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너의 죄는 행복하지 않은 죄’
[니가 사는 그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너의 죄는 행복하지 않은 죄’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9.09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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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015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두 번째 희곡이 국내 출간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네 인물의 대화로만 구성된 이 작품은 천상의 심판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심판 장면은 다소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 2013년 출간된 소설 『타나토노트』의 심판 장면을 확대한 느낌이며 그간 베르베르가 단골로 다뤄온 ‘전생과 환생’ 이야기다. 작가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죽음을 통해서 삶을 이야기하는데, 다만 어떤 작품에서보다도 명료하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한다.   

지상에서 판사였던 아나톨 피숑은 폐암으로 사망해 천상의 재판대에 오르게 된다. 판사는 천사 가브리엘, 변호사는 카롤린, 검사는 베르트랑이다. 심판의 결과는 오직 두 가지 중 하나다. 모든 기억을 잃고 타인으로 환생하게 되는 ‘삶의 형(刑)’이나 아나톨 피숑의 모습으로 천상에 남게 되는 것.  

지상에서 저지른 죄에 따라 천국에 남을지, 다시 인간의 삶을 살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 ‘죄’라는 것이 인간 세상의 기준이 아닌 천상의 기준으로 정해진다. 그 기준은 바로 “당신은 삶이 선물한 행복을 충분히 누렸는가?”라고 뭉뚱그릴 수 있겠다.   

“자, 영혼 번호 103-683에 대한 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마지막 육신, 그러니까 1947년 프랑스에서 출생해 2007년 프랑스에서 사망한 아나톨 피숑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피숑 씨, 가장 최근에 지상에 다녀온 소회가 어떤가요?” 판사 가브리엘의 질문에 피숑은 자신이 좋은 학생이자 좋은 남편, 좋은 직업인, 좋은 시민, 좋은 가장이었다고 답한다. 

실제로 그는 지상에서 5,281개의 선업을 이루었고, 나쁜 일은 거의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거지에게 적선했고, 시각 장애인이 길을 건너게 도와줬으며,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했다. 경찰 유족 아동 후원회 등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냈고 교통사고 부상자 두 명을 구조하기도 했다. 그는 판사로서도 ‘훌륭’까지는 아니어도 맡은 일을 성실히 했다. 그러나 그러한 선업들로 천상의 기준을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검사 베르트랑은 피숑이 그의 삶에서 충만한 행복들을 찾지 않았음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천생배필인 사람을 배우자로 고르려는 노력을 했어야죠.” 우선 그는 피숑이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상대와 되는 대로 결혼해 평생토록 아내에게 권태를 느꼈다고 비판한다. 자신에게 잘 맞는 배우자가 줄 수 있었던 행복을 차단한 채 살았다는 것이다. 베르트랑은 “그가 부정을 저지르는 게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변호사 카롤린은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혼외정사를 옹호하고 있어요!”라고 반박해보지만 판사는 “기각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여기서 우리는 지상의 도덕을 초월하니까요”라고 답한다. 

베르트랑은 심문을 이어간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대로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너는 단 하나의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너는 너의 재능을 어떻게 썼느냐?’ 당신은 재능을 어떻게 썼죠?” 그는 피숑이 대배우가 될 자질을 타고났고 누구보다 연극을 사랑했으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연극을 업으로 삼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또한, 피숑이 재능을 등한시함으로써 ‘위대한 러브 스토리’ 역시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만날 수 있었던 운명의 짝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짝과 완벽히 조화로운 커플을 이루며 함께 성장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둘의 인생 모두 불행해졌다고 베르트랑은 말한다.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베르트랑은 일갈한다. 

변호사는 더 이상 피숑을 변호하지 못하고, 가브리엘은 판결한다. “‘피고인이 자신의 재능을 망각했는가?’에 대한 답은 그렇다, 예요. ‘피고인이 위대한 러브 스토리를 그르쳤는가?’에 대한 답은 그렇다, 예요. (중략) ‘그는 옳은 배우자를 찾았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예요. (중략) ‘피고인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예요. 따라서 피고인 아나톨 피숑을 삶의 형에 처합니다.” 

가브리엘은 ‘삶의 형’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형벌은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누릴 기회’다. 이 희곡에서 지상의 행복은 다소 지루한 듯 보이는 천국에서의 삶보다 더 좋게 그려진다. 실제로 희곡의 마지막에는 가브리엘이 판사복을 벗어 던지고 지상의 삶으로 뛰어든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는 육화(肉化)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고동치는 심장, 송송히 맺히는 땀, 입 안에 고이는 침, 자라나는 머리카락…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을 나눌 때의 기쁨. 뛸 때 두 다리에 팽팽히 힘이 들어가는 느낌, 선들선들하는 바람,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 태양, 젊음, 심지어 노화마저도.” 당신은 삶이 주는 행복을 충분히 누리고 있나요? 이것이 베르베르가 『심판』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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