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진중권 “감각의 역사, 내가 쓴 최초의 책”
[책 읽는 대한민국] 진중권 “감각의 역사, 내가 쓴 최초의 책”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24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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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그는 오렌지색 자전거를 타고 왔다. 차는 없다고 했다. 핫핑크색 폴더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자동차가 무인주행을 하는 시대, 스마트폰이 접혔다가 펴지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모습은 ‘기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래, 차는 이동이 본질이고, 전화기는 통화기능이 본질이다. 어쩌면 우리는 끝없이 추가되는 수많은 ‘기능’들에 머리가 어지러워져 이미 본질을 망각한지 오래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쏟아지는 자극적인 정보들에 정작 중요한 문제를 놓치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최근 그가 세상에 내놓은 책 『감각의 역사』가 다루는 주제도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그것이다. 기본(基本)과 본질(本質). 즉,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정신’이기 이전에 감각하는 ‘육체’이자 ‘신체’라는 자명한 본질. 그리고 밟고 있는 땅을 무시하고 그저 ‘정신’에만 천착했고, 신이라도 되려는 듯 위로만 올라가려 한 철학과 과학이 지금까지 간과한 기본. 아주 당연하게도 수백 년 동안 배제돼버린 감성, 정념, 감정 따위.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철학과 과학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바벨탑과 같았고, 자신이 기본적으로 ‘동물’이라는 본질을 생각하지 못한 인간은 반쪽짜리 세상을 보고 반쪽의 삶을 살아왔다. 진중권은 그 거대한 맹점을 포착했다.   

기본, 본질. 그러고 보니, 진중권도 정치비평가이기 이전에 학자.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학문. 그래서 우리는 정치 이야기는 빼기로 했다. 더욱이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이 ‘감각지각학’ 프로젝트에 이물질이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23일 망원동 한 카페 앞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운 그와 마주했다.  

Q.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명사로 선정됐다. <독서신문> 독자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명사가 아닌데 명사라고 하니 조금 이상합니다. 그러나 영광스럽구요. 독자 여러분을 지면으로라도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이미지의 시대’라서 책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어 다소 안타까운데요. 그래도 책을 사랑해주는 여러분들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Q. 어떻게 지내셨는지?

A. 『감각의 역사』를 내느라고 작년 10월부터 올 8월까지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특별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쓰는 데 투여했고요. 이 작업이 끝나고 나니 방학이 한 주 남았더라고요. 한 주 정도 쉬고, 지금은 다음 책. 조영남 대작 사건과 관련해서 예술에 있어서 작품의 저작권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는 책을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Q. 다작가이시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쓰는지?

A. 페이지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감각의 역사』의 경우에도 직접 작업한 지는 3년이 됐어요. 연재하고, 다시 연재한 것을 다듬고, 보강하고, 다른 내용을 또 쓰고 이러니까요. 글을 굉장히 늦게 쓰는 편이고, 글을 굉장히 많이 고쳐 쓰는 편이에요. 하나의 문장을 수십 번씩 고쳐 쓰다 보니 진도가 잘 안 나가요.  

Q. 진중권의 매일 매일이 궁금하다. 

A. 별거 없어요. (웃음) 먹물들이 그렇잖아요. 우리는 쉬는 시간하고 일하는 시간이 딱히 구별이 안 돼요. 쉴 때도 책 보고, 일할 때도 책 보고. 쉴 때도 글 쓰고, 일할 때도 글 쓰고 이렇기 때문에 강의라든가 강연을 하거나 TV에 출연하거나 그런 일정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은 책 보고 이러면서 지내는 거죠. 재미없어요, 그래서. 가끔가다가 제 일상에 관해서 TV 출연 요청을 받는데요. 우리는 그림이 안 나와요. 그나마 집에 고양이가 있는데 고양이는 아시다시피 개랑은 다르거든요. 가만히 있거든요. 먹물의 삶도 재미없고, 고양이랑 사는 모습도, 고양이가 워낙 재미없는 동물이라서 (웃음) 한자리에 앉아서 두 시간씩 그냥 그대로 있고, 그렇게 그림이 안 나와서 안 하고 있지요.
그것 외에는 잠을 잘 못 잡니다. 특별한 병이 있는 게 아니라, 신경 때문에. 대개 집중을 하면 신경이 곤두서잖아요. 이게 풀어져야 하는데 잠잘 때까지 안 풀어지면 잠을 설치게 돼요. 그러다 보니 아침에 피곤하고, 때문에 몸도 좀 안 좋고, 두통에 시달리고, 그런 상황이지요. 좀 푹 자봤으면 좋겠어요.      

