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사람을 움직이려면, “처세술 내리고 공감 올려”
[니가 사는 그책] 사람을 움직이려면, “처세술 내리고 공감 올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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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80여년 전에 출간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최근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때아닌 처세술 열풍이 아니다. 이 오래된 책이 다시금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물론 한 독서 예능 프로그램의 홍보효과도 있겠지만, 이 책이 요즘 도서시장 트렌드인 ‘타인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데일 카네기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쓴 목적에 대해 “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설탕이나 커피와 같은 상품처럼 구매가 가능하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 능력에 대한 대가를 더 많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존 D. 록펠러의 말을 인용하며 이 책이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용적이고 상식적인 처세술 책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관계 기술에 대한 설명보다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카네기는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풀어낸다. 가령 1부(사람을 다루는 기본 방법) 1장(꿀을 얻으려면 벌통을 걷어차지 마라)에서 카네기는 “타인을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말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인간이 그다지 논리적인 동물이 아니며,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합리적인 비판일지라도 비판받는 사람에게는 가장 먼저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그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카네기는 “사람을 비난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왜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애써보자”라며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도 심판의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는 영국의 대문호 새뮤얼 존슨의 말을 인용하며 “그런데 당신과 내가 감히 그래서야 되겠는가?”라고 묻는다.

2부에서 카네기는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데 가령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라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라 ▲잘 듣는 사람이 돼라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맞춰 이야기하라 등이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상대방을 중심에 둬야 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카네기에 따르면, 불쾌감을 주지 않고 적개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바꾸고 싶다면 진심으로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 애써야 하며,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싶다면 타인의 생각과 욕망에 공감해야 한다. 인간이라는 종은 모두 공감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단순히 처세술의 방법만 나열했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는 책들의 주제가 ‘너’에서 ‘나’로 옮겨간 지는 오래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유튜버 김달의 에세이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보다 나, 상처 주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이 외에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김수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 등 최근까지 인간관계를 다룬 대형 베스트셀러들은 대부분 ‘너’가 아닌 ‘나’가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 책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등 인기가 역주행한 이유는, 전술했듯 ‘타인에 대한 이해’라는 요즘 도서시장의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몇 주간 베스트셀러들을 돌아보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신작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그 안에 들어가면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녹나무의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당신이 옳다』에서 진정한 공감과 이해가 “당신 지금 마음이 어때요?”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타인의 해석』에서 인간이 타인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그지없음을 설명하며,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늘 조심스럽고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인기는 때아닌 처세술 열풍이 아니라, 마침맞은 ‘공감’ 열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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