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늦가을, 가슴을 치는 시 한편
[니가 사는 그책] 늦가을, 가슴을 치는 시 한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1.04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가 늦가을에 우울한 이유는, 누렇게 빛바랜 잎사귀가 떨어지는 모습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그 낙엽(落葉)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무언가가 떠나고 있음이, 아니 사실은 계속해서 떠나고 있었음이 새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젊음이든, 청춘이든, 호시절이든, 행복이든… 잎이 떨어지기 시작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마음 챙김의 시』가 늦가을 인기를 얻고 있다. 시집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 10위권에 오른 일은 올해를 통틀어서 처음이다. 왜일까, 우선 이 시집은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통념을 부정한다. 

시집의 첫 장에서 앨런 긴즈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네가 그것들을 떠나보낸다 해도/그것들은 원을 그리며 너에게 돌아온다./그것들은 너 자신의 일부가 된다.” (「어떤 것들」) 샤메인 아세라파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뭇잎이 되라, 놓을 때가 되면 우아하게 떨어지는./원의 순환을 신뢰하라, 끝나는 것이/곧 다시 시작하는 것이므로.” (「정원 명상」)

원을 그리며 돌아와서 결국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떠나간 사랑이든 빛바랜 청춘이든 호시절이든, 어떤 것들은 세월이 흘러서도 문득 떠올라 웃음 짓게 한다. 떠난 것들이 잊히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정녕 떠난 것인가.

11월의 첫날, 거리에는 옛 유행가가 들려온다.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헤어지지 않으리.”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사랑이/떠나가는 날이/당신의 그 웃음 뒤에서 함께 하는데.”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유재하와 김현식의 노래. 노래를 흥얼거리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결국엔 돌아오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일부가 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늦가을에 우울한 이유는 또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들, 실한 열매를 길러낸 가느다란 가지들. 올해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배짱 있게 도전했지만 손에 쥔 것은 고통과 슬픔뿐이지 않는가. 그러나 시인들은 그 고통과 슬픔이 곧 ‘열매’라고 말한다. 고통과 슬픔이야말로 도전했기에 얻어지는 영광의 상처이고, 그 상처로부터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  

자넷 랜드는 말한다.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아무것도 하지 않고/아무것도 갖지 못하고/아무것도 되지 못하므로./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나/배움을 얻을 수도, 느낄 수도, 변화할 수도,/성장하거나 사랑할 수도 없으므로./확실한 것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와 같다./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직/진정으로 자유롭다.” (「위험들」) 

단지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말라고 시인들은 당부한다. 타일러 노트 그렉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당신의 나무가/얼마나 높이/올라갈 수 있는지./다른 누군가가/당신을 잘라 버리는 게 두려워/당신 스스로/꼭대기를 자르는 일을/멈추기만 한다면.” (「무제」) 하룬 야히아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세상 어느 곳으로도/날아갈 수 있으면서/새는 왜 항상/한곳에/머물러 있는 것일까.//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같은 질문을 던진다.” (「새와 나」)

그리고 ‘끝까지 가라’고 말한다. “만약 시도할 것이라면/끝까지 가라./이것은 여자친구와 아내와 친척과 일자리를/잃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어쩌면 너의 마음까지도./(중략)/고립은 선물이다./다른 모든 것들은 네가 얼마나 진정으로/그것을 하길 원하는가에 대한/인내력 시험일 뿐./너는 그것을 할 것이다,/거절과 최악의 상황에서도./그리고 그것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좋을 것이다.//만약 시도할 것이라면 끝까지 가라./그것만 한 기분은 없다./너는 혼자이지만 신들과 함께할 것이고,/밤은 불처럼 타오를 것이다.//하고, 하고, 하라./또 하라.//끝까지,/끝까지 하라.//너는 마침내 너의 인생에 올라타/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니,/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가장 멋진 싸움이다.” (찰스 부코스키 「끝까지 가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