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다] 후안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 스페인 대사 “스페인은 태양을 먹고 사는 나라”
[대사에게 듣다] 후안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 스페인 대사 “스페인은 태양을 먹고 사는 나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2.21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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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안경선 PD]
후안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 스페인 대사 [사진=안경선 PD]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비행기를 타고 12시간(1만㎞)을 날아가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자락에 가닿으면 만나볼 수 있는 나라. 하몽(소금에 절인 돼지 뒷다리)과 파에야(볶음밥의 일종) 등 건강한 지중해식 식단으로 만든 세계적인 음식의 본고장이자, 플라밍고와 살사 등의 춤사위로 붉게 물든 축제의 열기 속에서 낙천적 사고관으로 장수(기대수명 세계 1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대국(관광 수입 세계 2위)이자 세계 3위(로 많은) 문화유산 보유국으로 피카소와 가우디, 고전 『돈키호테』의 고향. 그리고 순례자의 길이 뻗어나가는 곳.

이뿐만이 아니다. 스페인은 언어 강국이기도 하다. 사용 인구로만 봤을 때 세계 2위(약 5억7,000만명). 흔히 영어를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1위가 중국어 2위가 스페인어 3위가 영어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만 21개국이며 미국 내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미국 이주민) 비중은 18.1%(2017년 기준 코트라 발표)에 달한다.

국내에 들어온 스페인 브랜드도 적지 않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이름인 ‘조르바’(Zorba)에서 착안해 이름 붙여진 패션 브랜드 ‘자라’(Zara: Zorba에서 ‘o’와 ‘b’를 빼고 대신 ‘a’를 넣음), 데이지꽃 무늬에 츄파의 필기체 문양(유명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디자인함)이 눈에 띄는 츄파춥스 막대사탕 모두 스페인에서 탄생했다. 최근 국내에 스페인산 와인도 많이 유통되고 있는데, 스페인은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3위 와인 생산국이다.

익숙하지만, 아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은 스페인의 매력을 듣기 위해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후안 이그나시오 모로 주한 스페인 대사의 관저를 찾았다.

주한 스페인 대사관저 [사진=안경선 PD]
주한 스페인 대사관저 [사진=안경선 PD]

Q. <책 읽는 대한민국:대사에게 듣다> 명사로 선정됐다. 소감과 함께 <독서신문> 독자에게 인사말 부탁드린다.

A. 스페인 대사관에 온 걸 환영한다. 인터뷰 전에 <독서신문> 홈페이지에서 다른 대사분들 인터뷰 내용도 보고, 앞서 인터뷰했던 주변 대사 동료들과도 얘기를 나눴는데,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더라. 이렇게 <독서신문>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인터뷰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Q. 2018년에 주한 스페인 대사로 부임해 3년째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부임 이전에 여러 나라에서 근무한 것으로 아는데, 한국 혹은 서울, 한국인 등에 관해 받은 느낌이 궁금하다.

A.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많은 나라에서 근무했는데. 한국 부임은 이번이 두 번째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1등 서기관으로 부임했고, 2018년에 다시 대사로 부임했다. 26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은 이전 모습과 많이 달랐다. 특히 서울 남부 지역에 그전에 없던 고층 건물과 현대적인 고급 건물이 가득해졌다. 서울 북쪽은 광화문과 시청 일대가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많이 변화했다. 또 예전에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계신 노인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과거에 많았던 이태원 등지의 노점상도 보기 힘들어졌다.

한국인은 여전히 친절하고 너무 예의가 발라 가끔은 내성적으로까지 느껴지는데, 그런 모습이 단점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과거 외국인을 (영어 울렁증 때문에) 무서워(?)하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웃음) 한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다운 나라다.

Q. ‘스페인 사람은 하루에 5번 식사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이 많고 간식 문화도 발달해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러한지?

A. 사실 스페인에선 한국처럼 식사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고 다소 불규칙한 편이다. 건강에 좋은 식습관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굳이 시간을 특정하자면 스페인 사람들은 대개 오전 7시에 아침, 오후 2시에 점심, 저녁 10시에 저녁을 먹는다. 사이에 텀이 크다 보니 중간 중간 간식을 챙겨 먹는데 하루 다섯 끼라는 말은 거기서 유래한 것 같다. 저녁이 늦는 건 대다수 스페인 사람이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다 보니 퇴근 후에 동료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기 때문이다. 다만 가정적인 성향으로 저녁 식사는 되도록 가족과 함께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늦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다만 먹는 음식만큼은 최고의 지중해 식단인 점을 강조하고 싶다.

