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세상에 차별받을 사람 하나 없다” 『보건교사 안은영』
[리뷰] “이 세상에 차별받을 사람 하나 없다” 『보건교사 안은영』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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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고등학교 보건교사 안은영이 자기 눈에만 보이는 ‘젤리’들을 비비탄총과 장난감 칼을 이용해 무찌른다. 젤리들 중에는 인간을 해치는 부류가 있기 때문이다. 안은영의 빛나는 칼과 비비탄에 젤리들이 퍽, 퍽 터진다. 정세랑 작가는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지만, 쾌감 이외에도 이 소설에서 느낄 것은 적지 않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주인공 안은영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이유로 학창시절 줄곧 왕따를 당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타인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허공에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비비탄총을 쏴대는 서른 살 여성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미친 사람 취급받기 일쑤지만 그래도 남을 위해 젤리들을 해치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더라도 ‘친절함’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약자의 친절함’이라는 이름의 끈으로 꿴 목걸이처럼 이어진다. 안은영을 돕는 한문 선생 홍인표는 장애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가치 역시 ‘친절함’이다. 안은영과 함께 엉뚱한 행동을 한다는 추문에 휩싸이고, 어떤 학생들에게는 장애를 가졌다고 놀림을 받지만, 그는 안은영과 함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봉사를 이어나간다.    

안은영의 친구 김강선 역시 약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뼈저리게 가난했고, 커서는 공사장 일을 하다가 오래된 크레인에 깔려 죽는다. “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 안은영은 젤리가 돼서 찾아온 김강선의 이런 말을 듣고 살아가는 일을 너무나 값없게 느낀다. 그러나 분해해도 모자랄 판에 김강선은 순하기 그지없다. 그는 안은영에게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같은 따듯한 조언들을 남기고 수많은 젤리들로 부서진다. 

이 외에도 소설에는 성소수자 등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약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들이 약자인 것은 그들 탓이 아닌데도 이들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차별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안은영과 마찬가지로 결코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이들의 ‘친절함’은 독자에게, 혹은 약자에게 어떤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장치가 아니다.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약자의 친절함’은 강하다고, 그러니까 세상에는 어느 한 사람 약자 취급 받을 사람 없다고.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지음│민음사 펴냄│296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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