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어느 시대에나 부동의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고 있다. 기원전 1,600년경 수메르의 우르(현재 이라크 남부)에 살던 (유대인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유일신의 지시로 가나안땅(현 예루살렘 인근)으로 이주한 역사. 그의 자녀인 야곱이 기근을 피해 애굽(이집트)으로 이주해 오랜 노예 생활을 했던 역사. 이후 ‘모세’란 인물이 등장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회귀하는 역사. 새롭게 세워진 이스라엘 왕국이 지혜의 왕인 솔로몬 시대를 맞아 번성했지만, 솔로몬 사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됐다가 연이은 외세 침략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 조국을 잃고 전 세계로 흩어짐)의 역사가 그것. 현재는 2,000년간 떠돌며 겪은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의 아픔을 뒤로 하고, 1948년 지금의 예루살렘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설립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이스라엘 인구수는 930만명가량,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을 합해도 1,500만명으로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 전 세계 억만장자의 30%, 미국 최상위 부호 400명 중 23%가 유대인으로 알려진다. 『탈무드』(BC500~AD500까지 랍비들의 토론 내용을 모은 책)와 ‘하브루타’(두 사람이 짝을 지어 논쟁하며 진리를 탐구하는 학습법) 등이 그 비결로 지목되는데, 그 내막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이스라엘, 더 나아가 유대인의 이모저모를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에게 물었다.
Q. <책 읽는 대한민국:대사에게 듣다> 명사로 선정됐다. 소감과 함께 <독서신문> 독자에게 인사말 부탁드린다.
A. “안녕하세요.”(한국어로 인사) 독서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다. 이렇게 <독서신문> 독자 여러분을 만나게 돼 기쁘다.
Q. 유대인은 종교(유대교 신자)와 민족 개념(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혼용돼 사용되는 것 같다. 유대인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A. 유대인이 된다는 건 민족, 종교, 국가 그리고 고대 문화의 일부가 됨을 뜻한다. 그런 이유에서 유대인을 단순히 민족으로 구분하는 건 너무 협소한 개념이다. 가족 간에 유대감이 강한 유대인을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대인은 다양한 피부색의 여러 인종을 포괄한다. 비록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질 때까지 2,000여년간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역사와 성경, 이스라엘 땅으로 연결된 가족이다.
Q. 엄마가 유대인이면 아이도 유대인이 된다던데. 그와 별개로 유대교를 믿으면 누구나 유대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A.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나온 아이는 기본적으로 유대인이 맞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든 개종을 통해 유대인이 될 수도 있다. 유대교가 개종자 모집에 적극적이지 않고, 개종 과정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단 유대인이 되면 개종한 유대인과 태생적 유대인 사이에 차이가 없다. 그런 사례는 성경 속 룻의 이야기에도 나온다. 룻은 모압 사람으로 태어나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유대인과 함께하기로 결심하면서, 다윗 왕(거인 골리앗을 무찌르고 이후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됨)의 증조할머니가 됐다.
다만 모든 유대인이 유대교를 믿는 건 아니다. 유대인 중에는 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같은 무신론자들도 많다. 그들은 태생적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이 되는데 (유대교의) 믿음이 필요하지 않았다.
Q. 이스라엘과 한국은 ‘디아스포라’의 공통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 아픔이 있는 만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할 것도 같은데.
A. 한국인과 이스라엘인의 공통점은 매우 열심히 일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직장 문화가 한국보다 자유분방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일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한국인과 이스라엘인 모두 매우 가정적이며 자국의 문화와 언어에 자부심을 느낀다.
차이점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나누는 데 있어 거침이 없다. 우리는 남의 일에 자주 관여하고 잘 참견하는데, 난 사실 이런 점이 매우 좋다. 이런 간섭은 압박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모든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다.(웃음)
Q. 한국에서 유대인의 교육법이 유명하다. 특히 하브루타 교육이 주목받는데, 실제 이스라엘에서도 중요한 교육법으로 주목받고 있는지.
A. 그렇다. 하브루타는 배움에 있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하브루타는 모든 「토라」(구약성서 중 율법서 부분) 지문을 연구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명의 탐정보다 두명의 탐정이 나은 것처럼 공동체와 더불어 지식을 습득하는 아주 좋은 학습법이다. 다만 하브루타가 이스라엘의 기본적인 교육 방침이라고 하기엔 조금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다. 수학, 역사, 영어는 다른 나라 학습법과 큰 차이가 없다.
Q. 유대인의 정신이 깃든 책 『탈무드』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유대인의 필독서이자,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유대인의 성공 비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탈무드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A. 『탈무드』는 서기 70년경 예루살렘에 있는 제2 신전이 파괴된 후 이스라엘과 바빌론 땅에서 쓰인 랍비(유대교 사제)의 법률·철학·사색적 사고를 500년에 걸쳐 집대성한 책이다. 유대교 율법의 기초이자 종교 집회의 표준 텍스트로 분량이 5,000페이지가 넘는다. 많은 종교 세미나, 유대교 단체에서 매일 한 페이지씩 공부하고 있다. 나 역시 40년 전 예시바 고등학원(Yeshiva academies)에서 수년간 『탈무드』를 공부한 적이 있다.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의 설명서라 할 수 있는 『탈무드』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고 싶다.
