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장기하,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어’
[니가 사는 그책] 장기하,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어’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9.23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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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음악을 통해 완성되는 책들이 있다. 가령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음악들을 찾아 듣지 않았다면 그 소설을 완전히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수 장기하의 첫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음악을 통해 완성된다. 독자는 읽는 내내 음악을 찾게 되는데, 이 책에서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전부 음악으로부터 이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 음악들로부터 장기하는 ‘상관없음’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성공해도, 실패해도, 노력해도, 노력하지 않아도, 남보다 잘나도, 그렇지 않아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모두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상관 있음’을 외칠 때 당당히 ‘상관없음’이라고 말하는 그의 책이 궁금하다.    

#싸구려_커피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장기하라는 이름 세 글자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린 곡 ‘싸구려 커피’에는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라는 멜로디 뒤로 이런 ‘중간 랩’이 펼쳐진다. 장기하는 이 부분이 장기하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평한다. 그런데 이 중간 랩은 그 가사처럼 정말 “멍하니 그냥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탄생했다. 군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창가, 창밖으로는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고 장기하는 무심히 그걸 바라보다가 이윽고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다. 그 멍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단어들이 알아서 모여들었고, 박자에 달라붙었다. 장기하는 이후 이 ‘멍한 상태’를 창작의 모범 사례로 삼고 새로운 작곡에 적용해왔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뭐든 추구하고 노력하면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아니_벌써

장기하는 밴드 산울림의 노래 ‘아니 벌써’에 대해 “연주 실력이 그야말로 형편없다. 일단 악기 연주들 간의 박자가 전혀 안 맞는다. 직업 음악인들만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오류가 아니다. (중략) 녹음 상태 역시 요즘의 가요를 만드는 대부분의 프로 스튜디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평한다. 그런데 이는 혹평이 아니다. 그는 ‘아니 벌써’가 명곡이 된 이유가 그런 오류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뉘앙스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단 하나의 노래도 만들지 않기로 결심하고 일부러 쉬었다는 장기하는 올해 첫날 부푼 마음으로 작업실 책상에 앉아 좌절하고야 말았다. 기타면 기타, 건반이면 건반, 프로그래밍이면 프로그래밍, 그 무엇이 됐든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문득 떠올린 음악은 산울림의 ‘아니 벌써’였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그가 작곡한 다른 노래들 역시 음악 실력이 아닌 창의성 하나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장기하는 말한다. “좀 열등하다 해도 별로 상관없고,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Everything_In_Its_Right_Place

“There are two colors in my head. What What is that you tried to say”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있어. 네가 말하려는 것은 뭐야?)
그가 영국 록 밴드 ‘라디오 헤드’의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는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의 가사다. 그 가사처럼 이 에세이에는 늘 두 가지 생각이 나온다. 그리고 장기하는 마지막까지 ‘네 생각도 맞고, 내 생각도 맞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태도를 견지한다. 가령 그는 아직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이들은 아이를 키워보지 않고서는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반대로 육아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하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또한, 장기하는 비싼 차를 탈 수 있으나 현대 ‘아이서티’를 탄다. 고급스러운 차 없이도 인생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고급스러운 차를 타는 사람들도 어떤 이유에서든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장기하 자신의 선택 역시 합리적이었으니 남의 시선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같은 맥락으로, 길을 잘 못 찾아도, 가수로서 피아노를 좀 못 쳐도,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의 이 말은 어쩐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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