Q. 『감각의 역사』, 고중세에서 맥이 끊긴 ‘감각학’을 들고 왔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은 다소 어렵다. ‘감각학’, 쉽게 얘기하면 무엇인가? 

A. 이제까지 철학사는 기본적으로 정신과 이성 위주예요. 그런 가운데 신체, 육체와 감성이 사라져버린 거죠. 인간 자체는 동물이잖아요. 육체적인 존재이고, 감성적인 존재인데, 철학이라는 것은 인간을 상당히 인위적으로 구성해냅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을 신체나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정신’으로서 규정하는, 혹은 ‘정신’을 중시하는 전통이 생긴 거죠. 또 철학 자체가 감각보다 확실한 이성을 중요시합니다. 사실 인간은 육체적인 동물이고, 감성적인 존재인데, 철학 자체는 그런 인간의 자연적인 조건을 배제하고, 인간을 신에 가까운 존재로 생각하다 보니 철학이 정신 위주, 이성 위주로 구성된 거죠. 그런 가운데 나머지 반쪽, 즉 육체와 감성이 그동안 무시돼왔습니다. 그것을 다시 한번 부활시키자. 복권시키자는 프로젝트이지요. ‘감각학’보다는 ‘감각지각학’이라고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Q. 감각은 ‘주관’과 어떻게 다른가?

주관이냐 객관이냐 하는 것도 이성적인 구별이죠. ‘감각’은 주관과 객관이 구별이 안 돼요. 예를 들어 이 아이스커피가 담긴 컵을 잡아보세요. 차갑지요. 이 차가움이 어디에 속해요? 컵에 속한 것입니까, 아니면 본인에게 속한 것입니까. 만약에 손이 차가웠다면 이 차가움을 못 느꼈을 겁니다. 방금 느낀 ‘차가움’이라는 감각은 아이스커피가 담긴 컵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해요. ‘감각’에서는 대개 주관과 객관이 나뉘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철학은 인위적으로 이것을 나눠온 거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물질’ 아니면 ‘정신’밖에 없다고 말한 데카르트부터.    

또 다른 예로, 과학에서는 이 방에 있는 형광등 불빛도 객관화하잖아요. 예를 들어서 빛의 세계를 럭스(lux, 조명이 밝은 정도를 말하는 조명도에 대한 실용단위)로 측정을 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이 형광등에 의해 형성된 이 방의 분위기는 럭스로는 측정이 안 되지요. 우리는 이 형광등 빛을 럭스로 체험하는 게 아니라 ‘빛’으로서 체험하잖아요. 또, 앞에 있는 이 커피를 드셔보세요. 어때요? 우리가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아 이것은 커피다’, 이건 ‘인식’이죠. 근데 우리가 커피 마실 때 ‘아 이것은 커피다’ 하면서 마시는 건 아니죠. 그냥 ‘아…’ 이거죠. 바로 이 부분을 과학에서 지금까지 ‘주관적이다’라며 배제해버린 겁니다. 근데 이게 꼭 주관적인 건 아니거든요. 예컨대 과학은 저녁노을을 어떤 파장으로 나타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저녁노을은 그저 아름답죠. 그런데 이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대다수 사람 또한 그렇게 느낀다면 주관적인 것만은 아닌 거죠. 그런 건데, 이것을 그저 ‘주관적이다’라며 배제해버린 거죠. 과학이나 철학이 이렇게 배제해버린 것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풍부한 삶의 세계는 과학에서, 또는 철학에서 배제가 돼버린 거고, 저는 이 부분을 다시 살리자는 겁니다. 주관이냐 객관이냐는 철학적 추상이고, 이 철학적 추상 이전에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거죠. 

