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최재천 석좌교수 “감염병의 시대, 살길은 計算과 熟論”
[책 읽는 대한민국] 최재천 석좌교수 “감염병의 시대, 살길은 計算과 熟論”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4.03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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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경선 PD]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재천,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국내 몇 안되는 학자 중 한 명인 그의 인생은 몇권의 책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인생의 전환점마다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겁나는 이야기이지만, 두권의 책이 없었다면 최재천은 지금 생물학자가 아닌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시인의 꿈을 꾸며 많은 책을 읽어왔던 그에게 고교시절 솔제니친의 수필 「모닥불과 개미」는 생물학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철학과에 가고 싶었던 수험생의 마음을 생물학과로 전향시킨 것은 빽빽한 책장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우연과 필연』(자크 모노)이었다.    

최재천은 과거 ‘통섭’(consilience,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이라는 단어를 대한민국의 화두로 만든 학자이기도 한데, 『우연과 필연』이 없었다면 이 단어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가 말한 ‘통섭’이 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 대해 “분자생물학을 철학이나 종교 등의 다른 영역으로 확대해 성찰을 담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기숙사 문을 열고 나가자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인식의 안개도 걷히는 순간이었다. 환희 그 자체였다.” (『책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 中)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곤충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하버드대 생물학과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에게 유학 시절 읽은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는 한 단계 높은 통찰을 가능케 했다.    

초대 국립생태원장,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인간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여전히 열강을 펼치고 있는 최재천. 최근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신종 감염병 코로나19에 대해서도 적극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생물학 권위자 최재천. 배꽃(梨花)이 피는 시기, 이화여대 종합과학관에서 그를 만났다. 연구실을 둘러싼 책장에 책이 빼곡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우리는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 인사했다. 최 교수는 그것을 권수(拳手)라고 했다.      

[사진= 안경선 PD]

Q. <독서신문>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명사로 선정됐다.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A. 이렇게 영광스럽게 저를 선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독특한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요.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뛰어다니면서 다른 동물들은 도대체 뭘 하고 사나, 이런 것을 염탐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른바 동물행동학, 동물생태학, 사회생물학… 이런 분야를 연구하는 진화생물학자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했고요. 서울대에서 가르치다가, 십여 년 전에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겨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코로나19가 창궐해 전 인류가 고통받고 있다. 신종 감염병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앞으로 해마다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셨는데… 

A. 물론 그렇지 않은 생물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물들은, 특히 미생물들은 자기가 사는 곳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그냥 거기 있는 거거든요. 그냥 그 동네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언제부턴가 그런 곳들을 들쑤시기 시작했잖아요. 목재를 얻기 위해서, 또는 동물들을 잡아내기 위해서, 막 들어가서 들쑤시니까, 그 생물들을 공략하던 병원체들이 어쩔 수 없이 우리한테 옮겨붙게 되는 거죠. 아무리 변명한다 하더라도 이건 우리가 저지른 짓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이들에게 접근하고 기어들어 가고…. 오래전에 ‘자연으로 나는 길은 언제나 파멸로 이른다’는 제목의 글을 썼어요. 저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 최초로 정글을 몇 년씩 돌아다니면서 연구했는데요. 초창기에는 거기 사는 사람들조차 정글에는 잘 못 들어갔어요. 그런데 목재가 대대적으로 필요해지면서 사람들이 정글에 길을 내기 시작했고, 그 안으로 트럭이 들어가고, 그 길을 따라서 사냥꾼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깊숙이 들어가서 동물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동물들의 몸에 사는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몸에 들러붙게 되는 거예요.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척추동물인 인간과 가축은 닥지닥지 붙어서 살기 때문에 숲속에 있던 세균들에게는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나 다름없어요. 물론 바이러스가 두뇌가 있어서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건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우리처럼 좋은 사냥감은 없는 거죠. 우리가 지금처럼 계속해서 자연을 건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인간은 더 대대적으로 자연을 건드릴 텐데,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옮겨올 확률은 점점 높아질 거예요. 그리고 그중에는 또 우리와 기가 막히게 궁합이 맞는 놈이 나올 거예요. 그게 사스였고, 메르스였고, 지금 코로나19인 거죠.   

Q. 이번 사태가 인간의 잘못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A. 의료계에 계신 분들은 한결같이 백신이라고 이야기를 하세요.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진화생물학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요. 

만약 기술이 발전해서 백신을 한 달 내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백신이 가장 확고한 답이지만요. 이번에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적어도 1년은 걸린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개발하는 과정, 임상시험을 하는 과정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런데 앞으로 이런 일이 굉장히 자주 벌어지고,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서로 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한다면, 과연 우리가 백신을 개발하면서 이 바이러스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저는 ‘행동백신’(Behavior Vaccine)이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 인간에게는 행동으로 바이러스들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거든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몇 가지만 잘하면, 대유행으로 번지지 못 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바이러스나 세균은 우리만큼 이동성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중간에 그들을 옮겨줄 수 있는, 매개체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요. 가령 콜레라의 매개체는 물이었고,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겨요. 그런데 독감이라든가, 코로나19는 직접 감염이기 때문에, 감염자가 거리를 두면 옮지 않아요. 이른바 ‘사회적 거리’, 저는 그것을 ‘사랑의 간격’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은 떨어지는 것, 이것이 행동백신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렇다고 백신 개발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백신 개발에만 목을 매지 말라는 뜻이지요. 지금 전 세계가 우리나라를 칭송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그 행동백신을 가장 잘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안경선 PD]

Q. 코로나19로 침체한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방역 시스템을 믿고 사회활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가려 해도 감염병의 공포에 주저하게 된다. 