Q. 개인적으로 한국인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스페인 음식이 있다면.

A. 계절이나 기후에 따라 추천할 음식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타파스를 추천하고 싶다. 조그만 핑거푸드인데 식사 전에 먹는 애피타이저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점심 전이나 저녁 전에 먹는데, 이미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음식문화다. 차가운 것도 있고 따듯한 것도 있고, 재료도 다양하다. 못 드셔본 분은 꼭 한번 드셔보길 바란다.

또 고향(스페인 북서부 지역의 바야돌리드) 요리인 새끼 양고기 요리를 추천하고 싶다.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인데, 육즙이 풍성한 고기 맛이 일품이다.

[사진=안경선 PD]

Q. 스페인은 세계 최상위 와인 생산국이다. 경쟁국인 프랑스, 이탈리아 와인과 비교했을 때 차별되는 점을 소개한다면.

A. 스페인 와인의 최대 강점은 가성비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보다 상업적으로 뒤늦게 알려진 건 아쉬운 대목이지만, 스페인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통 있는 와이너리가 많다. 특히 리오하(Rioja)와 리베라델두에로(Ribera del Duero)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스페인 와인이 많이 유통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와인 수입량 중 스페인 와인이 두 번째로 많았다. 점점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데, 더 많은 한국분들이 즐겨줬으면 좋겠다.

Q. 한국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불행을 견디는 경우가 많고,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한국인과 다르다고 들었다.

A. 스페인 사람들은 밝고 낙천적이며 현재를 즐긴다.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기후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겨울은 길고 춥다. 여름은 무더운데다 태풍도 있고 장마도 있다. 반면 스페인의 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다. 관광하기 좋은 여름이 길다. 거기에다 볼거리가 많아 관광객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스페인을 태양을 먹고 사는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두 번째는 사상의 영향이다. 한국 분들이 어려움을 견디면서 열심히 일하는 건 아무래도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힘든 역사를 겪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겠다는 것인데, 사실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결과는 거짓말을 안 하지 않나. 열심히 한 만큼 한국은 큰 경제 발전을 이뤘다. 다만 최근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서 즐기기를 원하는 느낌이다. 아마 외국에서 다른 삶의 질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닌가 생각된다.

Q. 스페인 국민은 전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고 장수하는 사람들로 손꼽힌다. 낙천적 성향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스페인 사람들의 건강 비결이 궁금하다.

A. 따스한 태양 아래서 벌이는 사교적이고 긍정적이고 여유 있는 지중해의 삶이 건강의 비결이다. 불규칙하고 늦은 시간에 먹는 식습관이 건강에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건강하고 장수하는 건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스페인에서도 개인적으로 근심, 걱정이 있고, 국가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스페인 사람은 ‘일단 즐기고 보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건강에 매우 중요한 것 같다.

Q. 스페인은 살사와 플라밍고 등의 춤이 유명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면 정말 열정적이다. 혹 선호하는 춤이 있는지.

A. 스페인에는 지역마다 축제가 있고 다양한 춤이 있다. 스페인에서 축제는 그야말로 축제다. 날씨까지 좋으면 다 밖으로 나가서 한데 어울려 즐긴다. 아쉽게도 난 몸치라서 춤을 잘 추지 못하지만 잘 추고 못 추고는 중요하지 않다. 잘 못 춰도 즐긴다.

[사진=안경선 PD]

Q. 스페인은 세계에서 2번째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 사람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A. 스페인은 관광객이 많은 국가 전 세계 2위다. 스페인 인구는 약 4,700만명인데 지난해 8,300만명의 관광객이 스페인을 방문했다. 국민 수 두 배의 관광객이 찾아온 거다. 한국인 관광객 수는 2008년보다 20배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63만명의 한국인 관광객이 스페인을 다녀갔다. 한국민 전체의 1%가량이 다녀간 거다. 방문율이 매년 30% 이상 증가하고 있는데, 그보다 중요한 건 높은 재방문율이다. 두 번, 세 번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순례의 길, 축구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프라도 박물관 등의 스페인 문화에 매료된 분들이 많다. 특히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프라도 박물관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 오디오 해설에 한국어가 포함되기도 했다. 불행히도 코로나19가 관광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지만, 하루속히 회복되길 기대한다.

