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보건교사 안은영’에 숨겨진 디테일들… 책 안 읽으면 몰라
[니가 사는 그책] ‘보건교사 안은영’에 숨겨진 디테일들… 책 안 읽으면 몰라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07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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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2015년 출간된 정세랑 작가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이 동명의 소설 원작 드라마로 인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드라마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소설을 사서 읽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와 소설의 큰 줄기는 이렇다. 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일하는 안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본다. 그 무언가는 움직이는 젤리의 형태여서 편의상 ‘젤리’라고 부른다. 어떤 젤리들은 뭉쳐서 사람이나 괴물의 형태가 되고, 안은영은 그 젤리들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찾아가 장난감 칼과 비비탄총으로 해치운다. 소설과 드라마는 대동소이하지만, 소설에는 드라마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드라마에서 시청자는 유독 하트 모양의 젤리들을 많이 보게 되지만 하트 젤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모든 젤리들은 일종의 ‘엑토플라즘’(영매의 몸에서 흘러나온다고 하는 일종의 물질)이다. 쉽게 말하면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다. 드라마에 하트 젤리가 유독 많은 이유는 드라마의 배경이 고등학교이며, 사춘기 학생들이 야한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학교에는 이 젤리들이 응집해 형성된 나체의 환영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데 드라마(15세 관람가)에는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 1화에서는 2학년 오승권 학생을 닮은 젤리가 등장한다. 이 젤리들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소설에 따르면 이 젤리들은 오승권이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마음이 뭉쳐서 형성된 것이다. 소설에서 안은영은 이를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은 작은 친절에도 쉽게 반할 정도로 좋지 않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드라마나 소설이나 오승권이 짝사랑하는 이는 ‘해파리’라는 별명의 성혜현 학생이다. 해파리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한데, 소설에 따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이 투명하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소설에서 성혜현은 해파리의 영어 이름인 ‘젤리피시’로 불린다. 좀 더 어감이 귀엽다. 

드라마에서 성혜현은 늘 속없이 웃는 학생으로 비춰지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보기와는 달리 속이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성혜현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사랑고백을 하면 어김없이  받아주는데, 그 이유는 타인에게서 가장 좋은 부분만 발견하려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성혜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저 즐거워 보이는 생물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안으로 삼키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승권은 다시금 확신했다.”

드라마와 소설에는 안은영을 돕는 역할로 한문 선생 홍인표가 등장한다. 홍인표는 몸 주위에 그를 보호하는 거대한 에너지 장막을 두르고 있는데, 드라마에는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소설에서 안은영은 이 에너지 장막에 대해 ‘누군가 그 선생님을 매우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서도 강력한 의지를 남긴 게 틀림없었다’고 추측한다.

드라마와 책에는 모두 홍인표의 에너지 장막을 빼앗으려는 원어민 교사 매켄지가 나온다. 드라마에서 매켄지가 회식자리를 슬쩍 빠져나와 집에 가려는 홍인표를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매켄지가 잡은 것은 다름 아닌 홍인표의 벨트다. 드라마에서는 설명되지 않지만, 홍인표의 에너지 장막이 단전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켄지는 벨트를 잡아 어쩌려고 했을까? 소설을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매켄지는 홍인표의 바지에 어떤 씨앗을 넣으려고 시도했을 수 있다. 특정한 씨앗이 젤리든 장막이든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씨앗에 젤리나 장막을 모아 ‘블랙마켓’에 판다. 한편, 매켄지가 원예부를 맡은 이유는 학교에서 스스럼없이 씨앗을 사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드라마 5화에서는 안은영의 옛 친구 김강선이 젤리가 돼서 안은영을 찾아온다. 그러나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오래된 크레인에 깔려 사망한 김강선의 복장은 일하는 옷이 아닌 양복. 소설에 따르면 그의 큰누나가 그의 시신에 삼베옷이 아닌 양복을 입히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강선은 생전 양복을 입어보지 못했다. 

한편, ‘보건교사 안은영’의 시즌2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드라마의 연출을 맡은 이경미 감독도 확답할 수는 없겠지만, 책은 총 열 장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드라마에 사용된 장은 총 여섯 장이기에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남은 네 개 장이 드라마에 사용된 여섯 개 장보다 재미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책이라는 콘텐츠가 드라마와 만나 입맛 다른 독자를 포용하고 또 다른 이야기로 발전하는 것은 더 넓은 독서의 장을 기대할 수 있는 고마운 일이다. 시즌2가 나온다면 소설 속 이야기를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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