A. 마스크를 안 쓰고 길을 걸어 다니다가 감염될 확률은, 저는 지구가 종말 할 확률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해요. 공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 하나가 내 몸에 들어와 감염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제가 마스크도 안 쓰고 걸어가는데 확진자가 제 얼굴에 재채기하고 갔다, 걸릴 수 있죠.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이 3,000여명인데, 그 정도 되면, 길바닥 자체에 나가지 말아야 해요. 자동차라는 흉기가 코로나19보다 무서우니까요. 모두들 자동차가 오더라도 절대로 죽지 않는 갑옷을 입고 다녀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가 오거나 말거나 그냥 다녀요. 자동차를 테디베어나 장난감처럼 생각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마스크 대란은 한심한 일이에요. 마스크는 대구·경북 지역에 계신 분들, 의료진들, 공무원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사람들, 온종일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써야 해요. 저는 마스크 하나 가지고 몇 주를 써요. 작은 공간에 들어갈 때, 누구와 가까이서 이야기해야 할 때 잠시 써요. 마스크를 안 쓰고 돌아다니는 게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마스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하지는 말자는 거죠. 지금 유럽은 의료 체계가 붕괴돼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제 판단으로 우리나라는 대충 정리가 된 것이라 생각해요. 신천지 수준의 엄청난 감염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 의료 시스템은 소규모 집단 발병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가령 저는 초등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부터 열어보자고 이야기해요. 교수는 검사받고, 모두들 수업 들어가기 전에 손 씻고, 강의실에서는 띄워서 앉고, 그래야 대학촌의 상권이 어느 정도 살 거 아니에요. 지금 각국 정부가 재난기본소득을 하잖아요. 그런데 돈은 줬는데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돈이 유통이 안 되잖아요. 물론 온라인 상점은 아주 잘 된다지만, 예를 들어 동네 라면가게는 우리가 가줘야 하는 거잖아요. 이제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오되, 거리 유지하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이걸 해줘야, 바이러스가 아니라 가난으로 죽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냐 하는 거죠. 지금 전 세계가 우리가 방역을 가장 잘했다고 쳐다보는 이 순간에, 대한민국은 경제까지 되살리고 있네? 하는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세계가 대한민국을 또다시 따라하고, 세계경제가 회복하게 되면 가장 혜택받는 나라는 수출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우리나라예요. 

Q. 유발 하라리는 책 『초예측』에서 인류가 기후 변화나 인공지능, 핵전쟁과 같은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 다양성 등의 문제로 인류가 이번 세기에 절멸할 가능성도 있다고 하셨는데… 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살기에 바빠서 이러한 현실이 잘 체감이 되지 않는데…    

A. 지금 인간이 하는 짓을 보면, 이게 과연 머리가 있는 동물인가 싶을 정도로 의아스럽다는 글을 여러 번 썼어요.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갖고 있고, 그 두뇌를 이용해서 만물의 영장이 된 동물인데, 지금 하는 짓을 보면, 스스로 자기 발길을 재촉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소위 ‘독가스 체임버’라고 불리는 인도 뉴델리에서 사람을 못 나오게 한 후로 공기가 아주 맑아졌다는 뉴스를 봤어요. 우리가 미세먼지, 스모그를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인해 죽어가는 거예요. 자연에 사는 너구리나 종달새에게 ‘쟤네들이 머리가 있는 애들이냐?’라는 말을 들어도 싸요. 물은 어때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걸어가다가 옆에 있는 시냇물 떠서 마셨어요. 그 옛날 깨끗했던 물을 설마 개미들, 멧돼지들이 더럽혔을까요? 우리가 더럽혔죠. 우리가 더럽혀놓고, 우리가 못 마시고, 우리가 죽어 나가는. 도대체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냐를 생각하면,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는 그런 동물인 것 같다는 거죠. 인간이 탄생한 지가 기껏해야 20만 년 밖에 안 되는데, 앞으로 20만 년을 더 살 수 있을까? 저나 유발 하라리 교수는 20만 년은 고사하고 몇 백 년 안에 잘못하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Q. 세계를 대표하는 생물학자로서 인간은 특히 개미에게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지구에서 10만 년을 산 인간과 1억 년을 산 개미의 차이가 당장의 이득을 생각하지 않는 진득한 점이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전 인류를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게 있다면?    

