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바티칸 변호사 한동일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니가 사는 그책] 바티칸 변호사 한동일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9.0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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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2001년 30세의 나이에 로마로 건너가 교황청에서 설립한 라테란대학교 석·박사 과정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2010년 동아시아 최초로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930번째 변호사가 된 한동일. 

법 자체만으로도 어려운데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로 법을 공부해서 합격률 5~6%에 불과한 변호사 자격을 땄다고 하면 으레 대단한 천재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동일은 한국에서 그다지 성적이 좋지도 못했으며 로마에 첫발을 디딜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어와 라틴어 초보자였다. 첫 몇 년간은 수업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는 그는 책 『한동일의 공부법』에서 대업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한다. 그는 ‘공부 방법’이나 ‘공부 기술’을 다루기보다는 공부의 ‘목표 설정’과 ‘가치 추구’ 같은 거시적인 공부법을 이야기한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

낯선 언어로 법을 공부하며 고작 용어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던 한동일은 자신의 공부를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명백한 사실 하나를 이야기한다. ‘공부에 정도는 있어도 왕도는 없다.’ 한동일은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미련하게 공부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때는 그보다 더 효과적이고 수월한 방법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며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방법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한동일은 누군가 공부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그저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답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될 때까지, 외워지지 않는 것은 외워질 때까지 매달리는 것이 공부의 유일한 답이라는 것이다. 특히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공부하는 등 가장 지루하고 힘든 과정인 ‘기초를 쌓는 단계’에서 정도를 걸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겹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공부의 초기 과정에서 좌절하고 포기하지만, 어느 분야에서나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어렵고 지루한 단계를 극복해야 한다.

‘습관’ 먼저 만들어라

공부는 단거리 질주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공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는 무조건 정해진 양을 읽는다는 식으로 목표를 세워야 한다. 한동일은 “몸은 서서히 익숙해진다”며 “그동안 불규칙하게 되는 대로 시간을 끌어모아 공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포기했다면, 질은 떨어져도 일단 책상에 앉아 규칙적인 공부 루틴을 의식하며 매일매일 그냥 해나가다 보면 어떤 리듬이나 자기만의 호흡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습관은 공부의 절대량을 늘릴 뿐 아니라 ‘이해’를 만든다. 한동일은 “매일 책을 몇 쪽부터 몇 쪽까지 읽기로 정하고 그냥 읽기만 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괜찮다”며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구간을 매일 반복적으로 읽으면 속도가 빨라질 거고,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단어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전을 찾지 않고도 외국어 수업을 따라갈 수 있게 된 데에는 특별한 왕도가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겸손이 힘이다 

공부에 임하는 태도로 한동일은 ‘겸손함’을 강조했다. 겸손함이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인정하는 태도’다. 겸손함은 먼저,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공부에 있어 능력 향상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데,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실제의 나’와 ‘내가 평가하는 나’의 간극을 모르거나 모른 척해 부실한 공부를 하게 된다.   

겸손함은 또한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면 환경 탓을 하는 데 에너지를 소비한다.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맞아. 솔직히 난 아직 부족해. 실력을 더 쌓아야 해’라며 책상에 다시 앉는다. 실패는 전적으로 자신의 탓임을 알기에 잠시 실망하고 좌절감을 맛볼 수는 있지만 공부를 멈추지는 않는다. 한동일은 학문이란 그렇게 겸손한 자세로 그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망치는 ‘근심’에서 벗어나라

‘내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 걸까?’ ‘왜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을까?’ ‘나는 언제쯤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다 보면 온갖 근심이 마음을 괴롭힌다. 한동일은 그러한 근심들을 ‘내 안에 양들을 먹어 치우는 늑대’로 비유하며 늑대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공부의 최대 적인 부정적인 생각들을 끊어버리라는 것이다. 

한동일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라틴어 격언들을 읊는다. “Non efficitur ut nunc studeat multum, sed postea ad effectum veniet.”(지금 많이 공부해서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된다.) 오랜 가뭄으로 단단히 굳은 땅은 약간의 비로는 충분히 적실 수가 없다. 대지를 흠뻑 적실 정도로 충분히 내린 후에야 개울이 되고 강이 돼서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니 당장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조바심 내지 말아야 한다. “Omnia disce, videbis postea nihil esse superfluum.”(모든 것을 배우도록 하라. 나중에는 그 어떤 것도 소용없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때론 스스로 남과 비교하며 무너지고, 세상 사람들,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까지 나의 공부를 응원해주지 않고 평가 절하한다. 한동일은 그럴 때마다 이 격언을 기억했다. “Qui se ipsum norit, aliquid se habere sentiet divinum.”(스스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신성한 무엇을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리라.) 신이 만든 개개인은 제각기 신성하다. 타인으로부터 비롯한 근심이 마음을 잠식할 때 ‘내 안에 신성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위로하고 용기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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