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원태연 시인의 하드코어 반성문 『고맙습니다...』
[서믿음의 책 한 모금] 원태연 시인의 하드코어 반성문 『고맙습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5.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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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예스]
원태연 시인 [사진=채널예스]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원태연 시인의 시(詩)는 문학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이다. 사실 이면의 무형을 주로 다루는 시가 지닐 법한 난해함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단한 배경지식 없이도 시구가 품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내게 별 관심 없지만 그런 상대만 바라보는 나의 감정, 가슴을 가득 메운 무형의 사랑을 언어에 담아 그 느낌을 독자와 공유한다. 그 순간 시인과 독자는 그야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참고로 소녀 감성의 시구에 자주 젊은 여성으로 오인되지만, 사실 원태연 시인은 야성미가 풍기는 중년(1971년생) 남성이다.

원 시인이 첫 시집을 출간한 건 1992년이다. 22살 청년이 펴낸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는 150만부 이상 팔리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당시 차일 것이 두려워 먼저 이별을 통지하고 울면서 거리를 거닐던 경험을 담은 시에 독자들은 열광했다. 다만 원 시인의 손에 주어진 돈은 ‘0원’. 당시 출간을 위해 돈을 요구받은 원 시인은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조건으로 책을 낼 수 있었고, 그마저도 ‘매절 계약’하는 탓에 수익을 챙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원 시인은 그 출판사 사장을 “어쨌거나 저를 데뷔시켜준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한다. 지난 1월 해당 도서는 출판사 자음과모음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됐다.

이후 원 시인은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원태연 알레르기』 등의 책을 펴냈으나 출판사 사장의 야반도주 등의 악재로 책의 화제가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마지막 시집은 2002년 펴낸 『안녕』인데, 원 시인은 “(진심보다는) 오로지 글발로 쓴 시”라며 “(『안녕』 이후) 책을 내기 위해 시를 쓰는 게 싫어서 쓰기를 관뒀다”고 밝혔다.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시구에 흔히 원 시인은 다독, 정독, 탐독을 섭렵한 독한(?)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본인은 첫 시집을 내기 전까지 읽은 시집이 4권도 채 되지 않는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고 싶은 걸 파고드는 독한 면이 없지 않지만, 타고난 재능의 힘이 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원 시인의 재능은 다채롭다. 시인이자 영화제작자, 작사가로도 널리 이름을 알렸다. 2009년엔 권상우·이보영 주연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연출했고,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유미), ‘바보에게 바보가’(박명수), ‘그여자’(백지영), ‘나를 잊지 말아요’(허각) 등 수십여 곡을 작사했다.

물론 해도 안 되는 영역이 있기는 하다. 원 시인에겐 드라마 시나리오가 그런 존재다. 어릴 적부터 드라마 작가를 꿈꿔왔으나 유독 그 꿈만은 이루지 못했다. 최근에는 2년간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했으나 방송국의 중단 권유에 결국 펜을 놓았다.

그런 실패는 원 시인을 다시 시의 길로 이끌었다. 출판사의 필사시집 출간 권유에 지난해 11월 기존 시 70편에서 새로 쓴 시 30편을 더해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북로그컴퍼니)를 출간했다. ‘이건 진짜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20여년만에 복귀한 그에게 독자들은 “믿고 보세요. 원태연이잖아요”라고 호응했고, 원 시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원 시인은 지난 4월 시집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자음과 모음)에 이어 같은 달 에세이집 『고맙습니다, 그래서 나도 고마운 사람이고 싶습니다』를 출간했다. 원 시인은 “나에게 제출하는 나의 하드코어 반성문”이라고 설명한다. 에세집 말미에는 “여기까지 당신이 읽어주신 건, 내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며 “김밥천국 소고기김밥보다는 분명히 더 비쌀” 책을 읽어줘 고맙다며 재치 있는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나도 고마운 사람이고 싶습니다』는 지난 4월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도서로 선출간되었으며, 오는 6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정식 출간된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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