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에게 듣다]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 “동양문화 간직한 유일무이한 중유럽 국가”
[대사에게 듣다]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 “동양문화 간직한 유일무이한 중유럽 국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5.14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사는 국가수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바탕으로 파견된 수교국가에서 외교교섭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합니다. 주재국에서 대사는 곧 국가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기 때문에 대사의 말은 해당 나라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로 평가받습니다. <독서신문>은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의 일환으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를 통해 각 국가의 문화·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초머 모세(Csoma Mózes ). 지난해 9월 부임한 주한 헝가리 대사의 이름이다. 초머가 성, 모세가 이름이다. 여타 유럽 국가에서는 이름을 앞에, 성을 뒤에 쓰는 표기법이 일반적이지만 동양에서 옮겨간 헝가리의 ‘그것’은 흡사 우리나라와 몹시 닮아 있다.

사실 헝가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 이주민이 건립한 나라다. 동양에서 넘어간 만큼 서구와는 다른 문화적 색채가 엿보이는데, 개인보다 가족을 우선하고, 건물 주소를 표기할 때 큰 것에서 작은 순으로 기재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 한국 부모 못지않게 뜨거운 교육열도 여느 동양문화와 유사하다.

국토 면적 930만ha에 인구 약 970만명. 우리나라 인구(약 5,181만명 )의 1/5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뜨거운 교육열 때문인지 헝가리는 노벨상 수상자만 열세명을 배출한 과학·문화 강국이다. 비타민C, CT·MRI, 볼펜, 성냥, 헬리콥터 프로펠러, 망원경, 홀로그래피 등 인류의 더 나은 삶에 일조한 숱한 발견·발명이 헝가리인의 손에서 이뤄졌다. 또 예술적으로는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 현대 음악의 아버지 벨라 바르톡 등 유명 음악인을 배출했고, 문학적으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문학상(2002년)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를 통해 헝가리의 문화 강국 면모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간 헝가리는 우리나라와 특별하고도 의미 있는 인연을 맺어 왔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은 헝가리가 자랑하는 음악가 졸탄 코다이의 제자로 수학했으며, 헝가리인 마자르는 항일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서 폭탄 전문가로 활약하며 대한 독립에 기여하기도 했다. 또 헝가리는 공산국가였던 1989년 당시 공산권 국가 중 가장 먼저 우리나라와 수교해 일찌감치 연을 맺었고, 2008년에는 유럽 국가 중 최초로 드라마 ‘대장금’을 국영방송에 내보내 한류 열풍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지난해 신혼부부 선호 여행지 2위(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에 오르며 친숙한 나라로 자리했지만, 아직까지 직항 항공편조차 마련되지 않은 가까이하기에 먼 나라 헝가리. 그에 대한 이모저모를 용산 동빙고에 위치한 주한헝가리대사관에서 초머 모세 대사의 유창한 한국어로 들어봤다.

주한 헝가리 대사관 전경. 

- <책 읽는 대한민국> 명사로 선정됐다. 소감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인사말 부탁한다.

먼저 <책 읽는 대한민국> 명사로 선정해주셔 감사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마치 제2의 고향이란 느낌을 받는다. 외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대학 교수 출신이라 책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책 읽는 대한민국> 명사로 선정해주셔서 뜻 깊고, 감사하다.

-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들었다. 아내도 한국인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는지?

역사학과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면서 특히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한반도 5,000년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 작은 민족이 거의 1,000년 동안 침략 당했던 한반도와 헝가리의 역사적 공통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한국 역사를 더 깊게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당시 헝가리에는 한국학 과정이 없었다. 다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노(老 ) 교수님이 계셨기에 그분께 1990년대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국을 이해해 나갔다. 이후 한국 국제 교류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연세대학교에서 연수하기도 했다.

아내는 헝가리에 있는 친척집에 방문한 기회에 우연히 만나 서로 언어를 가르쳐주다 교제를 시작하게 됐고 그렇게 인연이 맺어져 결혼에 이르게 됐다.

- 한국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활발한 문화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학교수로서 한반도와 헝가리 관계사를 연구해 왔는데, 한국과 헝가리는 청일전쟁 2년 전인 1892년 우호조약을 체결한 이래로 깊은 연관성을 맺어 왔기에 재미있게 연구할 거리가 많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양국 관계를 열심히 연구해 책을 몇권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런 노력이 밑바탕이 돼 최근에는 한반도와 헝가리 관계사를 통해 주한 헝가리 대사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문화 외교 행보의 한 예를 들자면 지난 3월 말, 헝가리에서 최초로 출간된 한국어 사전을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사전은 1950년대 초 6·25전쟁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유학하던 북한 유학생 1,000명을 위해 만든 것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다. 당시 러시아어로 헝가리를 '웽그리아'(Vengrija )고 했기 때문에 해당 사전은 웽조(웽그리아-조선 )사전이라 불렸다. 당시 헝가리에서는 한글을 인쇄할 수 없기에 북한 평양에서 인쇄해 기차로 실어 날라 1987년 부다페스트에서 사전을 마무리했다. 이후 60년이 지나면서 일부는 북한으로 가고 일부는 소실되면서 구하기가 어렵게 됐지만, 다행히 나는 두권을 갖고 있었다. 지난해 9월 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사전의 재발견’이란 전시회에 참석했다가 ‘웽조 사전이 한글박물관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박영국 한글박물관 관장님께 건의 드렸고, 이후 2월에 부다패스트에서 사전을 가져와 3월에 기증했다.

