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백석과 굿나잇 아이린 『일곱해의 마지막』
[리뷰] 백석과 굿나잇 아이린 『일곱해의 마지막』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7.23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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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소설을 읽었다면 노래 한 곡을 찾아봤을 것이다. 기행(백석)이 흥얼거리던 노래 ‘Goodnight Irene’(굿나잇 아이린)이다. 

이 노래 가사는 이렇다. “아이린, 굿 나잇, 꿈에 당신과 만납시다. 때로 나는 시골에 살고, 때로는 도시에서 살지요. 때로는 강물 속에 뛰어들까 하고도 생각하지요. 나는 아이린을 생각하고 있어요.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계시지요. 바닷물이 마를 때까지 사랑해요. 그녀가 나를 버린다면, 몰핀을 마시고 죽어버리겠어요.” 

이 노래는 민요 가수 레드베리가 불렀는데, 그가 살인죄로 감옥에 있을 때 누군가 민요 수집을 위해 찾아가 노래를 듣고 세상에 알렸다. 그리고 이 노래는 레드베리가 사망한 후 히트한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그런데 소설 속 기행의 삶은 어쩐지 레드베리의 삶과 겹친다. 서른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이라는 평을 받은 천재 시인은 해방 후 북한에서 억압에 의해 시를 쓰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30여년 동안 스스로 시를 쓰지 않는다. 기행 입장에서는 감옥에 갇혀버린 것과 다름이 없다. 

기행은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중국인이 온몸에 동상이 걸려 밤새 흥얼거리던 이 노래를 부른다. “당신 노래를 밤새 들었어요. 굿 나잇, 아이린, 굿 나잇, 아이린.”

그러자 중국인이 말한다. “내 노래 아닙니다. 당신 노래지. 당신 노래. 그 겨울 내내 얼어 있다가 봄이 되자 노래가 녹았고, 골짜기마다 울려 퍼졌어요. 굿 나잇, 아이린. 굿 나잇, 아이린.”

기행이 묻는다. “봄이 올 때까지 노래가 얼어 있었다고? 당신 노래, 당신 노래라고 말하는데, 그럼 나는 누구요?”

중국인이 답한다. “당신, 이미 죽은 사람. 그 겨울의 골짜기에서 당신도 얼어붙고 당신의 노래도 얼어붙었으니까. 하지만 봄에 내가 분명히 들었어. 당신의 노래.”

소설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판타지적인 부분이지만 이 부분이 기행의 삶과 소설 전체를 상징한다.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하는, ‘이미 죽은 사람’이 돼버린 기행은 그가 사랑했던 이들과, 그가 모은 시어들과 시에 대해서 더이상 생각하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노래 가사처럼 스스로 “몰핀을 마시고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쨌든 기행의 시들은 레드베리의 노래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일곱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펴냄│248쪽│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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