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다] 제주스 주한 포르투갈 대사 “커피 마실 이유? 백만 가지쯤 됩니다” 
[대사에게 듣다] 제주스 주한 포르투갈 대사 “커피 마실 이유? 백만 가지쯤 됩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2.18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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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바다 너머에 괴물이 산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세 시대 유럽인은 ‘보자도르 곶’(대서양의 서사하라 서부에 위치한 곶으로 수심이 얕고 소용돌이가 심해 배가 자주 난파됨)을 건너간 후 생환한 사람이 없자 그곳을 세상의 끝으로 간주했고, 그 너머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유아적 발상이지만, 그건 엄연히 존재했던 무지의 소산이었고, 1434년 포르투갈 탐험가 질 이아네스가 ‘보자도르 곶’을 넘어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유럽인들을 공포로부터 건져내고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어젖힌 포르투갈. 이후 포르투갈은 브라질, 아프리카 해안, 페르시아만, 홍해, 인도, 남아시아, 일본 등지에 상업·군사 거점을 세워 전 세계 향신료 무역을 주름잡았고, 본국 면적(922만 2,560㏊)의 백배가 넘는 식민지를 거느렸다. 포르투갈 제국의 역사는 20세기 들어서 막을 내렸지만, 포르투갈어는 아직도 세계 아홉 나라에서 2억5,000만명 이상이 공식 언어로 채택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성지 ‘파티마’,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헤어진 가족과 고향을 향한 감성을 담은 노래 ‘파두’, 축구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남유럽 이베리안반도 서쪽 끝에 위치해 직항으로만 13시간이 걸리지만 꼭 가보고 싶은 곳. 마누엘 안또니오 곤살브스 드 제주스 대사에게 포르투갈의 책, 여행, 음식 문화를 물었다. (영어 원문 인터뷰 보기)

- <책 읽는 대한민국: 대사에게 듣다> 명사로 선정됐다. 

“<독서신문>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돼 반갑다. 이번 인터뷰가 <독서신문> 독자 여러분이 포르투갈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포르투갈에서 요즘 어떤 책이 주목받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국과 대조적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지 않는다.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힐링이나 처신 관련 도서가 주목받는 듯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전기나 역사소설, 로맨스 소설책이 많이 읽힌다. 이는 양국의 역사에서 기인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거장 사라마구가 타계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사라마구에 대한 저서들도 한국에 많이 번역 출간됐다. 인간의 정체성의 실체를 갈망하는 그의 글은 인간성이 메말라가는 한국 세태에서도 큰 울림이 돼왔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도 사라마구의 진성 독자가 꽤 많다.      

“사라마구는 매우 유명한 포르투갈 작가이다. 그는 포르투갈어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작가다. 60대에 접어들었을 때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의 인생 이야기가 흥미롭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아 정치적 신념이 강했지만 늘 겸손했던 그는 리스본의 <Diário de Notícias> 신문사에서 말단 기자로 일하다가 최고 작가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른 시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은 건 중년에 이르렀을 때이다. 50세가 넘은 후 다작을 했고, 이후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나는 그가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 최고의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진화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사라마구 80살이 넘어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 그런 점이 사라마구가 건재한 예술가로 불리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포르투갈에 잘 알려진 한국 작가나 작품은. 

“포르투갈에서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잘 알려졌다. 2016년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후, 2017년 『소년이 온다』(Human Acts), 2018년 『흰』(The White Book)이 연이어 포르투갈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2017년에는 한강 작가가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에서 열린 연례 도서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포르투갈의 주요 일간지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처음에는 생소할 수 있지만 다가갈수록 너무 끌린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포르투갈인의 유머는 자조적인 면모가 짙다던데.  

“유머 감각에 있어서는 포르투갈인들의 유머가 다소 시니컬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단순하게, 쉬운 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내·외국인 모두에게 따뜻한 사람이다. 포르투갈을 방문해본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그곳에서 어떻게 환영받았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매년 2,000여만명의 관광객이 포르투갈을 찾는 이유다. 참고로 포르투갈 국민 수는 천만명을 조금 넘는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포르투갈 음악인 ‘파두’의 노랫말을 이루는 주된 정서는 ‘사우다드’(saudade)이다. 한국의 ‘한’(恨)의 정서와 유사한 것처럼 보인다.  

