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알고는 있었지만 표현하지는 못했던 『여행의 이유』
[리뷰] 알고는 있었지만 표현하지는 못했던 『여행의 이유』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3.0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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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우리는 늘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지만, 그 떠남의 이유에 대해 ‘답답함’ 이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김영하는 이 책에서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는 독자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표현하지는 못했던 ‘여행의 이유’들이다. 

‘집’이라는 안온한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 흉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공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도 집에 남지만, 거의 모든 다툼 역시 집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사를 가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 공간의 기억, 버리지 않는 한 물건들에 깃들어 있는 영속적인 나쁜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상처들을 상기한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일상에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처의 기억들을 잠시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또한 어제를 후회하지 않아야 하는 동시에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우리 머릿속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는 동시에 불안함에 대비하며 살다 보면, 정작 지금 이 순간은 살지 못한다. 그러나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는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운전대를 잡은 인간은 충만하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멀미. 어렵게 이야기하면 멀미는 전정감각과 시각 자극의 불일치 때문에 발생하는데, 우리는 어쩌면 여행에서 이러한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다. 상상의 세계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표현하지 못했던 여행의 이유들이 얽힌 실타래 풀리듯 풀어질 때의 공감은 모종의 쾌감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가렵지만 우리 손으로는 닿지 못하는 곳을 누군가 긁어줄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하다. 단순히 여행의 이유에 대한 깨달음을 넘어 우리 자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펴냄│216쪽│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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