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똑똑하다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똑똑하다
  • 스미레
  • 승인 2019.07.24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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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추억과 감정이 담긴다. 앨범이나 타임머신처럼 책장을 여는 순간 기억이 따라 나온다. 아이의 첫 책들은 물론 내가 읽던 청소년 도서들, 대학 교재에 아직도 적지 않은 공간을 내주는 이유다.

책을 좀 줄이고 가뿐하게 살고 싶었지만, 책을 버리거나 팔 때면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들었다. ‘책 정리하기 너무 힘들어요!’ 외치는 육아 동지들이 꽤 계신 줄로 안다. 그분들에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눠 본다.

움베르코 에코의 ‘손끝 독서’라는 말이 있다. 손끝으로 접한 책이 두뇌로 흡수된다는 환상적인 말인데,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책이 많은 환경’이다.

말하자면 무의식적인 책 읽기다. 어떤 책을 읽지 않아도 오가다 표지를 보고, 펼쳐 보다 한두 페이지 읽다 보면 내용이 흡수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런 책은 심리적으로 가깝게 느껴지기에 그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도 훨씬 쉽다고. 에코 역시 아버지의 서재 정리를 하며 책과 친해졌고, 덕분에 폭넓은 손끝 독서를 경험했다고 한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테다. 집에 있는 책 말이다. 오랫동안 ‘표지만’ 봐왔는데 ‘본 책’이란 느낌이 드는. 그리하여 결국 예고된 운명처럼, 그 책과 눈이 맞게 되었는데 내용마저 낯설지 않던 묘한 경험.

아이 역시 책 곁을 스쳐 가며 머릿속으로 그 책들을 한 번씩 더 떠올리고 되돌려 볼 테다. 펼쳐 보지 않고도 반복이 이뤄지는 셈이다.

더 객관적인 자료도 있다. ‘집에 책이 쌓여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지적 능력이 향상된다’ 는 연구 결과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아도 집에 책이 쌓여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또 집에 책이 많이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 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 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 데이터 5년 치를 분석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집에 책이 많은 분위기에서 자란 성인들은 언어 능력, 수학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났다. 학창 시절 학업성적도 집에 있는 장서의 규모와 비례했다. 특히 고소득층 자녀보다 저소득층 가정에서 책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학업성적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규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더라도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란 10대 청소년들은 책이 별로 없는 환경에서 자란 대학 졸업생만큼이나 지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연구진의 설명도 있었다. - 경향신문 2018.10.24. 책, 쌓아만 둬도 똑똑해질까 [기자칼럼] 중에서]

기사는 책으로 ‘둘러싸인’ 가정환경의 이점을 말한다. 이때 대상을 ‘둘러싼’ 책은 필시 ‘가족의 책’일 것이다.

영유아기 독서의 중요성은 모두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가족의 책’이 많은 환경의 중요성은 자꾸만 빛이 바랜다. 영유아 전집 판매량은 끝없이 치솟는데 성인의 연간 도서구매량은 1인당 평균 4.1권이다. 한국의 가정당 장서 규모는 31개국 중 25위. 초라한 실적이다.

육아하면서 아이 책만 늘린다면, 부모의 의도가 너무 뻔히 드러난다. 

아이는 어느 날 알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을 읽는 건 나뿐이구나. 책을 사준 어른들은 스마트 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치, 책은 좋은 거라더니.’

가족의 책이 풍족한 환경은 책 읽는 분위기와 맞닿는다. 부모의 생활문화와 취향이 곧 아이의 환경이다. 아이는 지금도 손끝으로 많은 것을 흡수하고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

지금 내가 꺼내놓은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들은 아이의 오감을 타고 무의식 안에 새겨져 그 삶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들이다.

육아하는 집에 더 많아져야 하는 건 양질의 부모 책일지도 모른다.

잡동사니를 치운 집안 곳곳에 어른 책을 배치했다. 자극적인 책들은 치워두고, 양서들만 아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무심히’ 꺼내두었다.

어른 책을 궁금해하던 아이는 엄마 아빠의 책을 야금야금 빼 읽으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

어느 날 아이가 바우하우스에 관한 책을 보더니 “르 코르뷔지에네!”하는 것이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더니, 내 책장의 책에서 본 이름이라고 했다. 한번은 아이가 마트에서 뜬금없이 청소도구를 사보란다. 엄마의 미니멀 라이프 책에서 봤다며 제품의 장점을 읊어주는 ‘주부 9단’의 설명에 웃음이 났다.

때론 게으름도 약이 된다. 나는 남편이 학술지나 설계도를 펼쳐 두고 출근해도 치우지 않는다. 아이가 흥미롭게 살펴보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아이는 내가 식탁 위에 엎어둔 어린 왕자와 마주쳤다. 대학 시절 배우던 원서였는데 아이는 불어 까막눈이니 ‘읽었다’ 할 순 없다.

다만 마주친 것이다. 우유 잔을 든 채 책 앞에 멈춰 선 그 동그마한 뒷모습에 전율했다. 아이는 무언가를 읽듯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마치 오랜 친구가 될 준비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한 사람의 세계를 형성하는 점들을 놓는다는 마음으로 책을 놓아둔다. 취하여 잇는 건 아이 몫이다. 어젯밤 아빠 서재에서 자동차에 관한 책을 보던 아이가 오늘 아침 어린 왕자의 별에 떨어졌듯이.

자동차 크랭크축에서 어린 왕자의 소행성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어떤 점을 어떻게 놓아둘지는 부모에 달렸다. 먹먹한 책임도 든다. 오늘 마주친 책 한 권이 아이의 평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르니.

현대 최고의 미학자이자 지성인 움베르토 에코가 지식과 감성을 쌓은 최초의 장소는 아버지의 서재였다. 그는 책의 소멸이 아닌 각 가정의 ‘서재의 소멸’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 과소비자인 나에겐 고마운 이야기다.

주말엔 서점에 가볼까 한다. 아이가 손끝으로 흡수할 좋은 책을 골라 탁자 위에 두고 천천히 읽을 참이다. ‘책 덕후’로 살 수 있는 명분이 하나 더 생겼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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