- 교수로도 대사로도 한국을 접하고 있다. 혹시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그렇게 큰 차이점을 느끼지는 않는다. 19년 전인 2000년 봄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그간 한국을 사랑하는 학자 입장에서 헝가리와 한국 문화 교류를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대사로서 해야 할 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문화 교류뿐만 아니라 정치·경제 교류가 포함돼 좀 넓어진 것뿐이지 사실 하는 일은 비슷하다. 양국 간 교류 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한국에 헝가리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헝가리 국민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로 인식되는 편인가? 일반 국민이 느끼는 한국 이미지가 궁금하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이미지는 굉장히 많이 변했다. 1989년 당시 사회주의 동구권 국가 중 헝가리가 최초로 대한민국과 외교 수립을 맺었는데, 당시만 해도 헝가리에서는 ‘코리아’(KOREA )라고 하면 북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88올림픽(1988년 서울 개최)을 계기로 바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자본주의 국가가 불참하고, 1984년 LA올림픽은 사회주의 국가가 불참하면서 실패한 올림픽으로 치러졌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은 (이념에 영향을 받지 않고 ) 성공적으로 개최되면서 많은 헝가리인이 그때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하게 됐다.

또 한국 드라마의 영향도 컸다. 2008년 헝가리는 유럽 국가 중 최초로 국영방송에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시작으로 ‘선덕여왕’ 등의 사극 드라마를 내보냈고, 이로 인해 헝가리에서는 한류 열풍이 일어났다. 현대 문화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전까지 일본과 중국 문화는 잘 알려졌지만 한국에 대한 정보는 없었기에 사극 드라마를 통해 본 한국 문화는 아주 새롭게 느껴졌다. 젊은 층 외에 나이 드신 한류 팬이 많이 생겼고, 한류 팬이 많이 생기면서 2008년에 외트뵈시 로란드대학교(ELTE)에 최초로 한국학 과정이 설립되고 2013년에 한국학 석사과정, 2017년에 한국학 박사과정이 마련됐다. 현재 헝가리인에게 한국은 ‘발전된 나라’ 한국인은 ‘일 처리가 정확한 사람’ 포괄해서는 ‘뭔가 배울 게 있다’는 이미지로 자리한다.

- 올해는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대사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준비 중인 이벤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문화 행사를 많이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월에 음악회를 2회 개최했었고, 6월에도 음악회를 2회 정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 6월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 헝가리가 주빈국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다. 헝가리 문학 작품을 번역해 소개하고 헝가리 작가 몇 명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10월쯤에는 서울시역사박물관과 협력해 특별한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을사조약 3년 뒤인 1908년 한 헝가리 군의관이 촬영한 서울, 제물포, 부산 등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를 전시할 예정이다. 또 헝가리 국립통신사를 통해 지난 100년의 한국과 헝가리의 관계를 돌아보는 사진전도 준비하고 있다. 광복 이후인 1948년 헝가리와 북한이 수교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6·25전쟁 모습, 당시 헝가리를 방문한 북한 지식인들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전시할 예정이다. 또 지난 30년간 대한민국과 헝가리의 경제 교류에 관한 사진도 전시할 예정이다.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지난해 한국인이 선호하는 여행지 2위에 오를 정도로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 헝가리 문화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헝가리 문화원 건립이 진행되고 있다던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내용이 준비 중인가?

올해 12월에 명동에 주한헝가리 문화원을 설립할 예정으로 문화원 건립을 준비 중에 있다. 젊은 세대가 많이 찾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직접 장소를 물색하다 명동에서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문화원을 통해서는 한국 문화와 많은 유사점을 지닌 헝가리 문화를 전파할 예정이다. 헝가리는 1,2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타고 천천히 중유럽까지 이동한 이주민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헝가리 문화에는 아직까지 아시아적인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이름을 쓸 때 한국과 같이 성 뒤에 이름을 쓰고 주소를 쓸 때도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쓴다. 또 헝가리의 대표적인 수프 굴라쉬 수프는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하다. 이런 내용을 헝가리의 와인 문화와 클래식 문화와 함께 소개하고 싶다. 문화원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와인을 음미하고 또 헝가리 영화와 공연을 관람하면서 헝가리 문화가 친숙하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 한국 문화에 대한 소양이 깊다고 알려졌는데, 주한 대사로 주재하는 동안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는지? 겸임하고 있는 북한 대사 입장에서 말해줘도 좋다.

