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파란만장 100세 노인의 일탈 『창문넘어 도망친...』
[서믿음의 책 한 모금] 파란만장 100세 노인의 일탈 『창문넘어 도망친...』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5.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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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스틸컷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스틸컷

100세 생일파티를 한 시간 앞둔 노인이 양로원 1층 창문을 넘고 있다. 파티엔 시장이 참여하고 지역신문의 취재가 예정되어 있지만, 알란 칼손에게 그건 중요치 않다. 비록 몸뚱이는 늙고 병들었지만,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자유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핵심 가치다.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의 주인공 알란의 삶은 가히 소설적이다. 1905년 스웨덴 플렌 시의 작은 도시 윅스훌트에서 태어난 알란은 이른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열다섯 살에 폭약회사를 차리지만 자칫 마을을 통째로 날려버릴 사고를 일으키면서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이후 고향을 떠나 전 세계를 떠돌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의 내력 역시 과히 소설적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20대 때는 폭약이 설치된 다리를 건너려던 프랑코 장군(스페인의 독재자)의 목숨을 구하고, 30대 때는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개발된 곳)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부통령 해리 트루먼과 친구가 된다.

40대초반에는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을 돕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마오쩌둥의 아내를 구해내고, 40대 후반에는 러시아 과학자 포포프를 따라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을 만났다가 반동으로 몰려 블라디보스톡에서 노역을 살게 된다. 50대 무렵, 블라디보스톡을 탈출해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만났다가 위기에 처하는데, 마오쩌둥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60대에는 파리 주재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통역으로 일하다가 존슨 대통령을 만나 미국 스파이로 일하게 되고 70대에는 포포프를 포섭해 모스크바에서 미국 스파이로 활동한다. 이후에는 고향인 스웨덴 말름셰핑으로 돌아온 양로원에서 노후를 보내는데, 그러던 중 탈출을 감행, 폭력배의 자금에 손을 대게 되면서 또 한번의 이변을 연출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설의 맛깔스러움을 잘 살린 해당 소설은 2009년 출간 이래 41개 언어로 번역돼 800만부 이상 팔린 대작이다. 2014년에는 동명의 영화가 제작돼 2015년 국내 개봉되기도 했다. 저자는 요나스 요나손(본명은 페르올라 요나손). 15년 차 기자, 직원 2명에서 100명으로 성장한 미디어 기업 대표의 이력을 지닌 그는 2007년 모든 걸 정리하고 스위스로 넘어가 소설 집필에 돌입한다. 허리 통증과 과도한 스트레스에 따른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 결과물이 『창문 넘어 도망간 100세 노인』이다.

해당 소설은 이례적으로 내용보다 제목이 먼저 정해졌는데, 앞서 저자는 언론인터뷰를 통해 “(소설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 긴 제목을 만들고는 나 스스로도 그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저자가 다루는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희대의 독재자들이 지면을 채우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실존 인물의 허구적 상황이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실제로 일어났을 상황이 상당한 무게로 짓누르는데, 저자는 그런 압박을 특유의 유머로 눙친다. 또한 대단한 문학 기법이 녹아있진 않지만, 독서가 힘겹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 나가는 능력이 탁월하다. 재미없는 작품 번역을 최악의 노동으로 손꼽는 본 도서의 옮긴이 임호경은 해당 작품을 “책장을 넘기며 혼자서 키득거리게 만드는 작품,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작품, 이야기에 빠져 정신없이 번역하다 보면 어떻게 페이지들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되는 작품, 마지막 페이지가 가까워질수록 기쁘기는커녕 점점 줄어드는 케이크 조각을 보듯이 아쉬움이 커지는 작품”이라 지칭하며 “백세 노인 나이의 반만 되어도 벌써 저마다의 감옥을 파고 그 속에 자빠져 누워 버리는 우리들에게 한 가닥 힐링처럼 다가온다”고 호평한다.

고통과 절망이 뒤엉킨 세상사의 쓴맛이 육수라면, 유머를 가득 품은 해당 소설은 쓴맛을 중화하기에 적당한 단맛을 품고 있다. 굵기와 길이가 적당한 국수 가락처럼 후루룩 읽히며 거친 세상과 마주할 포만감을 선사한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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