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요즘 대형서점의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은 대부분 ‘독서’보다는 ‘감상 혹은 소장’이 어울리는 책들, 정확히 말해 책이라기보다는 ‘굿즈’(열성 팬용 상품)에 가까운 책들로 채워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프라인에서 직접 읽어보고 사야 하는 책들의 판매는 그 비중이 줄어든 반면, 직접 읽지 않고 구매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모양새인데, 이러한 책들 중에 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굿즈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최근 대형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양준일 Maybe-너와 나의 암호말』이다.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 때 출간된 이 책은 출간 전 예약판매만으로 대형서점들의 일간·주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을 수 주째 지키고 있다.
양준일이 작가로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약판매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양준일 Maybe-너와 나의 암호말』의 구매 이유는 팬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굿즈로서의 책인 것이다. 이 책을 구매한 양준일의 팬들은 20일 기준 교보문고에 따르면, 40대 여성(33.5%), 30대 여성(18.8%), 50대 여성(18.5%) 순으로 많았다. 양준일의 현재 나이가 51세이고, 과거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나이가 23세에서 25세였으니, 이 책을 주로 구매한 독자는 과거 십대 혹은 이십대로서 양준일에 열광하던 이들이다.
EBS의 인기 캐릭터이자 구독자 210만여명을 보유한 스타 유튜버 ‘펭수’를 다룬 책은 두 종이나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출간된 『펭아트 #페이퍼토이북』과 지난해 12월 출간된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의 한정판 리커버 눈꽃 에디션이다. 이 책들도 책이라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굿즈다. 『펭아트 #페이퍼토이북』은 책을 뜯어 펭수 종이인형을 만들 수 있는 일명 ‘체험형 아트북’이다.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는 ‘에세이 다이어리’로, 펭수의 에세이가 담긴 다이어리다.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수』 리커버 에디션은 판매를 시작한 지난달 17일 인터파크에서 분당 60권 이상 팔렸다.
영화의 굿즈라고 할 수 있는 책들도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먼저,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세트』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에 판매가 급증했다. 알라딘에서는 <기생충>의 각본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직후 판매량이 일평균 판매량의 23배가량 급증했다고 밝혔고, 다른 대형서점들에서 역시 비슷한 판매량 증가세를 보였다. 알라딘에 따르면 수상 직후 여섯 시간 동안 구매자의 61.5%는 여성이었는데, 일반적인 베스트셀러의 여성 독자 비율이 70%에 가까운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남성의 구매 비율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난달 12일에 개봉한 영화 <작은 아씨들>의 인기 역시 그대로 원작 소설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소설 『작은 아씨들』은 출판사마다 각기 다른 표지로 출간하고 있는데,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의 1868년 초판본 표지 디자인이 가장 인기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출판사 ‘더스토리’가 알에이치코리아보다 이틀 먼저 동일한 표지로 책을 출간했는데도 인기는 알에이치코리아의 책이 더 많다는 것이다. 알에이치코리아의 책의 띠지에는 영화 등장인물들의 사진이 붙어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이 역시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이 굿즈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