Q.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비율은 0.2% 수준이지만, 노벨상을 받은 유대인의 비율은 30%에 육박한다. 하브루타와 『탈무드』가 그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A. 사실 이스라엘의 노벨상 수상자 대부분은 『탈무드』를 중시하지 않는 세속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이어온 『탈무드』에 관한 연구가 유대인 고유의 문화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커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하긴 어렵다. 기본적으로 유대인 문화는 책략적이고, 호기심이 많고, 비순응적이고, 짓궂고, 진리를 사랑하면서도 완고하다. 실제로 한국에 오기 전 노벨상을 받은 이스라엘 과학자 세명을 만났는데, 그들 모두 이런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세명의 노벨 수상자 모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고,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Q. 베스트셀러 도서는 사회상을 반영하기 마련인데, 요즘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책들이 주목받고 있나?
A.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히브리어로 된 소설을 많이 읽는다. 데이비드 그로스만(David Grossman), 메이르 셰일프(Meir Shalev), 요치 브랜다이스(Yochi Brandeis)의 작품이 인기가 많다. 또 할란 코벤(Harlan Coben), 폴 아우스터(Paul Auster),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의 번역 소설도 많이 읽히는 편이다. 최근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이 새롭게 히브리어로 번역돼 관심을 모았다.
Q. 이스라엘에서는 종교 기념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안식일에는 휴식해야 한다는 율법을 지키는 이들을 위해 호텔 엘리베이터가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되도록) 층마다 멈춘다고 들었다. 언뜻 조금 과도한 처사 같기도 한데, 대사는 어떻게 안식일을 지키는지 궁금하다.
A. 나는 안식일을 아주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다. 일은 물론 글쓰기, TV 시청, 자동차 여행, 휴대폰 사용, 요리, 청소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돈도 쓰지 않는다. 생명을 구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킨다. 안식일에는 집 근처에 머물면서 해가 지기 전 가족들과 함께 식사와 대화를 즐긴다.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토라를 공부하기도 한다. 나는 안식일이 유대교가 현대 생활에 끼친 가장 큰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Q.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먹는 음식과 식문화가 궁금하다.
A. 이스라엘은 유럽, 중동, 에티오피아, 북아프리카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보르쉬트(borscht/우크라이나에서 유래한 야채 수프)와 속이 꽉 찬 양배추와 토마토, 달걀로 만든 샥슈카(shakshuka/계란찜 요리)를 즐겨 먹는다. 후무스(humus/올리브 오일과 레몬즙으로 맛을 낸 콩요리)와 타히니(tahini/참깨를 갈아 만든 소스)도 즐겨 먹는 음식이다. 우리는 신선한 야채와 올리브 기름을 많이 먹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민트칩 아이스크림과 피자와 같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좋아한다.(웃음) 매주 금요일에는 아내가 만든 예멘계 닭고기 수프를 먹는다. 마법의 향신료인 ‘하와제즈’(hawajej)와 ‘페누그릭’(fenugreek/장미목 콩과의 한해살이풀), 레몬을 더해 맛이 아주 좋다.
Q. 대사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이스라엘 여행지 혹은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면? 이유는?
A. 이스라엘은 아담하지만 매우 아름답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예루살렘(Jerusalem)은 고대 산악 도시의 ‘모노시이즘’(monotheisms/유일신 신앙을 지닌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이 만나는 장소이며, 텔아비브(Tel Aviv)는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다. 이 외에 로마 제국에 멸망하기 전 유대인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유대 사막 속 ‘마사다’(Masada)도 추천하고 싶다. 맛 좋은 포도주를 맛볼 수 있고 시리아와 인접한 골란 고원도 방문할 만하다. 기독교인이라면 갈릴리 바다와 가버나움(Capernaum)도 추천한다. 트레킹을 즐긴다면 자연탐방로를 통해 레바논 국경의 ‘메툴라’(Metulla)에서 홍해의 ‘아일랏’(Eilat)까지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권한다. 애독가라면 ‘이사야’(Isaiah/히브리의 대예언자)의 가장 오래된 전문(complete text)을 소장한 이스라엘 박물관의 ‘책의 성지’(Shrine of the Book)를 꼭 방문하길 바란다.
Q. 한국 작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지.
A. 한국 작가가 쓴 놀라운 책들을 읽고 있다. 최근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이민진의 『파친코』를 읽었다. 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읽고 있으며, 신경숙의 『리진』이 침대 옆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Q.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대사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세권 정도 소개 부탁드린다.
A. 현대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이스라엘 초대 총리의 전기인 아니타 샤피라의 『Ben-Gurion: Father of Modern Israel』(벤 구리온: 현대 이스라엘의 아버지)을 추천하고 싶다. 아모스 오즈(Amos Oz)의 『In the Land of Israel』(이스라엘 땅에서)도 권하고 싶은데 다소 오래된 책이지만 이스라엘의 꿈들을 놀라운 정도로 생생하게 포착했다.
개인적으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소설은 욤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1973년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 간에 벌어진 전쟁)의 지옥 속에서 천국의 희망을 품는 젊은이들에 관한 내용을 그린 하임 사바토(Haim Sabato)의 『Adjusting Sights』(가늠자 조절)이다. 다만 좀 더 폭넓게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히브리 성경의 첫 두권인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권한다. 유대인이 자신과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한 신화적 이야기인데,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