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마더‧오아시스‧의형제’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마더‧오아시스‧의형제’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4.12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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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고정관념’(固定觀念)이란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단순하고 지나치게 일반화된 생각”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특정 개인의 독특한 가치와 능력을 무시한 채, 그가 속한 집단의 범주로 귀속시키는 관념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고 합니다. 주로 인물의 ‘성격화’에 방점이 찍히는데, 가령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개의 ‘어머니’ 캐릭터는 하나같이 직업이 주부이며, 남편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성격화는 스테레오타입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 <마더> 스틸컷

한국에서는 김혜자, 고두심, 김해숙 등의 배우들이 이른바 ‘국민 어머니’로 명명되는데, 사실 이러한 칭호도 특정 배우를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마더>(2009)에서 대중들이 김혜자에게 갖는 ‘헌신적인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깨는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김혜자는 자식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광기어린 모성을 지닌 인물로 등장하며 이전까지는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연기를 펼쳤습니다.

수잔 헤이워드는 책 『영화 사전 : 이론과 비평』에서 ‘멍청한 금발 혹은 섹스의 여신’(마릴린 먼로), ‘머리가 텅 빈 근육질 사나이’(실베스터 스탤론), ‘착하기 그지없는 중산층 미국인’(제임스 스튜어트) 등을 예로 들면서 해당 배우에게 갖는 관객들의 스테레오타입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인물(혹은 배우)을 스테레오타입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잔 헤이워드에 따르면, 이는 영화에서 관객들이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시작됐습니다. 즉 관객은 이미 그 인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고, 감독은 스테레오타입화된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내러티브를 구축할 때 굉장한 경제성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연출은 해당 인물을 그야말로 납작하게 평면화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 갖는 스테레오타입이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장애인을 무성적인 존재 혹은 비장애인으로부터 구원받아야할 객체로 대상화하고, 성소수자들을 변태적인 인간 혹은 음울하거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존재로 묘사하는 예가 그것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나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2011)는 장애인의 삶을 일정 부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연출로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또한 이수인 감독의 <고독이 몸부림칠 때>(2004)와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2006),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2018)은 각각 성소수자의 고통을 쉽게 휘발시키고, 극단적인 최후를 맞게 하며,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연출로 지적 받았습니다.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은 ‘북한’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과거 군부 독재 시대에 제작된 반공 영화에서 북한군과 남파 공작원은 대개 흉측하고 잔인하며 비인간적인 인간으로 형상화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김청기 감독의 <똘이 장군> 시리즈는 북한군을 아예 인간이 아닌 괴물적인 존재로 묘사했는데, 이 역시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하는 스테레오타입화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부 독재 시대가 종식하고, 문민정부 이래로 ‘남북 평화’ 물결이 한반도를 휘감으며 영화에서도 북한에 관한 묘사가 한층 부드러워졌습니다.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1990)은 ‘빨치산’의 인간적인 고뇌에 집중했고, 배종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2005)은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쳐 미군의 공격에 대항하는 내러티브 구조를 보입니다.

특히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김성훈 감독의 <공조>(2016) 등의 영화에서 북한군을 연기한 배우는 각각 강동원, 김수현, 이현우, 현빈, 김주혁 등으로 수려한 외모의 호감형 배우입니다. 또한 이들은 극중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관객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수잔 헤이워드는 “스테레오타입은 (중략) 실상 단순한 기표는 아니다. 그것들은 정상적인 것으로 통용되는 사회 문화적 생산물이므로 역사뿐 아니라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연령, 계급, 장르의 관점에서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 속 캐릭터는 사회가 ‘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편입되지 않고, 인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한 색채와 활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스테레오타입을 경계하고,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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