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역사는 ‘땅’이 움직인다… ‘지리결정론’ 유행하는 이유
[니가 사는 그책] 역사는 ‘땅’이 움직인다… ‘지리결정론’ 유행하는 이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29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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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은 기술이 인류 역사를 움직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진부한 ‘기술결정론’이 지배하는 서점가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리’가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기술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소위 ‘지리결정론’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상하는 도구는 줄곧 기술결정론 하나였다. 가령 책 『초예측』에서 유발 하라리가 “20세기에는 전기, 무선, 기차 자동차 등이 사회를 바꾸고 정치를 움직였습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학이 그 역할을 하고 있고요. 그 발전 정도에 따라 정치 구조 역시 극적으로 바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터넷, 블록체인, 인공지능… 파급효과가 큰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서점가에는 그에 관한 책이 쏟아졌다.   

특히 최근 이러한 기술결정론의 주인공은 인공지능이었다. 인터넷이 사회 전반을 바꿔버렸듯, 인공지능 역시 인간이 관여할 틈을 주지 않고 빠른 속도로 사회를 뒤집을 것이라는 두려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실업자를 양산할 것이며, 미래에는 99%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낮은 계급에 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출간되는 대부분의 책에 담겼다. 

그런데 『지리의 힘』의 저자 팀 마샬은 이렇게 공고한 기술결정론을 제쳐두고 ‘지리’를 앞세운다. 마샬은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전쟁, 권력, 정치는 물론이고 오늘날 거의 모든 지역에 사는 인간이 거둔 사회적 발전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이뤄졌다”며 “물론 현대의 기술이 정신적, 물리적 거리를 어느 정도는 줄여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게 있다. 지구라는 행성의 70억 인구에게 주어진 선택들은 늘 우리를 제약하는 강과 산, 사막과 호수, 그리고 바다에 의해 어느 정도는 결정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마샬은 인간이 지금까지 설명·예측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국제관계를 설명·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가령, 그에 따르면 티베트와 중국의 분쟁은 필연적이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는 히말라야산맥이 천연의 만리장성처럼 가로막고 있는데, 만약 중국이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티베트고원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인도가 중국의 심장부로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전초 기지를 확보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티베트를 통제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족의 이주를 권장할 것이며, 한족에 대항하며 일어나는 봉기들을 엄격하게 탄압할 것이다. 중국의 티베트 탄압은 분명 인권유린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 티베트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9년 대규모 민족 분규를 잔인하게 탄압했던 신장 지역 역시 비슷한 지정학적 이유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남중국해를 공유하는 나라들(말레이시아, 대만, 베트남, 필리핀, 브루나이, 일본 등)과 중국의 갈등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이 국가들과 200개가 넘는 작은 섬과 암초를 두고 각축하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 이곳의 해상항로를 통제하지 못하면 태평양으로 진출하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원료를 수입하기 어렵고, 둘째로 전시에 중국이 봉쇄돼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남중국해 갈등은 경제·안보적으로 볼 때 필연이다.        

『지리의 힘』은 이 외에도 ▲미국이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유럽이 분열하는 이유 ▲한국에 사드가 배치된 이유 ▲파키스탄보다 인도가 더 빨리 성장하는 이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피의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 ▲세계가 남극이 아닌 북극을 주목하는 이유 등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지리를 통해 풀어낸다.   

한편, 『지리의 힘』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이유는 단지 지리결정론이 참신하기 때문은 아니다. 『지리의 힘』 인기의 또 다른 키워드는 최근 서점가를 지배하는 ‘이해 열풍’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 ▲데일 카네기의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문학동네의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등 대형 서점 주간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위치한 대부분의 책이 ‘이해’를 주제로 하는 상황에서 『지리의 힘』이 또 다른 ‘이해’를 만든 것이다. 중국은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하는가? IS는 왜 테러를 벌이는가? 세계 곳곳에서는 왜 아직도 피바람이 부는가? 등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던 문제들을 지리라는 도구로 풀어내는 이 책은 타인을 넘어 세계를 이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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