“파두는 19세기 초반 리스본에서 유래한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이다. 대항해시대에 많은 포르투갈인이 바다로 떠났고, 남은 사람은 떠난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며 파두를 불렀는데, 그 속에 담긴 감정이 사우다드이다. 포르투갈에만 있는 정서는 아니고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포르투갈인들은 그 감정을 표현하고자 사우다드라는 말을 만든 것일 뿐이다. 포르투갈인과 한국인은 모두 음악으로 정서를 잘 표현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한과 사우다드는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르투갈은 유럽국가 중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이지만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포르투갈이 관광지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말까지 1만7,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포르투갈을 방문했다. 특히 가톨릭 성지인 ‘파티마’를 찾는 가톨릭 신자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최근 10년간 양국 국민은 관광을 통해 더욱 가까워졌다. 관광으로 상대국의 관광지, 언어, 문화에 대한 지식이 생겨났다. 문득 포르투갈에서 맛본 음식이 떠오르기도 할 텐데, 포르투갈 와인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대사 개인적으로 권하는 포르투갈의 여행지 혹은 여행코스가 있나. 

“해변 그리고 레저활동을 선호한다면 포르투갈의 남쪽에 있는 알가르브(Algarve) 지역을 추천한다. 알가르브는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양한 현대 레저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좀 더 전통적인 포르투갈을 느끼고 싶다면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Porto)와 브라가(Braga) 등의 도시를 추천하고 싶다. 전통적인 항구도시인 포르투는 전통 있는 건축 유산과 아름다운 경치가 일품이고, 종교의 도시인 브라가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 있는 포르투갈 제3의 도시이다. 와인에 관심이 있다면 포르투갈 포트와인의 산지인 도오루 강(Douro River)도 가 볼 만 하다.” 

-포르투갈인들의 카페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포르투갈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중요한 일상이다. 어디에나 카페가 있고, 커피 한 잔 가격이 1유로가 채 안 되기 때문에 집에서 마시는 것보다 카페에서 마시는 게 더 저렴하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물이나 얼음을 섞지 않은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지만,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우유를 넣기도 한다. 한국처럼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작은 로컬카페가 주를 이룬다. 포르투갈인은 커피를 마셔야 할 백만 가지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밥을 먹었으니까, 휴식이 필요하니까,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니까,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해야 하니까...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커피 한잔하자’라는 말로 대신한다. 우연히 지인을 마주치면 ‘우리 조만간 커피 마시러 가자’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힘든 하루를 보낸 친구에게는 ‘내가 커피 사줄게’라고 위로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항상 커피 마실 이유를 찾는다.” 

- 포르투갈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에그타르트와 마멀레이드는 한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포르투갈의 식문화도 궁금하다.

 “한국인 입맛에 알맞을 해물탕 ‘아호스 두 마리스쿠’(Arroz de marisco)를 추천한다. 토마토 퓨레에 각종 해산물을 넣고 끓인 걸쭉한 국물이 한국의 국밥과 비슷하다. 주재료를 뭘 넣느냐에 따라 해물밥, 문어밥, 새우밥, 아귀밥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염장한 대구를 이용한 '바깔랴우'(bacalhau), 신선한 문어구이인 '뽈부 그렐랴두'(polvo grelhado)도 추천한다. 포르투갈 음식은 너무 다양해 몇 가지만 골라내기가 어렵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에는 포르투갈 음식을 맛볼 장소가 많지 않다.” 

-포르투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던 책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좋아하는 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된 책 중에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어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언어로 훌륭한 문학 작품 다수가 포르투갈어로 쓰였다. 다만 포르투갈어로 읽지 못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많아 안타깝다. 포르투갈어를 읽을 수 있다면 미구엘 토르가(Miguel Torga), 아킬리노 리베이로(Aquilino Ribeiro), 카밀로 카스텔로 브랑코(Camilo Castelo Branco) 또는 에사 드 케이로스(Eça de Queirós) 등과 같은 작가를 추천하고 싶다.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다면, 20세기의 위대한 작가인 페르난도 페소아의 『불안의 서』(Livro do Desassossego) 혹은 16세기의 위대한 작가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대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Os Lusíadas)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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