Q. 순례의 길을 걷는 게 로망인 한국인이 많다. 그 길을 걸어봤는지?

A. 아쉽게도 아직 완주를 못 했지만, 언젠간 꼭 한번 할 생각이다. 순례의 길(예수의 제자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800km에 이르는 길)은 종교적인 면뿐만 아니라 힐링의 요소가 많다. 아름다운 풍경과 맛 좋은 음식, 그리고 그것을 통한 힐링,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이유다.

Q. 스페인 하면 점심시간 후 낮잠·휴식을 취하는 시에스타가 잘 알려져 있다. 다만 관공서에선 시행하지 않는다고도 하던데.

A. 지금은 사실상 시에스타 개념이 없어졌다. 물론 아주 더운 남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점심을 먹은 후에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해봐라. 아침을 7시에 먹고 2시까지 점심을 기다리면 (중간에 간식을 먹긴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나. 그럼 폭식하게 되고 그렇게 먹고 나면 졸리고 처진다. 그래서 과거엔 점심시간이 3시간일 때가 있었다. 물론 그만큼 늦게 퇴근했는데 좋은 루틴이 아니었다. 현재 스페인에서 시에스타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Q. 대작으로 평가받는 『돈키호테』를 배출한 스페인에선 요즘 어떤 책이 주목받고 있는지. 이유는?

A. 스페인에서는 자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을 다루는 도서가 인기다. 물론 다양한 도서가 소비되지만, 일상생활에 관련한 것들이 주목받는다. 돈을 벌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등의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즐기는 거다. “엔조이”. 문학도 일상을 아름답게 하는 도구 중 하나인데, 그런 점에선 1980년대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까밀로 호세 셀라 작가의 책도 많이 읽히고 있다. 아직 스페인 도서가 한국어로 바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사실 스페인어는 중국어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이 쓰이는 언어다. 한국의 학생들에게 스페인어를 꼭 배우라고 제안하고 싶다.

Q. 혹 한국 문학 작품이나 도서를 읽어본 적이 있는지. 읽어봤다면 어떤 책인지, 읽은 소감은.

A. 외교 업무로 바빠 한국의 정치나 사회 관련 도서는 읽어도 한국 작가의 책은 많이 읽지 못했다. 다만 여성문제에 있어 한국이 많이 변했다고 누가 추천해주길래 얼마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스페인 번역본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스페인에선 여성 인권이 꽤 오래전부터 중요한 이슈였다. 스페인에선 꽤 오랜 시간을 두고 여성 인권이 발전해왔고, 특히 최근 3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참고로 앞으로 시간이 허락된다면 신경숙이나 한강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예정이다.

Q. 스페인에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명소가 많을 텐데, 그중에서 대사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면.

A. 갈 곳이 워낙 많아 콕 짚어 소개하기가 망설여진다. 스페인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 그만큼 볼거리가 많고 풍성하다. 한국분들이라면 바르셀로나 혹은 마드리드, 산티아고 그리고 남부지방의 안달루시아, 세비야 등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

Q. 한국과 스페인 양국 간 최근 어떤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또 문화적으로 어떤 교류가 계획되고 있는지.

A. 지난해 10월 스페인 국왕 내외가 한국에 국빈 방문했다. 사실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스페인을 국빈 방문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문화적으로 올해는 수교 70년을 맞은 뜻깊은 해였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스페인 영화제와 기념 책자 『한국-스페인 수교 70주년』 발간만 이뤄졌다. 다른 모든 행사는 내년으로 연기됐는데, 내년에는 꼭 진행됐으면 좋겠다. 또 이른 시일 내에 문화원을 설립해 스페인의 문화와 언어를 한국에 널리 알리고 싶다.

Q. 스페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대사 개인적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한다면.

A. 슬프게도 지난 6월 (상대적으로 젊은)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작가의 작품 『바람의 그림자』를 추천하고 싶다. 스페인에서 『돈키호테』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혔다는 평을 받는 소설이다. 다양한 하위 주제를 포함한 웅장한 소설로 개인적으로 매우 재밌게 읽었다. 아직 읽지 못한 독자분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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