 눈꺼풀 저울뿐만 아니라 잠옷을 벗고 다니는 사람들의 옷을 입혀주는 털북숭이 동물 녹틸루카, 손님의 꿈값을 정산하는 일종의 사물인터넷 기술 ‘드림 페이 시스템즈’, 꿈값으로 받은 감정의 권리를 주식처럼 사고파는 시장도 있다. 한편, 소재의 참신함은 일정 부분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한 저자의 독특한 경력 때문인 듯도 싶다.     

매력적인 소재와 세계관은 『해리포터』에 가깝지만,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섞어내며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구성은 J.K. 롤링보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슷하다. 특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떠오른다. 판타지적 공간인 나미야 잡화점을 방문한 사람들이 현실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고 위로받듯, 꿈속에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을 찾은 사람들도 막막한 현실을 해쳐나갈 용기를 얻는다.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보다 낫다. 전개가 다소 늘어져 읽다가 지친다는 비판이 있는 히가시노의 소설과 달리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전개는 속도감이 있다.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전형에서 탈피해 인기를 얻은 점도 눈여겨볼 만 하다. 아직까지 대한민국 대표 판타지라고 하면 『드래곤 라자』 『룬의 아이들』 『하얀 늑대들』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달빛조각사』 등 비슷비슷한 소설들이 꼽히고, 여타 인기 판타지 소설들도 비슷한 구성에 빌려온 세계관, 어느 게임에서 본 듯한 칼과 마법, 전투가 등장하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 처음으로 대형서점 주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든 한국 판타지 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김훈)은 여러모로 독특하기는 했으나 역시 전쟁 판타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이 오랫동안 그려온 ‘뻔한 환상’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선호하는 대중성 있는 판타지라는 점에서 귀하다. 

또한, 이 소설은 획일화된 국내 베스트셀러 소설 목록에 다양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가치 있다. 근 몇 년간 인기를 모았던 한국 소설들은 대부분 페미니즘 아니면 퀴어가 중심 소재였다. 그리고 베스트셀러 판타지 소설은 대부분 히가시노 게이고이거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몫이었다.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드디어 뭔가 ‘다른’ 한국 판타지 소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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