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밀양’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밀양’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5.31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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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예술은 바로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입니다. 그 이유는 두 예술이 ‘서사성’(narrativity)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서사성이란 간단히 말해 ‘이야기적 특성’을 말합니다. 영화감독과 소설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각각 이미지와 문자를 통해 형상화합니다.

우리는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가 주창했던 ‘카메라 만년필설’을 통해 두 예술의 공통점을 더욱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스트뤼크는 소설가에게 ‘펜’이 있다면 영화감독에게는 ‘카메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카메라 만년필설은 대중의 단순한 눈요깃거리로 치부됐던 영화가 예술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결정적 논거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공통점이 있다 보니, 두 예술은 ‘상호 호환’이 용이합니다. 특히 여기서는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각색영화’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각색이란 영어로 ‘adaption’입니다. 동사 형태는 ‘adapt’인데, ‘새로운 용도와 상황에 맞추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즉 각색영화에서 말하는 각색은 시, 소설, 희곡 등 활자로 이뤄진 문학이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돼 영상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문학을 바탕으로 한 영화일지라도 영화에는 작가와 버금가는 위치의 영화감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른바 ‘영상문학’으로서의 독자적 예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한 예술 양식을 ‘구비문학’, 문자로 표현한 양식을 ‘활자문학’이라고 한다면 영화는 그것을 영상으로 표현한 ‘영상문학’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소설이 영화화되는 경우는 대개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영화의 내용과 형식으로 전환하기에 용이한 경우 ▲영화로 옮겨질 경우 잠재적 관객층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은 고전 소설이나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그 대상이 될 때가 많습니다. 소설에서 영화로의 각색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원작에 충실 ▲일부 수정 ▲원작을 전체적으로 변형하는 등 다양하게 이뤄집니다.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 스틸컷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은 1980년에 발생한 ‘이윤상유괴살해사건’을 모티프로 한 이청준 작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들을 유괴당한 어미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얼개는 비슷한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미는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져 지내다가 마을 사람의 권유로 교회를 다니면서 심신의 안정을 되찾습니다. 나중에는 범인을 용서할 마음의 여유까지 얻게 되고, 내친김에 범인을 직접 만나 용서하고자 면회를 갑니다. 하지만 면회를 갔다 온 뒤에 어미는 다시 절망에 빠집니다. 범인 역시 감옥에서 신앙을 믿게 됐고, 주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죄과를 ‘스스로’ 참회한 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미는 범인을 용서할 기회마저 신에게 빼앗긴 것이죠.

이창동은 『벌레 이야기』의 내용을 새롭게 가공해 원작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영상문학으로서의 독창적인 예술적 성취를 이룩합니다. <밀양>은 신 앞에 놓인 무기력한 존재인 인간. 그런 인간의 불완전성과 한계와 고통.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불가해성(不可解性)을 영화 언어로 훌륭히 형상화합니다.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 오프닝 장면
이창동 감독, 영화 <밀양> 엔딩 장면

특히 이창동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의 수미상관 구조를 통해 ‘왜 살아야 할까?’라는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을 탁월하게 이미지화합니다. 결국 <밀양>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은, 삶이란 가려진 창문으로 보이는 맑고 깨끗한 하늘(오프닝)을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어디에도 가려지지 않은,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남루하고 비루한 땅(엔딩)을 아래로 응시하는 것임을 은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설과 달리 영화는 가해자 가족의 상황(범인은 나쁜 길로 가는 자신의 딸을 교육시키는 아버지이기도 한 것)을 전면에 내세워 인간의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모습을 통해 이야기 구조를 더욱 다층화하고 있습니다. 다소 절망적이고 막막한 소설에 비해 <밀양>은 고통의 근원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미움과 증오, 자비와 용서, 희망과 구원 등의 다양한 감정을 뛰어나게 이미지화하고 있습니다.

이창동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니는 시각적 효과와 역동성을 극대화해 원작소설이 지니는 문학적 구조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각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밀양>은 뛰어난 각색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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