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마당이 전해 준 것들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마당이 전해 준 것들
  • 스미레
  • 승인 2020.02.21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해 전,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오고 맞는 첫 겨울이었다. 매일이 조용하고 나른했다. 어찌나 심심한지, 손에 잡힐 듯 느린 시간이 마침내는 먼지가 되어 내 앞에 쌓일 것만 같았다. 와글대던 마당이 얼어붙고서야 작은 마당이 그간 우리에게 얼마나 대단한 볼거리와 소일거리를 제공했는지 깨달았다. 그제야 서운했다. 봄을, 꽃을 이렇게 기다릴 수도 있는 거구나 생각했다. 아쉬운 대로 아이가 뽑아온 겨울 무의 윗부분을 옴폭한 접시에 담가 두었다. 심심함에 저지른 일이었는데, 어쩌자고 가냘픈 싹이 올라왔다.

시시각각 울고, 웃고, 노래 부르는 아이 곁에서 무 싹은 말이 없었다. 아이의 자람은 저렇게나 소란하고 손이 많이 가는데 식물은 물만 주면 잘 자라는구나.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조용함이 고마워 매일 물을 갈아주고 해 닿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줬다.

그러던 어느 아침. 창가에서 무언가가 반짝였다. 별.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무 싹 끝에 조롱조롱 맺혀 있는 건 별을 닮은 작은 꽃이었다. 너였구나, 네가 거기 있었구나. 추운 데서 기대도, 응원도 없이 꽃을 다 피웠네. “안녕” 인사하는데 그만 눈물이 났다.

겨우내 여기서 안간힘을 쓴 게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에 뭉클했다. 몇 년이 지났건만 그때의 환희와 감격을 마음에 품고 산다.

그 후로도 작은 감동이 필요할 때면 무 싹의 위로를 떠올린다. 혹은 차가운 마당 아래서 봄을 기다리는 백합 구근이나, 조금씩 통통해지는 겨울눈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힘이 나는 것이었다.

마당 화초들에겐 저마다의 때와 속도가 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이들은 순서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재촉한다고 서두르는 법 없고, 힘들다고 숨는 법도 없다.

모든 일이 꼭, 지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뿐인가 보다. 과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아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모든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주고 싶어 하는 걸까? 쉼 없이 인공 비료를 줘서 빨리, 크게 키운 식물은 건강할까? 자라는 몸과 머리를 마음이 따라 잡을 시간은 있었을까? 눈 덮인 빈 마당을 서성대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있는 집 안이야 1년 내내 따습고 분주하지만, 밖은 아직 겨울이고 마당 릴레이도 잠시 휴식이다. 마당 벚나무는 죽은 듯 보여도 속으론 열심히 물을 올리고 있음을 아이도,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봄이 오면 앙상한 지금이 거짓말인양 연둣빛 순이 오를 것이다. 제비꽃과 민들레를 필두로 하는 꽃의 릴레이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요. 초조해하지도 말고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시간만이 약인 시절도 있답니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 마당 식구들이 내게 보낸 응원이다. 마당이 주는 여느 기쁨 –딸기와 토마토 몇 알, 사진 몇 장– 과는 비할 수 없는 귀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기세등등한 동장군이 다가와도‘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란 싯구를 되뇌며 조금은 태평해진 자신을 본다.

모두가 잠든 것 같은 겨울에도 아이는 자란다. 당당히 행복을 고백하는 모습이 고개를 내민 겨울눈처럼 단단하고 건강하다. 겨울이 매일 저만치 물러난 것도 아이 웃음 덕분일 테다. 습관처럼‘아가’하고 불렀는데 아홉 살 형아가 옆에 있어 놀라는 요즘이다. 그래도 아직은 달큰한 아가 냄새가 나는데, 제법 나를 위로하고 위할 줄도 안다. 고집불통 까꿍이는 어디로 가고.

창문을 열었는데 차지 않은 바람이 코끝에 스쳤다. 얼핏 목련 냄새를 맡은 것도 같다.

새봄이 아름다우려나 보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