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들
인간을 구원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13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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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근 도서시장에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을 소재로 한 이도우 작가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인기다. 이 책에는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독립출판물들이 등장하는데, 가령 『사물의 꽃말 사전』은 꽃마다 꽃말이 있는 것처럼 사물에도 꽃말에 해당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죽지 않고 노숙』이라는 책은 저자가 삼 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대부분의 잠을 거리에서 잤던 경험을 토대로 도시마다 안전하게 노숙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세상에 없는 책들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인기라니, 질문이 참 아이러니하다. 세상에 없는 책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 6일 출간돼 벌써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세계문학상 수상작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소개한다.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Library For Nowhere Books)의 마지막 사서 에드워드 머레이가 도서관이 영원히 문을 닫을 시점에 도서관의 가장 열정적이고 기이한 기증자 중 한 명인 빈센트 쿠프만(VK)의 희귀 컬렉션을 소개하는 것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저 책을 소개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이 소설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어째서 이렇게 흥분될까? 먼저,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속 독특한 독립출판물들처럼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에 소개된 책들은 ‘어디에도 없는 책들’인 동시에 대중성의 대척점에 있는 소위 ‘비주류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자극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매력적이다.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브리엘 영이 미국 여러 지역과 그곳에 사는 악령들에 대해 쓴 『아메리카-악령의 땅』, 야외에서 사랑을 나누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총 3장으로 나눠 설명한 『야외의 연인들』, 아내가 죽고 나서 파리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마치 그곳이 파리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며, 모든 것을 우연에 맞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소설 『메트로』 등 총 30여권의 책들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한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이 아슬아슬한 선을 내내 유지하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매일 자신의 책상에 앉아 구축한 가상의 거리에서 장서의 진위에 대해 고심하며 헤맬 독자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꽤 유쾌하다. 그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소설가 하성란은 이렇게 평했는데, 영화 <맨 인 블랙> 시리즈에서 주인공이 문을 열고 마주하는 또 다른 차원처럼, 독자 또한 소설 속 독특한 책들을 통해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책들을 만나는 일은, 비단 다른 세계로의 모험을 넘어선다. 그것은 별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동일시된다. 책은 사람이 쓰고, 책에는 그 사람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의 저자 역시 이 지점에 방점을 찍는다. “조금 식상한 은유지만 사람은 우주다. 사람은 책이다. 한 사람의 깊이는 우주의 깊이와 같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그를 오래도록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는 새롭게 계속 쓰여지며 끝나지 않는 책이다. 그리고 어떤 책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새롭고 흥미롭고 신비로워진다. 그런 책을 읽어 나가는 건 기쁨과 흥분을 주는 모험이다.”(88쪽) 즉,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또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할 법한 독특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이 곧 사람이라면, 세상에 몇권 존재하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잘 읽히지 않는 책들을 소개하는 일은 인간성의 구원과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속 존재하지 않는 책들처럼 하나같이 다르며, 독특하고, 존귀한데도 불구하고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잊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존재하지 않는 책을 소개하는 책에서 다른 세계와 독특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넘어 책이 인간성을 구원하는 기적을 마주할 수 있다.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에 대해 은희경 소설가가 “한 도서관의 이야기이면서 한 도시와 커뮤니티, 그리고 인간성의 구원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책과 도서관 이용자들을 둘러싸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에 대한 편견을 들춰내 결국 삶의 다양성과 존엄성에 대해 질문한다”고 말한 것과 방현석 중앙대 교수가 “‘어디에도 없는 책들을 위한 도서관’은 ‘어디에도 없는 인간들을 위한 도서관’이지만 ‘어디에나 있는 인간들을 위한 이야기’다”라고 평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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