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강변호텔·버닝’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강변호텔·버닝’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4.1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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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는 단순히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1910년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영화평론가 리치오토 카누도는 일찍이 영화를 ‘예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건축, 조각, 회화, 시, 음악, 무용에 이어 영화를 ‘제7의 예술’로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느 한 영화평론가의 일방적인 주장이었을 뿐, 이로 인해 영화가 바로 ‘예술’로 격상된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예술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누벨바그’(Nouvelle Vague) 이후입니다. 누벨바그란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으로, 1950~1960년대 일었던 프랑스의 영화 운동을 말합니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젊은 영화인들은 기존의 영화 작법에서 벗어나 ‘사실적이며 즉흥적인 연출’ ‘기승전결의 해체’ ‘전위적인 카메라 움직임’ 등을 시도하며 무너져가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에 ‘작가주의 영화’가 대두하게 됩니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한 글에서 “이제 영화는 예술가가 실현하는 ‘작가의 영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트뤼포의 주장은 영화감독 알렉상드르 아스트뤼크의 ‘카메라 만년필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스트뤼크는 소설가에게 ‘펜’이 있다면, 영화감독에게는 ‘카메라’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소설가가 펜으로 세상을 창조하듯이, 영화감독은 카메라로 세상을 창조한다고 본 것이죠. 이런 흐름 속에서 영화감독은 ‘작가’이자 ‘예술가’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독이 만든 영화가 ‘작가주의 영화’로 불리게 됩니다.

앞선 언급처럼, 작가주의 영화를 추구하는 감독들은 대개 기존의 영화 관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하는 데 발군의 능력을 보입니다. 이어 ‘기승전결’이라는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성방식에서 탈피하며 ‘에피소드식 구성’을 선보이거나 결말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영화 촬영 중에 발생하는 ‘우연적인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현실과 영화를 중첩시키는 등 철학적인 사유를 이미지화하는 데 골몰합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창동, 홍상수 감독 등이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그리고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등의 감독들은 영화의 상업성과 예술성을 절묘하게 결합시키며 본인만의 영화 미학을 발산하는 감독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나 평가는 기자나 평론가, 학자마다 상이하므로 어느 감독을 ‘작가주의(예술영화) 감독’ ‘장르영화 감독’이라고 무 자르듯이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 <강변호텔> 스틸컷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2019)의 한 장면입니다. 이때 갑자기 화면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감독의 통제 아래 철저히 계산된 순간에 뛰어든 고양이일까요? 아니면 촬영 순간 우연히 뛰어든 고양이를 감독이 컷하지 않고 계속 포착한 다음 영화의 한 장면으로 사용한 것일까요?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질문은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순간, 고양이가 외화면에서 내화면으로 흘러들어와 모종의 영화적 파장을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이창동 감독, 영화 <버닝> 스틸컷

이창동 감독에 따르면, <버닝>(2018)에서 종수(유아인)과 벤(스티븐 연)이 맞붙는 후반부의 장면을 촬영하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는 영화의 맥락과 눈이라는 상황적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촬영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감독의 말이 진실이라면, 종수(유아인)과 벤(스티븐 연)이 맞붙는 후반부의 장면은 말 그대로 현실과 영화가 충돌하고 교차하는 순간의 이미지가 그대로 카메라에 아로새겨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영화 이론 입문』의 저자 정영권은 “작가주의는 오늘날까지 영화 이론뿐 아니라, 보다 대중적인 저널리즘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을 뭉뚱그려 리얼리즘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라는 용어를 쓸 때, 거기에는 이미 작가주의적 관점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무엇보다도 작가주의는 스토리와 주제뿐 아니라 스타일과 테크닉이라는 좀 더 영화적인 부분으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작가주의자들의 또 하나의 공헌은 그 당시까지 거의 비평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던 장르 영화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작가주의’의 개념은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아직까지 회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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