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노르웨이는 ‘북쪽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를 지닌, 지구상 최북단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자리한 입헌군주제 국가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실제 배경이기도 한 노르웨이의 정식명칭은 ‘노르웨이왕국’이며 수도는 인구 100만명의 오슬로. 국토면적은 한국의 여섯 배 규모지만, 인구는 1/10 수준으로 고즈넉한 삶이 현실이 되는 곳이다. 그림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트 뭉크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노르웨이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빼어난 자연경관(현상)을 자랑한다. ‘피오르드’(빙하 침식으로 생긴 골짜기에 생긴 좁고 긴 만), ‘오로라’(극지방 대기에 나타나는 발광 현상) ‘백야’(해가 지지 않아 밤에도 밝은 현상) 등 이색 볼거리가 가득한 청정국가이자 국토의 1/4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으로 이뤄진 천혜의 나라로 손꼽힌다.
자연뿐 아니다. 노르웨이는 ‘평등’ ‘평화’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나라로도 잘 알려졌다. 매해 연말이면 세계 평화에 공헌한 사람들이 노르웨이를 찾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20여 년 전부터 사회 전 영역에 여성할당제를 적용해 성평등이 상식처럼 여겨진다. 평등이 일상인만큼 민주주의도 잘 작동해 민주주의 성숙도 세계 1위(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선정)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을 오가는 직원들 사이에선 직급의 차이를 쉬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등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직원과 직원 간에, 대사와 직원 간에도. 기자 일행이 모두 들어오기까지 육중한 철문을 직접 잡고 서서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동영상 촬영을 위해 집무를 보다가 기자를 맞이하는 상황설정을 부탁할 때도 “(노르웨이에서) 그렇게 손님을 맞는 법은 없다”며 바른 자세로 서서 기자를 맞는 프로데 술베르그 주한 노르웨이 대사를 마주했다.
Q. <책 읽는 대한민국:대사에게 듣다> 명사로 선정됐다. 소감과 함께 <독서신문> 독자에게 인사말 부탁드린다.
A. 명사로 선정해줘 매우 감사하다. 또한 한국과 노르웨이 간의 긴밀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해 줘 감사하다. 기업이나 정치 등에 관해 할 말이 많지만, <독서신문> 인터뷰인 만큼 독서를 비롯한 문화적 협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Q. 등산을 즐긴다고 들었다. 한국의 여러 산을 방문했을 것 같은데, 인상 깊었던 곳이 있는지. 또 자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경치와 한국의 경치는 어떤 다른 매력을 가졌는지.
A. 노르웨이와 한국은 자연이 아름다운 축복받은 나라다. 산과 바다가 많은 노르웨이와 한국은 여러 면에서 비슷한 아름다움을 지니는데, 개인적으로 여수를 비롯한 남해안의 해안가가 아름다웠고, 산은 북한산이 좋더라. 북한산에 올라 감상하는 서울의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등산을 즐기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인도 그에 못지않더라.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이 노르웨이의 산을 좋아할 것이라 확신한다. 특히 피오르드와 산이 잘 어우러진 노르웨이 서쪽과 북쪽 지역을 방문하면 극적인 자연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방문을 원한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Q.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한국인이 많이 읽은 소설 중 하나다. 혹시 해당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노르웨이 사람으로서 느낀 점은? 아울러 한국 문학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A. 들어보긴 했는데 아쉽게도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필독서’ 목록에 적어넣고 이후에 꼭 읽어보겠다. 평소 일과 관련해 경제, 정치 등 논픽션 도서를 많이 읽지만, 틈나는 대로 소설을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소설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소설로는 현재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를 노르웨이어로 읽고 있다. 허구와 역사적 사실이 결합된 요소가 매우 인상적이다.
Q.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읽은 소감을 좀 더 나눠준다면.
A.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됐다. 『바리데기』는 북한 국경지대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담고 있는데, 한국의 가까운 역사적 배경과 그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Q. 특정 사회의 관심사는 베스트셀러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요즘 노르웨이에서 인기 있는 책은 무엇인가? 어떤 이유에서인가?
A.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요즘 같은 여름 휴가철엔 가벼운 주제의 책을 많이 읽고, 부활절엔 범죄 소설을 많이 읽는다. 사실 범죄 소설은 거의 항상 베스트셀러 상위에 자리한다. 요 네스뵈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의 작품은 거의 상위에 자리하는 편이다. 로맨스 소설도 마찬가지로 인기다. 지난 몇 년간 트렌드를 보자면 칼 오브 크나우스게르드의 『My struggle』(나의 투쟁)같이 평범한 사람의 삶을 다루는 책이 인기를 얻었다.