A. 개미가 사는 삶이 그렇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서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다만 개미는 우리보다 실험을 훨씬 오래 한 동물이에요. 오랜 시행착오를 겪고 개미가 터득한 지혜. 이 중에는 배울만한 게 있어요. 개미는 무지무지 오랜 세월 동안 실험하면서 답을 찾아냈고, 우리는 그렇게 오래 살지 않았는데도 개미와 비슷한 답을 찾아낸 거예요. 우리와 비슷한 답안지를 써낸 개미를 보면서 어떤 면이 우리보다 나을까, 몇 가지 배워볼 수는 있겠다 하는 거예요.    

개미에게 배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것은 역시 서로 돕는 행동.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보더라도, 지금 한창 힘들어하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우리 국민이 훨씬 사태 파악을 빨리하고 협조 했잖아요. 외국인들 중에는 개인주의가 너무 강해서 권고 사항을 안 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론에서, 정부에서 이렇게 해달라고 하니까 절대다수가 그걸 따라줬어요. 우리가 개미랑 조금 더 비슷한 국민이에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외환위기 때는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금반지를 빼고, 기름 유출되면 걸레 들고 와서 바닷가에서 바위를 닦고, 우리는 그렇게 뭉쳐서 일을 해내잖아요. 
     
Q. 2012년 세상에 나온 『다윈지능』이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다. 인류가 지구에서 오랫동안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야기해준다면…

A.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제가 하는 발언 모두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다윈적 사고’예요. 모든 것을 관계의 차원에서 보고, 바이러스라는, 세균이라는 또 다른 생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거죠. 앞으로 계속해서 벌어질 이런 사태에 사람들이 다윈적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Q. 과거 스승의 저서를 번역하며 ‘통섭’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이것이 한때 대한민국의 화두가 됐다. 우리가 향후 십 년간 생각해야 할 새로운 단어가 있다면?  

A. ‘계산’(計算)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봤어요. 제인 구달 박사님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번 일로, 좋은 일도 있을 거야. 생각해 봐, 그동안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자연을 보전하는 일은 돈이 안 된다고 생각했잖아.” 우리는 환경경제학이라는 분야까지 만들어냈어요. 갯벌을 개발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것이 정화작용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득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을 지난 몇십 년간 해드려도 안 들으시더라고요. 그런 계산을 해드리면 고개는 약간 끄덕이지만, 당장 공장을 짓는 일이 내 손안에 돈이 들어오는 일이니까요. 아마도 이번 사태로 전 세계가 그 어느 팬데믹(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때보다 심한 경제적 타격을 받을 거거든요. 그런데 이런 비슷한 사태가 앞으로 5년 만에, 3년 만에 한 번씩 벌어진다면, 어쩌면 이제 계산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해서 돈 벌어놔도 3년에 한 번씩 경제 폭락한대, 그럼 손해 아니냐? 엄청난 손해인데? 이제 자연 건드리지 말자, 자연 보전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네. 드디어 사람들이 계산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안경선 PD]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A. 이야기하는 문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광화문에서는 태극기 들고, 서초동에서는 촛불 들고, 이러지 말고, 같이 모여 앉아서 뭐가 잘못됐는지 이야기하는. 이걸 흔히 토론(討論) 문화라고 하는데요. 제가 최근에 ‘토론’이라는 글자가 잘못됐다고 얘기하는데, 이 ‘토’자가 ‘두들길 토’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론이라고 하면 싸움부터 생각해요. 상대를 제압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런데 토론은 원래 남하고 이야기하면서 ‘내 생각이 짧았구나’라는 것을 발견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토론이라고 하지 말고 ‘숙론’(熟論)이라고 하자고 해요. 깊이 생각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그러면 우리나라는 정말 멋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우리나라 국민은 교육을 많이 받아서 이해가 빠른 사람들이거든요. 또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짧아서 머리로 깨달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이거든요. 우리는 숙론을 해본 적도 없고, 배우지도 않아서 못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 숙론 문화를 일으킨다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 같아요. 그런 일을 좀 해보고 싶어요. 여담이지만, 이번에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춘 것이 우리나라 교육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반드시 고3 교실에서 정치 숙론이 벌어질 수 있게 풀어줘야 해요. 드디어 학생들이 숙론 문화를 배워서 대학에 올 수 있는 거죠.    

Q. 『우연과 필연』(자크 모노)과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를 각각 “전공까지 바꾸게 한 책” “세상을 보는 기준을 마련해준 책”으로 꼽은 바 있다. 이 정도로 좋은 책이 있다면, 혹은 지금 이 시기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독자들에게 몇 권 추천 부탁드린다.   

A. 제가 하도 추천하는 바람에 인기가 역주행한(웃음)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를 권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총과 균과 쇠로 설명하는데, ‘균’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사태에 잘 들어맞는 이야기가 될 거고요. 굉장히 새로운 혜안을 주는 책입니다. 역사책치고는 상당히 통섭적인 관점을 보여줍니다. 

또한, 인류가 감염병의 시대에 본격적으로 도달했고, 이런 상황에서는 다윈적 사고가 필요해요. 폴 W. 이월드의 『전염성 질병의 진화』와 제가 번역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R. 네스, G. 윌리엄스)도 권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태가 종종 벌어질 텐데, 내가 어떻게 사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에 대해 상당히 큰 지혜를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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