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등장인물만 1200명...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서믿음의 책 한 모금] 등장인물만 1200명...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3.20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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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 [사진=연합뉴스]
조정래 작가 [사진=연합뉴스]

2020년은 조정래 작가에게 뜻깊은 해였다. 1970년 <현대문학>에 소설 「누명」을 발표하며 등단한 지 5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내놓은 수십여편의 장단편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건 이른바 대하소설 3부작이라 불리는 『아리랑』(1995) 『태백산맥』(1986) 『한강』(2002)이다. 지난해에는 아내(김초혜 시인)가 검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개정판이 재출간되기도 했다.

해당 작품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두루 아우른다. 먼저 1983년부터 6년간 <현대문학>에 연재된 후 1986년부터 책(한길사에서 출간 이후 해냄에서 재출간)으로 출간된 『태백산맥』은 광복 이후부터 6·25 전쟁 휴전까지의 시기를 파헤친다. 전남 벌교를 배경으로 이념 대립에 휩쓸리는 당시 사회상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공산이념 묘사가 금기시되던 당시 이념 갈등을 주 내용으로 삼은 소설의 인기는 대단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여겨졌고, 일반인까지 널리 읽히면서 지난해 12월 기준 266쇄(약 800만부, 해냄출판사 자료)를 기록했다.

“작가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존재다. 소설 속 역사적 사실은 모두 진실이며 독자들은 그것을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론을 밝혀온 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음을 강조해 왔다.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인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그들을 떠받치는 시대 상황은 사실이라는 식의 주장이었다. 이 때문에 조 작가는 상당 기간을 외부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작품에 친북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이유로 온갖 고소고발에 시달리면서 수사기관을 안방 드나들 듯 불려 다녔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탈북한 뒤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의 평가이다. 태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1997년 북한 외교관 신분으로 덴마크에 거주하던 당시 봤던 영화 <태백산맥>에서 배우 안성기가 빨치산 대장에게 ‘당신들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고 하는 장면을 보고 ‘상당한 동요가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남한에서는 친북이라고 비판받는 소설이 북한에서는 사상 동요를 일으킬 정도로 다르게 읽혔다는 것이다. 실제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는 북한군의 주민학살을 두고 지식인 김범우가 보성군당위원장 염상진에게 “당신들은 실패했소. 아주 철저히 말이요...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고, 사람들의 증오에 토대하는 한 그 어떤 사상도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1990년에 접어들어 조 작가는 <한국일보>에 『아리랑』 연재를 시작한다. 조 작가가 현장취재를 중시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조 작가는 중국 만주, 동남아 일대, 미국 하와이, 일본, 러시아 연해주 등지를 취재한 후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까지 한국민이 겪어야 했던 애환을 그려냈다. 『아리랑』은 1994년 12권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된 뒤 지난해까지 약 500만부(144쇄)가 팔렸다.

조 작가는 이후 탈장, 오른손 마비, 위궤양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1998년 <한겨레신문>에 3부작의 마지막인 『한강』 연재를 시작한다. 유일표, 유일민 형제 등을 통해 연좌제, 베트남 파병, 해외 근로자 파견 등의 사회상을 조명하면서 1959년부터 1980년까지 20년간의 근현대사를 되짚는다. 전태일 열사, 김진홍 목사 등 실재인물의 이야기도 흥밋거리 중 하나다. 『한강』은 2000년까지 연재를 마친 후 2001년 10권으로 출간돼 지난해까지 300만부(100쇄)를 기록했다.

중복된 이름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조 작가 세 작품에 만들어 낸 인물은 총 1,200여명이다. 꼬박 20여년을 들여 조 작가가 만들어 낸 이들은 구한말부터 1980년까지의 근현대사 속 각양각색의 삶을 내비치며 우리네 삶을 관조한다.

문단에 회자되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중 하나는 작가가 외동 아들 부부에게 10권 분량의 『태백산맥』을 필사토록 한 것이다. 그는 필사의 이유를 세 가지로 밝혔다. 첫째, 분단의 비극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 둘째, 필사를 하면 문장력이 강화돼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소설 속 인간군상의 처세술을 배워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다. 이 외에도 『태백산맥』 10권 전체를 필사한 22인(공동필사 1팀 포함)의 필사본이 전남 보성군 태백산맥문학관에 전시돼 있다. [독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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