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결과 or 태도’… 당신 삶에 던져진 묵직한 돌덩이
[니가 사는 그책] ‘결과 or 태도’… 당신 삶에 던져진 묵직한 돌덩이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7.2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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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1965년 미국에서 발행된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가 2020년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소설은 그 이름에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제목인 ‘Stoner’(스토너)는 주인공인 윌리엄 스토너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 Stone(돌)이 들어간 것처럼 윌리엄 스토너는 돌과 같은 삶을 산다. 돌이 항상 그 모양을 단단하게 지키듯 그는 온갖 세파에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며 지독하게도 성실히 살아간다. 

소설의 플롯은 단순하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가 농사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주리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영문학에 눈을 떠 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리고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과 학교생활, 학과장과의 갈등을 겪다가 암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스토너의 지질한 삶이 아닌 그가 계속해서 유지해온 한결같음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농사를 지어 열일곱 살에 이미 어깨가 구부정해지기 시작한 스토너는 대학 입학 후에도 어머니 사촌의 집에서 힘들게 일하며 짬을 내서 공부한다. 고단할 만도 하지만 그는 공부 역시 농장 일을 할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한다. 

소설의 발단은 스토너가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시를 듣고 충격을 받아 영문학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이때부터 농과대 강의를 줄이고 영문학과 수업을 위주로 듣게 되는데,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진 공부에 결코 편법을 쓰지 않는다. 

작가는 그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수면 부족과 과로로 눈이 빨갛게 충혈돼 따끔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몇 년 전의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면 마치 낯선 사람 같아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결국,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한때 그를 폄하했던 깐깐한 교수의 눈에 들어 교육자의 길(대학원 입학)로 접어들게 된다. 

스토너에게 깃든 단단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상징하는 장면이 있다. 스토너가 졸업 후 대학에서 배운 농사기술로 형편이 어려운 집안일을 도울 것이라 기대했던 아버지는 스토너가 계속 공부하겠다고 말하자 결코 들뜨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다. 작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버지는 거듭된 주먹질을 받아들이는 돌덩이처럼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스토너가 말을 마치자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한다. “네 생각에 꼭 여기 남아서 공부를 해야겠거든 그렇게 해야지. 네 어머니랑 나는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 이것이 아버지 스토너에게서 아들 스토너로 이어지는 단단한 삶의 태도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등 상황이 급변해도 스토너는 한결같다. 그는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학교에 일어나는 비이성적인 광분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학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친구들은 들뜬 증오와 세속적인 성공에 이끌려서, 혹은 단지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지만 스토너는 그런 가벼운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진중하고 깊게 고민한 후, 추후 비판받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영문학을 위해 학교에 남기로 결심한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삶은, 그러나 스토너의 삶을 처량하게 만든다. 그는 이디스와 결혼하는데, 이디스는 점점 자신의 모든 불행을 스토너의 탓으로 돌리고 스토너를 못살게 군다. 특히 많지 않은 월급과 함께 스토너의 융통성 없는 행동들은 이디스에게 무능으로 비춰진다. 자신의 비꼼에 화 한번 내지 않고 그저 돌덩이처럼 담담히 받고만 있는 스토너에게 이디스는 더욱 모진 말과 행동을 퍼붓는다.

신임 학과장과의 갈등 역시 그의 삶을 평생토록 고단케 한다. 학문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화려한 언변으로 학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이유 모를 증오로 가득 찬 한 학생(워커)에게 낙제점을 준 것이 발단이었다. 문제는 이 학생이 학과장의 애제자였다. 스토너는 학과장의 정치적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학과장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스토너는 암으로 죽을 때까지 불편한 시간표와 변변치 않은 수업을 맡아가며 외롭게 늙어간다. 한때 그를 존경하던 학생들은 학과장의 눈 밖에 날까 봐 스토너를 멀리한다.  

제삼자가 보기에 스토너의 삶은 처량하기 그지없지만 스토너는 죽어가면서도 결코 자신의 삶을 슬픔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는 삶의 마지막에 이렇게 자문한다. 그리고 자신의 숱한 실패를 돌아보며 하잘것없다고 여긴다. 그가 겪어온 숱한 실패는 그가 고수해온 삶의 태도와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인가 삶의 태도인가. 독자 역시 스토너의 삶이 그를 괴롭혔던 모든 것들과 비교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소설의 제목인 ‘Stoner’에는 ‘돌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 소설은 독자에게 돌처럼 묵직한 스토너의 삶을 던지고, 독자는 마치 돌에 맞은 사람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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