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블레이드 러너·달콤한 인생·영웅본색’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블레이드 러너·달콤한 인생·영웅본색’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5.10 0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필름 누아르’(film noir)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프랑스어인 ‘누아르’(noir)는 한국어로 ‘검은’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즉 필름 누아르란 ‘검은 영화’를 말합니다. 근데, 검은 영화란 무엇일까요?

단어에서 풍기는 느낌 그대로 필름 누아르 속에는 무겁고 음침하며 어두운 풍경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개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는, 범죄 조직의 암흑적인 세계를 다룬 갱스터(gangster) 영화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논문 「필름 누아르의 유혹」의 저자 이수연은 “어떤 사람들에게 필름 누아르는 ‘장르’(genre)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조’(movement)이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무드’(mood)이며 ‘톤’(tone)이다. 심지어 필름 누아르를 ‘스크린 스타일’(screen style)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라고 보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저자의 논의처럼 필름 누아르는 특정 범주로 규정할 수 없는,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활용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필름 누아르는 독립된 장르이면서 멜로드라마,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시각적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영화학자 프랭크 크루트닉의 말대로 필름 누아르는 “한 범주에 속하기보다는 이 각각의 범주(장르, 사조, 무드, 톤, 스크린 스타일 등)가 필름 누아르의 한 국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 『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의 저자 데이비드 파킨슨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할리우드의 많은 유럽 이민자 감독들의 예술적 지주 역할을 한 필름 누아르는 혁신적인 촬영과 조명기법을 이용해 전후 미국에 만연하던 불안과 혼란을 환기시켰다”고 설명합니다.

파킨슨은 필름 누아르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는데 ▲명암의 극적인 대비 ▲갈피를 잡기 힘든 미장센 ▲경사 앵글 ▲회고적인 보이스 오버(voice over)의 사용 ▲예민한 부르주아 ▲냉소적인 탐정 ▲무자비한 사기꾼 ▲부패한 관료 ▲기회주의적인 떠돌이 ▲도망자 커플 ▲팜므파탈 ▲성·계층·정체성·불평등·배반·편견·폭력 등을 다루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컷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는 필름 누아르의 특성이 SF 영화에 적절하게 녹아든 작품입니다. 영화는 핵 전쟁 이후 아비규환이 된 세상을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그리고 있는데, 특히 극적인 명암 대비가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김지운 감독, 영화 <달콤한 인생> 스틸컷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은 보스(김영철)의 내연녀(신민아)를 사랑한 선우(이병헌)라는 한 남자의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의 외피를 두른 멜로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우의 내면에 일렁이는 곡진한 사랑을 파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변성현 감독,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컷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2016)은 필름 누아르적 성격이 짙은 범죄 영화입니다. 영화는 범죄 조직의 일원인 재호(설경구)와 신입 경찰 현수(임시완)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감독이 이 둘의 관계를 상당히 멜로드라마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개봉 당시 영화는 ‘불한당원’이라는 팬덤을 형성하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외에도 필름 누아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영화평론가 니노 프랑크가 언급했던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1941),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의 <안녕 내 사랑>(1945),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 배상>(1944)과 <잃어버린 주말>(1945),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로라>(1944) 등이 대표적인 필름 누아르입니다.

위 영화들에 대해 파킨슨은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와 고딕호러, 라디오 드라마, 프랑스의 시적 리얼리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에 기반을 두고 파괴적인 충동과 통제 불가능한 결과를 비관적으로 다룬 이런 영화들은 전시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했다”고 설명합니다.

오우삼 감독, 영화 <영웅본색> 스틸컷

또 <영웅본색>과 <무간도> 시리즈를 흔히 ‘홍콩 누아르’라고 부르는데, 영화 속 주인공인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유덕화 등의 배우들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와 함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역작 <택시 드라이버>(1976)를 빼놓을 수 없는데, 영화는 전후 미국 사회의 불안하고 암담한 현실을 필름 누아르로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늘 거론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