주관이냐 객관이냐를 나누는 통념은 17세기 데카르트 이후에 만들어진 거예요. 당시에는 불가피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인 존재였고, 정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전쟁 같은, 육체적으로 해결했지요. 이런 인간들을 문명사회에 맞게끔 길들이는 과정에서 데카르트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그 프로젝트가 좀 과도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원래 인간이 육체라는 사실, 이성조차도 감각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거죠. 그런 데카르트로부터 ‘감각’을 부활시키려는 프로젝트가 바로 본래의 ‘미학’이었는데요. 이것조차도 그저 ‘미와 예술에 관한 학문’으로 범위가 줄어든 거죠. 감각을 인식으로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감각 그 자체로 구제하고 복원하려는 시도, 『감각의 역사』는 미학을 본래의 미학으로 돌리는 시도입니다.               

Q. 2015년 12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창비’ 블로그에 연재한 글들이 몸통이고, 절반 이상은 새로 썼다. 책이 상당히 두꺼운데, 집필의 ‘열정’은 어디서 왔는지…

A. 이 프로젝트는 사실 2002년에 시작됐어요. 제가 찾아보니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짧은 글을 쓴 게 있더라고요. 그다음에 2006년 정도에 제가 중앙대 겸임교수할 때 이 ‘감각론’을 가지고 세미나를 했어요. 그 후에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제가 잘리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잠시 그쳤다가, 다시 ‘창비’에서 2015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거지요. 연재를 한 1년 했고요. 그 뒤에 1년 정도 가다듬고. 연재할 동안에는 아랍 문헌들을 못 찾아서, 두 번째 문헌들을 보고 간접인용을 했는데요. 그 사이에 아랍 문헌들을 찾았어요. 영어번역본을 찾아서 글을 다시 고쳐 쓰고, 이런 일들을 했지요. 원래는 예비작업 정도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이 작업은 이렇게 끝낼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조명받지 못했던 육체와 감성, 감각의 철학사를 복원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랑말랑한 대중서를 원했던 출판사에서는 상당히 난감해하더라고요. (웃음)      

Q. 어떻게 보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프로젝트일지도 모르겠다. 작업이 즐거웠을 것 같다. 

A. 그랬죠. 아무도 안 했던 일을 하는 거다 보니까. 다른 나라에서도 작업해놓은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참고할 게 많이 없었어요. 다만, 시각, 광학론에 관한 연구들은 비교적 많이 나와 있어서 참고했어요. 오감 전체를 가지고, 감각을 가지고 철학사 전체를 작업한 것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무리한 시도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있을 법도 한데, 외국에도 없더라고요. 단순무식한 시도라서 그런가. (웃음) 너무 광범위한 거라서.     

Q. 학자로서의 순수한 유희였나? 혹은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

A. 저도 저만의 이론을 가져야 하니까요. 우리나라는 교수를 기능이 아니라 신분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라면, 만약에 자기가 학자라고 한다면 자기 견해가 있어야 해요. 자기 이론이 있어야 하고요. 이제는 저도 그것을 만들 때가 됐고, 내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머리가 계속 나빠지고 있어서,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요. 옛날에는 머릿속에 창을 대여섯 개를 열어놓고 작업했는데 지금은 잘 안 열려요. 지나고 나면 까먹어서 계속 노트에 적어놔야 하고요. 더 늦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감각의 역사』가 제가 쓴 최초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감각의 역사』는 일종의 예비작업이고, 감각을 바탕으로 미술사를 다시 보는 두 번째 책과, 감각을 바탕으로 사회를 보는 세 번째 책이 본격적인 작업이고 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요.
 
Q. 책에서 “미학적 자본주의가 감각의 부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고 적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자는 감각학의 발달이 어떤 금전적인 가치를 지니느냐에 대한 속물적인 호기심이 생기는데…

