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에디슨처럼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에디슨처럼
  • 스미레
  • 승인 2019.09.25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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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나간 어느 오후였다. 아이 그네를 밀어주는데, 미끄럼틀에서 과자 봉지를 던지며 노는 어린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세 살쯤 됐으려나. 미끄럼틀에 올라가 봉지를 던진 아가는 나폴나폴 떨어지는 봉지를 지켜보며 환호했다. 그리곤 내려와 봉지를 줍고, 올라가 또 떨어뜨린다. 끝없는 반복. 급기야 아기 엄마가 나섰다.

“이제 시소 탈까? 그네 탈까? 집에 갈까? 친구 왔네, 친구랑 놀까?..”

그 모습을 열없이 지켜보는데, 아이가 그런다. “엄마, 쟤 지금 실험하는 거예요.”

그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세 살 아가의 행동은 갈릴레이의 자유 낙하 실험과 다를 바가 없었다.

머릿속에 전구 켜지듯 아이와 함께 읽던 과학자들의 전기가 떠올랐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면 전력을 다해 뒤쫓던 사람들. 주위에서 뭐라 하든 무수한 실험을 반복하던 그들과 우리 아이들은 닮은꼴이다.

‘아이들은 모두 과학자’라는 말이 비로소 가슴에 와닿던 순간이었다.

라이트 형제에겐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윌버가 열한 살, 오빌이 일곱 살. 아버지로부터 장난감 비행기를 선물 받던 날부터 시작된 그 꿈을 형제는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퀴리 부인은 4년여에 걸친 헌신적인 연구 끝에 라듐을 발견한다. 장영실은 금속활자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 산속에 살며 광물을 채집했으며, 에디슨은 무려 이천여 번의 실험 끝에 필라멘트를 발명했다.

아이에게 이들의 전기를 읽어줄 때면 영롱한 용기가 차오르곤 했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내 어깨를 다독이며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 번에 끝나는 건 실험이 아니라고. 세상을 향한 아이의 호기심을 막지 말라고. 아이가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아이 안에 시간이 쌓이게 두라고. 아이 저 자신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매번 더 나은 것, 새로운 것을 접하게 해줘야 한다는 내 안의 압박은 그렇게 힘을 잃었다. 육아 역시 양보단 질, 질보단 반복을 지향하게 되었다.

안전한 환경을 마련하고 풀어놔 주면 아이는 하고 싶은 것을 기가 막히게 찾아 반복한다. 오늘만 해도 공차기, 팽이치기, 종이접기를 하고 또 했다.

즐거우니 잘하게 되고, 잘하니 즐거운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창문을 많이 열면 바람이 약하게 들어오는데, 조금 열면 세게 들어 와.” 몇 해 전 창가에서 놀던 아이가 말했다.

아이 입에서 도르르 굴러 나온 것은 중학교 과학에 나오는 베르누이의 원리였다. 물론 용어 자체엔 의미가 없다. 센터에서 한 번 해보는 수업을 통해 ‘배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식사 준비를 할 때 아이는 부엌 창가에서 놀곤 했는데, 이때 ‘깨우친’ 것이다.

아이가 창문을 한두 번 여닫아봤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몇 년을 놀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과 일상이 쌓여 이룬 합.

아이는 창문을 수백 번 여닫으며 때마다 다르게 와닿는 바람의 세기를 수백 번 느껴 봤을 테다. 일상이라는 선생님이 건네는 ‘진짜’ 수업을 경험한 것이다.

“모든 경험(Experience)은 실험(Experiment)이다.”

에디슨의 말이다. 아이의 말썽도 사실은 실험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아이는 온갖 걸 돌려보며 원심력을, 던져보며 포물선 운동과 중력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때 아이는 ‘여러 방법으로 나만의 가설을 실험 중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얌전한 아이가 되라며 다그쳤다.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이제 와 드는 생각은 ‘더 하게 둘걸.’

일상의 모든 경험이 실험임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육아하는 우리에게도 그런 자세는 필요하다. 아이처럼, 실험하듯, 한번 해보는 것이다. 육아의 매 순간을 실전처럼 임하면 지칠 수밖에.

에디슨에 의하면 실패도 실패가 아니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전구가 켜지지 않는 이천 가지의 방법을 알아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혹은 ‘효과 없는’ 방법을 얻은 것일 뿐. 
육아하며 작아진 마음을 그 말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 크게는 이사를 감행했고, 작게는 새로운 식단을 짜보기도 한다. 실험하듯 말이다.

언젠가 옆집 아이가 잘 본다는 책을 아이에게 사준 적이 있다. 아이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실패한 시도라 여기지는 않는다.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 책을 골라냈으니 오히려 수확이다. 답으로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님을 그렇게 배웠다. 삶이 좀 더 맑고 경쾌해졌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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