해야 할 일이 많다. 먼저 큰 목표 중 하나는 서울과 부다페스트 항공 직항로 연결이다. 지난 30년간 한국과 헝가리를 잇는 직항로가 없었기 때문에 지난해 주한 헝가리 대사로 부임한 이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여러 기관과 항공사와 협의한 결과 올해 좋은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또 북한 대사도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남북관계를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중 하나가 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다. 1950년대에 헝가리와 북한의 문화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북한 시인, 소설가, 작가들의 많은 작품이 헝가리어로 번역돼 있다. 또 북한 지식인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자료를 통해 당시 북한 지식인들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것도 남북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월에는 평양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90세가 넘은 김 위원장이 정년퇴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신임장을 준 사람이 나였다. 신임장을 전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북한 평양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차로 2시간 반(서울-평양 )밖에 안 걸리는 거리를 돌아가느라 적잖은 돈과 시간을 낭비해야만 했다. 사실 한국 외교부에도 말하고 북한 외무성에도 말했는데 북한 측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라도 판문점을 통해 다니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한다.

- 헝가리는 지금까지 열세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교육체계와 연결돼 있다고 본다. 헝가리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자연과학에 중점을 두고 교육한다. 역대 수상한 노벨상도 물리학, 화학 등을 포함한 자연과학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비결 같은 건 없고 그냥 교육체계 안에서 연구 분야를 잘 골라 깊게 연구해 훌륭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개인적인 소견인데 연구 분야를 잘 골라 그 길로 쭉 가면서 계속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본다.

- 사실 교육열은 한국도 높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는 아직 한명도 배출되지 않았다.

노벨상 같은 경우 헝가리와 한국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헝가리는 20세기 초인 1930~1940년대에 노벨상을 많이 받았다. 그때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였고,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비교하기가 어렵다.

- 2019 국제 도서전의 주빈국으로 초청됐다. 헝가리에서는 어떤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나? 헝가리의 출판계 동향이 궁금하다.

15년 전만 해도 헝가리에서는 책 출판이 쉽지 않았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가벼운 책의 경우 비교적 쉽게 나올 수 있었지만, 학문적인 내용의 경우 출판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당시 출판 경기가 좋지 않아 대다수 출판사는 작가가 외부에서 금전 지원을 받아오지 못하면 출판을 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헝가리 경제가 좋아지면서 외부 지원 없이도 원고 내용만 좋다면 얼마든지 출판이 가능해졌다.

- 개인적으로 한국인에게 추천할 만한 헝가리 음식이 있는지?

한국의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 수프를 추천한다. 헝가리 사람들은 굴라쉬 수프에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 빵을 찍어 먹고 레드 와인을 곁들여 먹는다. 또 헝가리는 케이크 만드는 문화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부다페스트에 가보면 수백 년 된 케이크 가게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제르보라는 케이크 가게다. 제르보는 가게 이름이기도 하지만 초콜렛이 올려진 케익 이름이기도 하다. 제르보는 전 세계적으로 두 곳의 지점을 냈는데, 한 곳은 일본 도쿄, 나머지 한 곳은 대한민국 서울이다. 재작년에 잠실 롯데타워에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헝가리식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 대사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헝가리를 방문하면 꼭 가볼만한 여행 코스가 궁금하다.

헝가리는 오랜 온천문화를 갖고 있다. 120년 전부터 헝가리에 온천이 많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이 온천을 즐기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은 세체니 온천으로 실내/외 시설이 마련돼 있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이 많이 찾는데, 한국 관광객도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 또 부다페스트에서 멀리 떨어진 헤비즈라는 마을도 헝가리에서 아주 인기 있는 온천지역이다. 개인적으로 헤비즈 야외 온천을 추천한다.

대사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헤렌디' 찻잔
대사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헤렌드' 찻잔.

또 헝가리는 유서 깊은 도자기 문화도 가지고 있다. 헝가리에는 ‘헤렌드’라는 도자기로 유명한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헤렌드’라는 브랜드의 도자기가 생산되는데, 마을을 방문하면 도자기 공장을 직접 볼 수 있고, 100년간 가장 인기 있었던 도자기와 어느 나라 황제나 왕에게 보냈던 도자기의 사진과 모형을 관람할 수 있다.

- 헝가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개인적으로 추천해줄 도서가 있다면?

2013년에 내가 쓴 책 『헝가리 부다페스트로!』를 추천한다. 책에는 1950년대 부다페스트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헝가리 사람들이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북한 고아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잘 나와 있다. 또 공산주의 독재에 큰 영향을 끼친 1956년 발생한 헝가리 혁명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어 헝가리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당시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헝가리 공문서 보관서 자료를 많이 수집했고, 북한 유학생 출신 두명과 인터뷰도 진행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이후 대다수 북한 유학생이 돌려보내졌지만, 돌아가지 않은 네명 중 두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60년 넘게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생활했는데, 나와 이야기하면서 60년간 쓰지 않았던 헝가리어와 한국어를 사용해 대화를 나눴다. 마치 역사와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