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 증의 효용성
허언 증의 효용성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4.04.25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인생 궤적을 한 편의 자서전으로 쓰고 싶다. 하지만 왠지 망설여진다. 정작 타인에겐 자서전 쓰기를 강의 한 적 있다. 젊은 날 우리고장에 자리한 2개 대학교의 대학생 상대로 ‘6,25 참전 용사 대필 자서전 쓰기’ 지도를 했었다. 또한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에서 강사로 활동 할 때 수강생들 대상으로 자서전 쓰기를 지도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정작 나에 대한 자서전은 쓸 엄두를 못 낸다.

이는 인생 행로를 뒤돌아볼 때 융통성 없이 살아왔다는 자책 때문이다. 오로지 앞만 보며 물질만 좇아 내달린 지난 세월인 듯해서다. 그러고 보니 이에 따른 회한도 많다. 오로지 세 딸을 반듯하게 키워야겠다는 일념과 몇 번 사업으로 주저앉은 남편 양어깨에 짊어진 짐을 덜어주는 게 급선무라고 여겼다. 또 있다. 비좁은 평수의 서민 아파트를 하루빨리 벗어나는 일이었다.

여성이라면 흔히 행하는 피부 맛사지, 명품 쇼핑 따위는 꿈조차 못 꿨다. 어디 이뿐인가. 평소 얼굴에 화장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입술에 립스틱만 바르고 다니기 예사였다. 그야말로 거울도 제대로 못 본 채 살아온 지난 시간이다. 교육 사업을 하는 바쁜 삶 가운데서도 파출부 한번 부르지 않았다. 사업과 집안일, 그리고 아이들 교육까지 병행해왔다.

이렇듯 젊은 날 삶에 떠밀려 살다보니 부유한 집안 형편 덕분에 손끝에 물방울만 튕기며 사는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다. 그 시절 가장 부러운 사람이 또 있었다. 어느 여인의 경우다. 그녀는 자리에 앉기만 하면 자신의 풍족한 삶을 자랑한다. 그녀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때는 별다른 의심 없이 경청했다. 

수십 여 년 전일이다. 그녀 남편은 당시 재래시장 안에서 식당을 운영 했다. 여인은 사석에 앉을 때마다 식당 사업이 잘 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누리는 부를 자랑하기 바빴다. 심지어는 남편으로부터 매 달 몇 백 만 원씩 용돈을 받는다고도 했다. 지금도 이 돈은 큰 액수다. 그녀가 이런 말로 자신의 부를 과시할 때마다 ‘설마? 그럴까?’ 반신반의 했었다. 한 편 그녀가 착용하는 명품 핸드백 및 화려한 장신구와 옷차림으로 비쳐볼 때 그 말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애써 믿으려 했다.

평소 종잇장처럼 얄팍한 성품을 지닌 여인이었다. 이런 인품으로 미뤄보노라면 그녀 말은 조금치도 진정성 없고 한편 논리에도 부합되지 않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식당 사업이 번창 하여 돈을 잘 벌어도 어찌 한 달에 몇 백 만 원을 선뜻 용돈으로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녀 말은 순전히 허풍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인 남편은 사기죄로 몇 년 째 감방 신세였음을 소문을 통하여 알게 됐다. 그녀는 남편의 불미스러운 일을 이런 허세로나마 포장하려고 애쓴 듯 하다. 이 생각에 이르니 그녀의 언행이 왠지 안쓰럽다. 한편 허언 증 환자라고 비판해야 해야 할지 그녀의 상식 밖 언행에 쉽사리 판단이 안 선다.

반면 그녀가 자랑삼아 내뱉는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어찌 모르랴. 그럼에도 어느 사이 그녀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엔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나라는 착각마저 들기도 했었다. 돌이켜 보니 남의 거짓말을 빌어서나마 서러운 자위를 삼으려 했던 자신이어서 못내 부끄럽다. 하긴 나라고 용돈 몇 백 만원은 남편으로부터 못 챙겨도 그녀의 화려한 장신구 및 옷차림을 어찌 흉내 내지 못하랴. 하지만 미래를 향한 희망과 꿈이 있었기에 허영심을 경계 한 채 내핍과 검박한 삶을 실천해 온 지난날이다.

그때는 세 딸을 남부럽잖게 키우는 게 가장 절실한 꿈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젊은 날 지향했던 소망을 이루고 보니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나이 들어선 부와 명예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육신으로 노후를 별 탈 없이 보내는 일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돈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쇠’로 작용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건강은 어떤 물질로도 살 수 없잖은가. 때늦은 생각일지 모르겠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 자신을 위하여 오늘부터라도 ‘건강지킴이’라 일컫는 운동에 관심과 심혈을 기울여 볼까 한다. 뿐만 아니라 독서를 일상화 하여 노화로 말미암아 메마르는 가슴에 습윤(濕潤)도 더하고 마음의 건강도 지키련다.


  • 서울특별시 서초구 논현로31길 14 (서울미디어빌딩)
  • 대표전화 : 02-581-4396
  • 팩스 : 02-522-67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권동혁
  • 법인명 : (주)에이원뉴스
  • 제호 : 독서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379
  • 등록일 : 2007-05-28
  • 발행일 : 1970-11-08
  • 발행인 : 방재홍
  • 편집인 : 방두철
  •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 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고충처리인 권동혁 070-4699-7165 kdh@readersnews.com
  • 독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독서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eadersnews.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