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이해인 수녀 “존재는 죽을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
[서믿음의 책 한 모금] 이해인 수녀 “존재는 죽을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5.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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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사진=연합뉴스]
이해인 수녀 [사진=연합뉴스]

수도사이자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76)는 해방되던 해인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해방둥이다. 1남 3녀 중 셋째. 아버지 직장을 따라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부산으로 피란길에 나섰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납북되면서 아버지 없이 험난한 시기를 통과했다.

이 수녀는 어려서부터 시에 관심을 보였다. 밖에서 놀기보다 독서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을 즐겼고, 언니, 오빠가 읽던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서시」 등을 읽으며 어려서부터 시심(詩心)을 키웠다. 이 수녀는 과거 인터뷰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상징적 언어로 압축한 시가 소설보다 더 끌렸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수녀가 첫 서원(수녀가 될 것을 약속)을 한 것은 1968년이다. 올리베따노 베네딕도 수녀회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1976년 종신서원을 했다. 이때 이명숙이란 본명 대신 클라우디아란 세례명을 얻었다. 잘 알려진 이해인이란 이름은 수녀회 입회 후 마련한 필명이다. 이 수녀는 이해인이란 이름으로 1970년 가톨릭 재단이 발행하는 어린이월간지 <소년>에 「하늘」 등 세 작품을 투고하면서 등단했다.

책 『민들레의 영토』 개정판본
책 『민들레의 영토』 개정판본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출간된 건 1976년. 피아노 레슨을 받듯 시도 경험 많은 선배들에게 조언을 받아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홍윤숙 시인에게 시 10편을 보냈는데, 시를 받아본 홍 시인이 부산으로 내려와 출판을 강권하면서 그의 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2016년 펴낸 『민들레 영토』 개정판 서문에서 이 수녀는 “(1976년 당시) 종신 서원을 기념하는 뜻으로 조금만 찍어서 수도 가족끼리 돌려 보는 것으로” 결정했으나 “어느 일간지에 시집이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어서 책이 발간됐다”고 밝혔다.

내가 가장 많이/ 사랑하는 당신이/ 가장 많이/ 나를 아프게 하네요//보이지 않게/ 서로 어긋나 고통스런/ 몸 안의 뼈들처럼/ 우린 왜 이리/ 다르게 어긋나는지//(중략) 너무 오래되니/ 편안해서 어긋나는 사랑/ 다시 맞추려는 노력은/ 언제나/ 아름다운 의무입니다 – 이해인 「사랑의 의무」

당신 때문인가요?/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마구 가슴이 뛰어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자꾸만 마음이 바빠져요/ 가시밭길로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꽃밭으로 보여요/ 제가 사랑에 빠진 것 맞지요? - 이해인 「고백」

종교인의 시지만, 종교색이 짙지 않은 이 수녀의 시는 1980년대 시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 펴낸 시집만 14권, 산문집 10권. 「민들레 연가」 「말의 빛」 등 몇몇 시와 수필은 초·중·고교 교과서(2000~2004년)에 실리기도 했다. 이 수녀를 시인의 길로 이끌었던 인물 중 한명인 박두진 시인은 “시인이 되기 위한 시로서가 아니고, 시인으로서의 시가 아닌 데에 그의 시의 일단의 순수성과 그 동기의 초월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배우 이영애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나에게 그야말로 산소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세상과 (일정부분) 단절된 수도원 생활을 했기에 맑고 투명한 시를 지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수도원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에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8년 이 수녀는 직장암에 걸렸다. 생존확률은 30%. 죽음과 사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항간에는 직장암이 육식 위주의 식습관 탓이라는 이유에서 ‘이해인 수녀가 육식을 즐겼다’는 낭설이 돌아 심적 고통을 경험했다.

다른 종교인과 허물없이 교류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를 출간한 후 친구의 제안으로 법정 스님에게 책을 보낸 것에 법정 스님이 답장을 해오면서 친분을 쌓게 됐는데, 누군가는 이를 애정 관계로 의심했다. 이 수녀는 법정 스님 1주기 기념사를 통해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다”며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님과의 TV 대담에서 (법정 스님이)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고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병과 오해 그리고 수많은 삶의 역경 속에서도 낮은 곳에서 헌신해온 그는 이제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고 있다. 나이 먹음에 따라 주변인들과의 이별도 흔해졌다. 지난해 말 친오빠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고, 뒤이어 같이 지내던 수녀 한분이 소천했다. 요즘 이 수녀의 관심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한 고민이다. 지난해 12월 출간한 『이해인의 말』(마음산책)을 통해 이 수녀는 “지금 노년을 살면서도 모든 생명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그렇게 이별을 함께한다는 것을 묵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지나온 삶 속에서) ‘사랑하려는 노력 속에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나는 사랑 자체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랑 자체가 되려면) 사람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가톨릭 수도원에서 잘 쓰는 말로 ‘존재는 죽을 때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전한다.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해인의 말』에 등장하는 어느 택시 기사는 이 수녀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고아원을 가거나 양로원을 가거나 행려병자들이 있는 데를 가도 다 수녀들이 있어요” “(종교인들이 택시를 타면 계속 믿으라는 말만 하는데) 수녀들은 설교를 하지 않아요. 그런데 약자들이 사는 곳에 가면 꼭 수녀들이 있어요. 희한하죠?”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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