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권석천, 베르베르… 삼인삼색 ‘기억론’
김수현, 권석천, 베르베르… 삼인삼색 ‘기억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6.19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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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기록할 기(記)에 생각할 억(憶). 

공교롭게도 최근 출간돼 대형서점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세권의 책이 모두 각기 다른 색깔로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 김수현의 에세이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와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의 에세이 『사람에 대한 예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판타지 소설 『기억』이 그 주인공. 

김수현에게 기억은 결코 얽매여서는 안 될 무언가다. 가령 인간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한 원인을 과거의 기억에서 찾기 마련이다. 자신이 내성적인 이유를 과거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상처 입은 기억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타인을 대면할 때마다 그러한 기억을 회상하며 끊임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기억은 부정확하다.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인지하고, 드라마도 지난주에 본 걸 다시 보면 기억했던 것과 대사가 다르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가 있을까. 과거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상처 입은 기억은 사실 잘못된 기억일 수 있다. 

또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처럼 그것이 정확한 기억이라고 하더라도 미래를 발목 잡는다면 그 기억은 더욱 쓸모가 없다. 김수현은 “모든 걸 과거에 묻지는 말자. 과거의 기억으로 자신을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 어떤 환경에서 자랐건, 어떤 상처를 가졌건, 당신은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있고, 더 많은 걸 결정할 수 있다. 당신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권석천은 우리나라가 비슷한 기억을 짜내는 거대한 인큐베이터 같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젊은 세대의 자기소개서들이 ‘우리소개서’라고 할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예로 든다. 동아리, 교환학생, 인턴 등의 경험이 엇비슷하고 대체로 어둡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를 목표로 달려야 하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면 무섭게 뒤처지니, 나만의 기억을 따로 만들 시간이 없다. 대학교에서도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쉴 틈 없이 공부하고, 외국어학원에 가는 등 모두의 기억은 비슷비슷해진다.    

권석천은 이러한 기억의 통일에 대해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경고한다. 전국의 가축들이 소수의 우수 종자 DNA를 공유하고 있어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듯이 비슷비슷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사회 변화에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의 숫자가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라며 “우리의 기억은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기억은 승리자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실제 벌어진 역사와 기술된 역사에는 차이가 있다. 피지배자의 역사는 부정적으로 왜곡되고, 지배자의 역사는 미화된다. 대량 학살자에게 영웅의 지위와 훈장이 주어지고, 승리한 쪽의 역사가들은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중과 후세에게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파한다. 베르베르는 고대 미노스 문명과 카르타고의 평화롭고 찬란했던 역사가 그들보다 더 폭력적이었던 그리스, 로마에 의해 왜곡됐으며, 교과서에 실린 공식 역사조차 자의적인 재단(裁斷)의 결과물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르베르는 소설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과거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과거의 실체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나, 결국 똑같이 과거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해요.” 기억. 얽매여서도 안 되고, 같아서도 안 되며, 왜곡하거나 잊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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