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를 꿈꾸며...
[서믿음의 책 한 모금] 그리스인 조르바의 자유를 꿈꾸며...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4.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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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나'와 조르바가 해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사진=영화 '희랍인 조르바' 스틸컷]
소설 속 '나'와 조르바가 해변에서 춤을 추고 있다 [사진=영화 '희랍인 조르바' 스틸컷]

그리스 남부의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한 사내가 크레타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다. 사내는 크레타섬으로 건너가 갈탄 채굴 사업을 시작할 참이다. 그때 “키가 크고 몸이 가는 60대 노인”이 불쑥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요청한다. 이유를 묻는 사내에게 노인은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라며 자신은 수프도 만들 수 있고, 산투르(금속 현을 채로 때려 소리를 내는 이란의 타악기)도 연주할 수 있다고 강권한다. “공갈 비슷한 태도와 격렬한 말투”가 마음에 든 사내는 그를 갈탄광의 채굴 감독으로 고용한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 화자인 ‘나’와 조르바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진다.

소설 속 ‘나’가 경험보다는 책, 본능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인물이라면 조르바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성으로 본능을 통제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 가는 데로 움직인다. 조르바가 ‘나’에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라고 밝힌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두목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자유에는 세속의 모든 제약이 포함된다. 윤리·종교 교리도 예외가 아니다. 조르바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000번쯤” 결혼했다고 밝히고,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걸요”라고 성토한다. 조르바는 관습으로 얽어맬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인물로 갖은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질그릇 빚기에 몰두한 어느 날에는 물레를 돌릴 때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도끼로 검지를 잘라버렸다.

인생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의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는 유독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박웅현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니코스 카잔자키스를 삶의 멘토로 소개하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감동이 늘었고 촉 쓰는 게 예민해졌다”고 술회했다. 김훈 작가는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으로 손꼽았고,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은 “2013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 감명받아 교수직을 그만두고 만화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작품이다. 1947년 이후 아홉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의 영예는 거머쥐지 못하자 당시 알베르 카뮈는 “카잔자키스야말로 나보다 백번은 더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했고, 영국 작가 콜린 윌슨은 “카잔자키스가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면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다만 그런 세계적인 유명도와 달리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국인 독자 비중이 높고, 크레타섬에 있는 카잔자키스 박물관을 찾는 이도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많다.

1946년 그리스에서 처음 출간된 『그리스인 조르바』는 저자 카잔자키스의 자전적 소설에 가깝다. 소설 속 배경인 크레타섬이 저자의 실제 고향이며, 실제 그곳에서 조르바의 실제 모델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갈탄 채굴 사업을 벌여 실패를 경험했다. 카잔자키스는 자서전 『영혼의 자서전』에서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둘이서 벌인 사업이 거덜 난 날 우리는 해변에 마주 앉았다. 조르바는 숨이 막혔던지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고 회상했다.

사진 왼쪽부터 열린책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에서 출간한 『그리스인 조르바』
사진 왼쪽부터 열린책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에서 출간한 『그리스인 조르바』

현재 국내에는 열린책들, 민음사. 문학과지성사 등에서 출간한 번역서가 유통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번역본은 1980년 이윤기 번역가가 펴낸 열린책들 버전으로 그리스어→프랑스어→영어→한글의 다중 번역을 거쳤다. 현재 판매 중인 도서는 2000년에 한 차례 개역된 버전이다. 2018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2014년에 완역된 영문본을 번역한 것으로 김욱동 한국외대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같은 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도서는 그리스어를 한글로 직역한 최초의 작품으로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가 번역에 참여했다. 유 교수는 기존에 번역본의 카잔‘차’키스라는 표현을 잘못된 표현으로 지적하며 카잔‘자’키스로 바로잡았다.

한편, 카잔자키스는 1883년 2월 18일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당시 크레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있을 때였다. 1911년에 2살 연상의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결혼을 하고 1917년 1차 세계대전으로 석탄 연료가 부족해지자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 채굴 사업을 벌인다. 이 경험은 1915년 『그리스인 조르바』의 소재가 된다. 1919년에는 그리스 공공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어 러시아 남부 캅카스에서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될 처지에 놓인 그리스인 15만명을 송환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1922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던 중 극장에서 처음 본 여성(프리다)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이튿날 하룻밤을 약속하지만,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는 이른바 ‘성직자의 병’(금욕주의 성직자들이 성욕을 이기지 못했을 때 걸렸던 병)에 걸린다. 그로 인해 끝내 프리다와는 재회하지 못하는데, 그 일화는 『영혼의 자서전』에 소개됐다.

카잔자키스는 1957년 사망했다. 중국 정부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가 광저우에서 예방접종 주사를 맞고 돌아가던 중 비행기에서 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후 회복했지만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아시아 독감에 걸려 그해 10월 26일 별세했다. 그의 묘비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고 쓰여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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