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폴리매스’, 세상을 바꾸는 인재의 특징
[니가 사는 그책] ‘폴리매스’, 세상을 바꾸는 인재의 특징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28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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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모든 교과목에서 눈부신 성적을 올리던 친구. 기가 막힌 솜씨로 미술 숙제를 제출했고, 여러 가지 악기를 힘들이지 않고 연주했으며, 학교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농구부 주장이었으며,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친구. 

누구나 이런 친구가 한두명쯤 있기 마련이다. 이 다재다능한 친구를 민수라고 부르자. 그런데 성인이 된 지금 당신의 민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자가 아는 민수는 명문대 경영학과 재학 중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대기업에 들어가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친구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지만, 가장 오래 일하기 때문에 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너무 피곤해 보인다는 것 외에도 이 친구를 만나면 늘 안타까운 것이 있다. 미술, 음악, 연기, 스포츠, 언어 등 그 빛나던 재능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눈 밑에 드리운 블랙홀 같은 다크서클 속으로 들어가 버렸을까.

무엇이 그 많던 재능의 싹들을 잘라버렸을까. 책 『폴리매스』의 저자 와카스 아메드는 그것이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는 민수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다양한 재능들을 포기하고 단 하나의 길만을 택하게 했다. 가령 학년이 올라갈수록 민수가 받는 교육은 전문화됐다. 민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과나 이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이후에는 수능에 나올 과목들만 공부해야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전공과목만을 공부해야 했고, 졸업하고는 당연히 전공과목과 관련한 일을 찾아야 했다. 결국에는 전공과목이 다루는 영역보다 더 좁은 영역의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됐다.     

아메드는 “폴리매스(Polymath, 다방면의 전문가)로 사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비단 민수뿐일까. 돌아보면 우리는 어릴 때 정말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 모두 민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길 중에서 몇 개의 길을 선택해왔으며, 결국에는 하나의 길을 정하고 그 길을 평생 걷게 된다. 이 사회가 분업의 효율성을 위해 거대한 세계를 조각조각 분리하고, 엄격하게 경계를 긋고, 누구든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메드는 “(우리는) 오직 한 가지 일에만 평생 헌신하며 살아가는 길이 진리를 찾는 길이자 자아를 찾는 길이며 혹은 생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도록 세뇌당해왔다”고 다소 과격하게 말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폴리매스는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우리나라 속담에 “재주가 열두 가지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고 세계적으로 비슷한 말들이 많다. 그리스에서는 “재주가 많은 사람은 텅텅 빈 집에서 산다”고 말하고, 일본인은 폴리매스를 가리켜 “재주는 좋지만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장 유명한 폴리매스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배출한 이탈리아에서조차 폴리매스를 “모든 것의 전문가인데 어느 하나에도 대가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아메드는 이러한 세계를 ‘전문화 숭배 사회’라고 지칭하며 그러한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개인에게든 국가에게든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말한다. 

아메드에 따르면, 전문화 숭배는 개인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 전문화할수록 개인은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분야든 미래가 불확실하며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멸하는 오늘날, 직업의 다각화는 개인의 생존을 가장 확실히 보장해주는 수단이다. 유발 하라리가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말했듯, 급격하게 바뀌는 노동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불가피한 이직에 대비하는 것이 앞으로의 생존 전략이다.

한 우물만 파는 것은 개인의 지적·영적 성장 또한 저해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데, 특정한 시각으로만 보는 세상은 좁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복잡성 이론(Complexity Theory)의 아버지 에드가 모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특정 의미가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듯, 인위적으로 구분한 ‘학문들’ 틈새로 중요한 현실이 빠져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비유하자면 한 분야만 파는 것은 하나의 창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문화 숭배 사회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진보도 막는다. 폴리매스이자 철학가인 세예드 호세인 나스르는 “다능하고 박식한 폴리매스가 있고 없고는 그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전체를 보는 시각 없이는 어느 사회도 살아남지 못한다. 폴리매스는 한 문명이 장기적으로 존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해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그들이 이름을 알린 분야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품은 폴리매스들이었다.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결국 어떤 분야를 통섭적으로 바라보고, 남다른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아메드는 책에서 폴리매스 유형을 ▲지도자형 ▲킹메이커형 ▲혁명가형 ▲지식인형 ▲교육가형 ▲신비주의자형 ▲탐험가형 ▲과학자형 ▲예술가형 ▲기업가형 ▲박애주의자형으로 구분했는데, 우리가 아는 소위 ‘위인’들이 대부분 여기 포함된다. 그들은 잘 알려진 ‘업적’과 관련한 분야 외에도 다방면에서 전문적이었다.   

가령 20세기 뛰어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윈스턴 처칠은 다양한 분야의 고위 관료를 두루 역임했으며, 유능한 군인이자, 예술가이자, 학자였으며,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100여 점의 유화를 남긴 화가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에 따르면 처칠은 ‘다방면의 천재’였다. 소설과 희곡, 시를 쓰는 작가로 명성을 얻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변호사, 궁정 관료, 철학자로도 활약했으며, 생물학, 식물학, 물리학 같은 과학 분야에서도 상당한 업적을 이뤘다. 그는 법학을 전공하기 전에는 소묘와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경력을 쌓았다. 1960년대 쿠바 혁명을 이끈 지도자 체 게바라는 베스트셀러 여행기 작가이자 정식 수련을 받고 활동한 의사였으며, 권위 있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군사 이론가, 정치인, 외교관이었다. 저자는 책의 100페이지 정도를 이러한 폴리매스 위인들을 나열하는데 할애한다. 우리나라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지만, 세종대왕이나 장영실, 정조, 정약용 같은 인물들을 폴리매스로 꼽을 수 있다. 

아메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누군가 뛰어난 업적을 세웠다고 하면 응당 그 사람이 한평생 그 일에 종사한 전문가라고 간주한다. 주요 활동 분야나 연구 주제로부터 절대 한눈을 팔지 않고, 오직 한 분야에 몰입한 결과라고 예상한다. 노벨상 후보자, 뛰어난 과학자, 작가, 미술가, 운동선수, 기업인, 정치인이 현재 위치에 선 이유는 그들이 한 가지 전문 분야에 평생 헌신한 덕분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한 가지 분야에 오래 헌신한 덕분에 창의적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고 세상은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전제다.” ‘이것저것 다 잘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는 명제는 이제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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