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김영하가 찾은 여행의 또 다른 이유
[니가 사는 그책] 김영하가 찾은 여행의 또 다른 이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5.13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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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달 29일 발행된 소설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모든 대형서점에서 주간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오르는 등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 책은 2009년 출간돼 절판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제목만 바꿔서 다시 출간한 셈(현지 음식 요리법 관련 한 꼭지 추가)인데,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책 『여행의 이유』의 씨앗이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 여행자들은 이 책에서 여행의 ‘또 다른 이유’를 찾게 된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그 어떤 이미지도 내가 본 것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의 2.5인치 액정에 담긴 해협과 절벽, 불카노의 풍경은 빛바랜 관광엽서처럼 식상하고 진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스쿠터를 타고 달려와 맞이한 풍경은 그렇지 않았다.”(120쪽)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런 풍경을 다시 보게 될 때, 우리 몸의 일부가 격렬히 반응한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중략) 그렇듯,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124쪽)

유튜브로 쉽게 여행지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어째서 여행을 할까? 아름다운 달을 카메라로 찍고는 실망해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어떤 풍경들은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어떤 풍경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돼 존재의 일부가 된다. 여행은 이렇게 멈춰 있을 때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주고, 여행자를 성장케 한다. 

“왜 노토 사람들은 그토록 먹는 문제에 진지해진 것일까. 혹시 그것은 그들이 삼백 년 전의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하라의 열풍이 불어오는 뜨거운 광장에서 달콤한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왜 훗날로 미뤄야 한단 말인가? 죽음이 내일 방문을 노크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어쩌면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247쪽)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종일 이야기하다가 또 맛있는 것을 먹는, 계획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시칠리아 사람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준다. 김영하는 이 가르침을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여행은 우리를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어제를 후회하지 않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영원히 현재를 살 수 없는 인간. 여행은 현재를 살게 한다.

“부하와 양 떼를 싣고 무사히 바다로 나아간 오디세우스는 그제야 양을 잃은 것을 알고 분통을 터뜨리는 폴리페모스에게 ‘나는 아무도 아닌 자가 아니라 오디세우스다’라고 기고만장하여 외친다. 이 공명심 때문에 폴리페모스는 비로소 자기 눈을 찌른 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오디세우스의 앞날은 더욱 험난해진다.”(199쪽)

인간을 잡아먹는 키클롭스(시칠리아 신화 속 거인족)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객기를 부리다가 불행을 자초한 오디세우스.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가 사는 섬에서 그랬듯 여행자는 제아무리 자국에서 잘나갔더라도 여행지에서는 그저 ‘아무도 아닌 자’일 뿐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데, 그곳에는 우리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은 서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고,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불행이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역시 키클롭스 신화에 대해 말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오디세우스가 느낀 유혹, 키클롭스라는 타자를 향해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가 성숙한 여행의 관건”이라고 적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이렇듯 독서 여행객들이 여행의 또 다른 이유를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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