A. 사회적으로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어요. 예컨대 제품에서도 미학적 체험이 중시되고 있는데요. ‘미학적 자본주의’ ‘감성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실용성이 아니라 감성을 따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제품을 볼 때 디자인을 먼저 보잖아요. 저도 최근에 ‘삼성전자’ TV나 ‘라이카’ 카메라를 기능을 따지기보다는 그저 예뻐서 샀어요. 그런 것들. 예컨대 ‘그립감’ 같은 촉각 디자인, 소리를 디자인하는 청각 디자인, 최근에는 자동차 내부에 향을 어떻게 하느냐를 디자인하는 후각 디자인도 중요시되지요. 여행사에서 사무실에 어떤 향수를 놓느냐에 따라서 계약 체결률이 달라져요. 또한, 비단 현실 감각의 체험만이 아니라, VR, AR 등을 보면 디지털화된 가짜 감각의 체험 역시 강화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게 되면 최근의 자본주의가 미학적 체험, 감각의 체험을 강조하는, 그 체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경향성이 강해졌어요. ‘가성비’는 이제 옛말이고 ‘가심비’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사회 분위기가 ‘감각’으로 가고 있는데 그동안에 우리는 이 ‘감각’을 다루지 않았던 거예요. 저는 미래의 경제학은 ‘감성학’이라고 계속 얘기해왔어요. 왜냐하면 먹고 사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다 해결이 됐거든요. 이런 것들은 제가 3권에서 다룰 예정이에요.    

Q. 몇 년 전 ‘호모코레아누스’라는 강연에서 “탈근대적 관점에서는 한국인의 풍부한 감각, 육체성, 정념이 맞아떨어질 수 있다”며 “보존해야 할 정념이 있다”고 했다. 감각에 관한 다양한 사회·경제·기술적 의제를 다룰 3권에서 언급할지도 모르겠지만, 보존해야 할 감각, 혹은 정념이 무엇인지 귀띔해준다면?

A. 예를 들어서 촛불집회 같은 것 있잖아요. 강한 정념들이 있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그게 없어요. 우리한테만 있는 거죠. 4.19부터 5.18, 6.10, 그리고 2016년 촛불집회까지 강한 정념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이뤄간 거거든요. 일본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념 자체가 없어요. 밑에서 흔들어서 위가 바뀐다는 믿음 자체가 없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이런 한국인을 굉장히 원시적으로 봐요. 한국 사람들은 규율도 없고 규칙도 없고, 논리도 없고 떼만 쓰면 된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더라고요.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한국은 민주주의지만, 일본은 민주주의가 사실 아니거든요. 60년 동안 일당독재를 하고 있고, 자민당 의원의 삼 분의 일이 세습이거든요. 지금 일본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어요. 2,30년 동안 정체돼 있잖아요. 아베노믹스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고요. 그렇다면 일본 사회는 어떤 개혁이 필요하고, 그 개혁은 정치가 해줘야 하는데, 정치 자체가 안 바뀌니까 계속 그렇게 가는 거예요. 반면에 한국은 문제는 많았지만, 정치가 바뀌어서 필요한 개혁을 해나갈 수 있는 거죠.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감정적이라고 보고, 자기들은 논리적이라고 보는데 오히려 우리가 갖고 있는 그런 정념들이 특히 정치적으로, 혁명적 에너지로 나타났을 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이는 거죠. 우리가 일본에 근대화에는 뒤졌지만, 근대화가 안 된 부분들이 근대화 이후에는 훨씬 더 유효할 수 있는 거죠. 

또, BTS나 한류 아이돌을 일본 아이돌과 비교해보세요. 우리는 세계진출을 하는데, 일본 아이돌은 학예회 수준이지요. 일본과 우리나라는 리듬감 자체가 달라요. 어떤 일본인들이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2002년 월드컵 때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이게 일본인들은 어려워서 못 하겠대요. 우리한테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음악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거, 에너지, 날것, 흥 이런 게 한류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때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뒤처져있었던 조건들, ’모던‘에서 불리했던 조건들이 ’포스트 모던‘에서는 유리한 조건으로 바뀌는 거죠.      

Q. 반대로, 우리가 개선하거나 버려야 할 정념 혹은 감각이 있다면?

A. 많죠. 한국과 일본을 예로 들었는데요. 저는 우리가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아직도 굉장히 많다고 봐요. 특히 정념보다는 합리성과 이성을 배울 필요가 있어요. 우리보다 개항이 100년은 빨랐으니까요. 일본은 1,600년대에 이미 네덜란드 책 번역서가 나올 정도였어요. 임진왜란 때도 조총 들고 왔고, 제2차 세계대전 때도 항공모함을 만들어 싸웠죠. 노벨상 수상자도 얼마나 많이 나왔습니까. 그런 일본의 저력들은 배울 필요가 있어요. 예컨대 일본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모노즈쿠리 정신’, 하나를 가지고 계속 파헤치는 것도 우리에게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일본보다 앞선 부분이 있다고 의기양양하기보다는 일본 사회에서 아직도 우리가 배울 게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올바른 자세가 아닌가 해요.

