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2009년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출간돼 절판된 이 책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에세이 『여행의 이유』의 씨앗이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에 대한 통찰의 깊이나 폭으로 따지면 『여행의 이유』가 더 깊고 넓다. 그러나 이 책은 『여행의 이유』에는 없는 색다른 맛이 있다. 『여행의 이유』가 ‘이유’에만 집중했다면 이 책은 여행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 김영하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여행기의 본질을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플롯으로 따지면 여행자는 ‘추구의 플롯’을 타고 여행하게 되는데,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실패나 좌절, 엉뚱한 결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뜻밖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행의 이유』가 여행기 속 ‘뜻밖의 사실’에 주목했다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이런저런 시련’이 주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이 예기치 않은 좌충우돌로 인해 이 책의 여행지인 시칠리아를 눈앞에 보듯 생생하게 그리게 된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기차는 여러 차례 연착되고, 아내의 핀잔을 듣게 되고, 기대와 다르게 곰팡이가 핀 숙소에서 잠을 청하는 등 여행은 늘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다.
이 책의 차별점은 무엇보다 이 여행기가 2년여의 ‘장기 여행’이라는 점에 있다. 김영하는 이렇게 표현한다. “리파리는 두 얼굴의 섬이다. 잠깐 왔다 가는 관광객에게 보여주는 얼굴과 오래 남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얼굴이 있다. 리파리의 숨은 얼굴을 보기 위해선 두 가지 옵션이 있다.” 그는 이렇게 단기 여행객들은 볼 수 없는 시칠리아의 ‘숨은 얼굴’을 보여 준다.
이 책을 읽고 『여행의 이유』를 다시 읽는다면 훨씬 풍부한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가령 두 책에는 키클롭스 신화와 과거 그의 아버지가 사랑했던 개 꾀돌이의 이야기가 동일하게 담겨 있는데, 이 이야기들에 대한 그의 시각이 조금 다르다. 2009년의 김영하와 2019년의 김영하는 한 이야기에서 사뭇 다른 생각을 한다. 한 번의 여행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사고의 진보를 일으킨 것이다. 어찌 보면 여행은 일생동안 영원히 끝나지 않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 지음│복복서가 펴냄│300쪽│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