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니가 사는 그책]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2.02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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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6년 만의 단편소설집 『일인칭 단수』를 펴냈다. 이 소설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데는 그다지 많은 홍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 이름만으로 충분했다. 

이 책은 소설집이지만 에세이 같다. 수록된 일부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무라카미 하루키이며 몇몇 작품에는 그의 실제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에 독자는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이름을 알 수 없는 ‘나’) 역시 작가 자신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떤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썼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름을 걸었다”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가령 ‘OOO 칼국수’ ‘OOO 족발’처럼 그 문 앞에서부터 식당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식당들이 있다. 이 소설집에는 그러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돌려 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소설가들은 보통 자신이 아닌 주인공을 내세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돌려 말한다. 그래서 어떤 소설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늘 일정 부분 모호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곧 작가일 수도 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꽤 명확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이 소설집에서도 주인공은 평범한 일상에서 비현실적인 무언가, 혹은 일탈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그 ‘마주함’으로 인해 주인공을 둘러싼 현실은 기묘하게 바뀌고, 그 현실 속에서 작가는 깊은 사유를 이끌어낸다.

가령 「돌베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주인공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한 아르바이트생과 하룻밤 잠자리를 함께하게 된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느닷없이 같이 잠을 자길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햇빛 아래서 본 그녀는 주인공에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달빛 아래서 빛나던 그녀의 몸을 잊지 못한다.  

이후 주인공은 영영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었고, 어느 날 그녀가 손수 쓰고 엮은 가집(歌集)을 우편으로 받게 된다. “벤다/베인다/돌베개/목덜미 갖다 대니/보아라, 먼지가 되었다.” 만다라(색색의 모래로 공들여 그리고 흩어버리는 불화)와 같이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가 담긴 그녀의 단카(일본의 전통적 시가를 대표하는 단시)들이 수록된 가집. 주인공은 어쩐지 그녀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지만, 달빛 아래 그녀의 몸과 가집은 영원히 주인공의 마음에 남는다. 주인공은 이따금 그 가집을 읽으며 생각한다. “훗날에 남기기 위해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마음을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목을,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녀와의 하룻밤과 단카들은 기묘하게 어우러지며 깊은 사유를 엮어낸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재즈 애호가로, 대학 시절 전설의 색소폰 연주가 찰리 파커에 대한 글을 한 문예지에 게재하게 된다. 이미 오래전 사망한 찰리 파커가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라는 이름의 새 음반을 냈다는 상상의 글이었는데, 그로 인해 찰리 파커를 신성시하는 팬들에게 ‘쓸데없는 장난’ ‘분별없는 모독’이라는 식의 항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주인공은 뉴욕에서 실제로 그 가상의 음반을 발견하게 되고, 꿈속에서 찰리 파커의 감사 인사를 듣게 된다. “자네는 나에게 다시 한번 생명을 줬어. 그리고 내가 보사노바 음악을 연주하게 해줬지. 내게는 무엇보다 기쁜 경험이었어.”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와 마찬가지로, 「크림」과 「사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 주인공은 비현실적인 ‘만남’을 가진다. 「크림」에서는 마치 신선처럼 보이는 백발의 노인과, 「사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는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늙은 원숭이와 마주한다. 노인은 “중심이 여러 개이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과 같은 논리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유토피아나 신앙, 사랑 같은. 인간 여성들에게 연정을 품고 살아가는 늙은 원숭이는 플라토닉한 사랑의 아름다움과 그로 인한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누군가를 향한 하루키의 연애편지 같기도 하다.  

「사육제(Carnaval)」와 「일인칭 단수」에는 평범해 보였던 것들의 이면이 드러난다. 「사육제(Carnaval)」에서는 지적이며 품격 있는 한 여인이 사기꾼으로 밝혀진다. 로베르트 슈만의 ‘사육제’(Carnaval, 가면을 쓰고 하는 축제)를 주제로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 여인은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라고 말한다. 「일인칭 단수」에서는 느닷없이 주인공에게 악감정을 품은 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 여자는 주인공이 하지도 않은 일들로 그를 비난한다. “부끄러운 줄 알아요”라며 확신에 차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주인공은 세상을 낯설게 보게 된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보고 있고 믿고 있는 것들은 안전한가, 혹은 확실한가.  

하루키 특유의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도 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에서 주인공은 매번 지기만 하는 야구팀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하며 경기장에서 시를 쓴다. 외야수들의 엉덩이 생김새에 대해서, 일반인도 잡을 수 있을 공을 잡지 못하는 선수에 대해서, 매번 지는 팀을 응원하는 ‘우주 규모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시들을 엮어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을 자비로 300권 정도 출판한다(실제 하루키는 이 시집을 제작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 놀랄 만큼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이 시집을 소개하며 주인공은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한다. 팀이 지고 있을 때 시를 쓴 것처럼, 매번 지고 살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최대한 멋진 기억을 남기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는 것이다.          

한편, 이 소설집에는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음악들이 다수 담겨 있고, 그 음악들은 소설의 주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카를로스 조빔의 ‘Corcovado’와 비틀스의 ‘All my Loving’ ‘Hello, Goodbye’,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가 커버한 ‘A Summer Place’,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이 연주한 슈만의 ‘사육제’ 같은 팝과 클래식, 보사노바, 재즈 음악들. 음악을 배경에 깔고 소설을 감상하면 더욱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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