Q. 앞으로 ‘감각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조망하는 작업’(제2권)과 ‘감각에 관한 다양한 사회·경제·기술적 의제를 다루는 작업’(제3권)에 골몰할 것인가? 혹은 계획하고 있는 다른 일이 있는지…

A. 지금은 가수 조영남씨의 대작 문제를 예술사의 관점에서 다룬 책을 마무리 작업 중이고요. 여담이지만, 조영남을 구속하라는 사람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앤디 워홀이 오히려 더 부도덕하지요. 예술이 ‘아이디어’라고 말한 마르셀 뒤샹도 문제가 돼야 해요. 이론을 폼으로 했다는 거죠. 이런 비판이 이 책에 들어있어요. 

‘감각지각학’ 2부는 내년쯤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 같아요. 이미 두 꼭지는 써놨어요. 예컨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라는 사진작가에 대한 글하고, 아이슬란드의 설치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에 관한 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는 어떤 관점이냐 하면, 미술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누면 세계를 육안으로 보는 시기, 그다음에 20세기 세계를 카메라 렌즈로 보던 시기, 21세기 세계를 컴퓨터로 보는 시기로 나눌 수 있어요. 미디어가 바뀜에 따라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면, 그에 따라 사진이 어떻게 바뀌고, 회화, 예술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것들. 예컨대 20세기 카메라로 세상을 보게 되자 현대 추상예술이 등장했지요, 그리고 21세기 들어서 이제는 컴퓨터로 세상을 보게 되자 예술도 변한다는 거죠. 그런 식의 변화를 잘 보여준 것이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작품이에요. 일반적으로 카메라와 눈은 ‘초점’, 즉 포커스가 있어요. 초점이 맞는 곳을 제외하고 흐려지죠. 그러나 이 작가의 작품을 보게 되면, 모든 곳에 포커스가 다 맞아요. 따라서 현실보다 강렬하게 다가오지요. ‘카메라 지각’이 아닌 거죠. 우리 눈이 이 세계를 볼 때 만약 모든 곳에 포커스를 다 맞출 수 있다면 보이는 세계인 거죠. 3권에서는 ‘미학적 자본주의’에 관한 문제들, 인공지능 세계에서의 감각 문제 등을 다룰 거예요.       

Q. 독자들이 ‘감각지각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 혹은 생각거리를 주는 책 몇 권 추천 부탁드린다.

A. 우리 먹물들이 읽는 책은 조금 달라요. 정보량이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대중들이 읽는 책은 많이 안 읽거든요. 제가 호기심을 가지고 독서를 할 때, 대학, 대학원 다닐 때 기억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첫째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인류학책이고, 원시 주술에 관한 책이에요. 저에게 신화보다 더 큰 감명을 준 책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이 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주술적 상상력이 시를 쓰고 싶게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밀밭에는 정령이 살고 있어요. 이 밀을 베어나가면 정령이 계속 도망가요. 그리고 정령이 마지막 남은 밀에 깃들어요. 그것마저 딱 베어내면 정령이 ‘꺅’하고 소리를 질러요. 원시시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는 거죠. 엄청난 시인이지요. 우리는 생명이 있는 것까지도 사물화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사물에까지도 생명을 부여했다는 거죠. 

두 번째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 죽음에 대한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중세 초부터 중세 말, 근세, 낭만주의 시대,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춤추는 죽음』이라는 책을 썼던 기억이 나고요. 

세 번째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서양 사람들이 오늘날 어떻게 이렇게 젠틀맨이 됐는지. 과거 중세 때 단순무식 호전적이었던 전사들이, 외향적 인간들이 어떻게 내성적 인간으로 변화해갔는가.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다룬 책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술문화, 미학적 문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과정도 볼 수 있어요. 그 과정이 저한테 참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그런 거 있잖아요. ‘아 이런 책 한 권 쓰면 죽어도 좋겠다’ ‘나도 언젠가 이런 책 쓰면 좋겠다’라는 느낌을 주는 책 세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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