한국 사람처럼 노르웨이 사람도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 관련 책도 인기가 많다. 스키를 타거나 야외 활동을 하거나 남극이나 그린란드를 탐험하거나 그도 아니면 인근 산 정상을 정복하는 내용의 책이 많이 팔린다. 몇 년 전부턴 나무 베는 법을 소개하는 책이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있다. 많은 노르웨이인이 휴가 때 산속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대개 산에는 나무를 베는 전기장비가 없기 때문에 그런 책이 인기를 얻는 것 같다.
Q.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은 전염 방지를 위한 개인의 자유 침해를 어느 정도 감내하는 분위기인데, 노르웨이에서는 최근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코로나19 확진자 추적앱 사용을 금지했다고 들었다. 문화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인데, 2년여간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느꼈을 여러 ‘다름’이 궁금하다.
A. 일단 한국이 코로나 사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노르웨이도 잘 대응하고 있는데, 양국 모두 완전한 봉쇄 없이 코로나에 대응했다는 점에서 동질감이 느껴진다. 다만 노르웨이는 법적으로 코로나 추적앱을 사용할 수 없는데, 그 점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다름’보다는 ‘비슷한 점’을 더 많이 느꼈다. 양국은 산업, 문화, 정치적으로 상당히 비슷하다. 현재 한국은 노르웨이의 중요한 무역·산업 파트너다. 노르웨이군이 한국전쟁에 참전(의료지원)하면서 양국 관계가 시작된 이래로 한국은 노르웨이의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가 됐다.
Q. 노르웨이에서는 1998년부터 국회의원 40%를 여성으로 채우는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높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는데, 반발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노르웨이에서도 성별 갈등이 아직 주요한 사회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는지?
A. 해당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흥미로운 건 그 법이 보수당 남자 장관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당시 회사로선 임원 일정 부분을 단시간 내에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낳았다. 문화를 바꾼다는 건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해당 법을 통해 그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성평등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고, 이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게 되면서 경제·정치·사회 모든 면에서 더욱 부유해지게 됐다. 누군가는 노르웨이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부유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성평등을 통한 사회적 부 추구가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이뤘다고 본다.
Q. 노벨상 여섯 개 부문 중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가 시상을 주관한다. 2000년에는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노르웨이에서 노벨평화상은 어떤 의미인가?
A. 비록 노르웨이 정부가 관여하는 건 아니지만, 노벨평화상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평화상이라는 점에서 많은 노르웨이인이 오슬로에서 평화상이 수여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점이 평화적 외교를 중시하는 노르웨이의 국제적인 노력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다양한 기관과 개인이 노력하고 있는데 노르웨이인들은 그런 헌신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
Q.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A.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과 문재인 대통령이 기울이는 대화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또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국제적으로 이뤄지는 노력에도 지지를 표한다. 지난 70년간 한반도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현재도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한국 정부가 이런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믿고 있다. 노르웨이는 계속해서 한국 정부의 평화정책을 지지할 것이다.
Q. 노르웨이인이 주로 먹는 음식과 식문화가 궁금하다.
A. 피자, 파스타, 타코 등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대중적인 음식을 많이 먹기도 하지만 여전히 전통음식이 식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노르웨이의 전통음식은 조리법이 간단하면서도 맛이 좋다. 돼지고기와 양고기, 야채 등을 사용한 요리가 많은데, 요즘엔 지역에서 생산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좀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보인다. 또 노르웨이 하면 해산물을 빼놓을 수 없다. 노르웨이는 해산물을 얻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고, 그중 상당 부분이 한국으로 수출된다. 개인적으로 연어와 킹크랩을 좋아하는데, 꼭 한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Q. (한국인) 독자들에게 노르웨이의 관광명소를 추천한다면? 이유는?
A. 하나만 고르기 무척 어렵지만, 일단 오슬로에서 시작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오슬로에서 가 볼 만한 곳은 비그랜드 공원과 뭉크 박물관, 홀멘콜른 스키 점프대와 바이킹선 박물관이다. 멋진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서부해안이나 북부 여행을 추천한다. 특히 북부 지역은 피오르드와 산이 이루는 조화가 장관이다. 또 여름에는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겨울에는 하늘 위에 펼쳐진 멋진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다. 노르웨이가 당신에게 있을 수 없는 멋진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Q. 노르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대사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세권 정도 소개 부탁드린다.
A. 먼저 마야 룬데(Maja Lunde)의 책 『The story of the Bees』(벌들의 역사)를 추천하고 싶다. 한국어로도 출간된 책인데, 기후변화 위기에 관한 문제를 다뤄 노르웨이인들이 관심 있게 읽은 책이다. 다음은 소설가 로이 제이콥슨(Roy Jacobsen)의 『The Unseen』을 추천한다. 시골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는데, 노르웨이 사람들의 삶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또 노르웨이의 풍경 묘사가 생생해 마치 실제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여행책으로는 『Hurtigruten』을 추천하고 싶다. 노르웨이 해변을 따라 러시아 국경까지 가는 크루즈 여행을 소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