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누워” 서점을 지배하는 매정한 자본의 논리
“돈 내고 누워” 서점을 지배하는 매정한 자본의 논리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6.04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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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왜 어떤 책은 서 있고, 어떤 책은 누워있을까요? 서점에 들어가면 어떤 책은 평대에 누워있는 반면, 어떤 책은 서가에 꽂혀있습니다. 소비자는 당연히 누워있는 책들에 더 눈이 가기 마련이고, 실제로 누워있는 책이 서 있는 책보다 더 잘 팔립니다.

누워있는 책이 서 있는 책보다 홍보효과도 높고 판매에 유리하니, 누워있는 책은 서점에 광고비를 낸 책이고 서 있는 책은 그렇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물론 서점의 많은 평대들, 특히 대형서점의 평대에 책이 누워있게 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평대도 있습니다. 

먼저, ‘신작 소설’ ‘신작 에세이’ 등의 이름표가 붙은 신간 평대에 있는 책들은 돈을 내지 않고 누워있는 책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대형서점이든 중소형서점이든 신간이 들어오면 일정 기간 신간 평대에 비치해줍니다. 

책이 신간 평대에 누워있을 수 있는 기간에는 운이 크게 작용합니다. 어떤 신간은 서점에 들어오자마자 서가로 가서 서 있게 됩니다. 신간 평대에 눕게 되더라도 운이 좋아야 오래 누워있을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서가로 가서 서 있게 됩니다. 

대형출판사에서 8년째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프랭크의 책 『독립출판 제작자를 위한 대형서점 유통 가이드』에 따르면 책이 신간 평대에서 서가로 가는 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의자 놀이와 비슷합니다. 만약 신간 평대에 책 20종이 비치될 수 있는데 30종이 들어왔다면 나머지 10종은 서가로 가게 됩니다. 서가로 보내지는 책들은 매장 담당자가 판매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는 책들입니다. 매장 담당자의 마음에 들수록 책은 더 오래 누워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간 평대가 아닌 곳에 누워 있는 책들은 전부 광고비를 낸 것일까요? 그것은 또 아닙니다. 특히 대형서점이 아닌 중소형 서점들, 동네책방들에는 광고하려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점장들이 평대에 누울 책을 직접 선정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대형서점의 일부 평대에 붙은 이름표에는 자세히 보면 작은 글씨로 “AD” 혹은 “아래 진열 도서는 광고 도서입니다”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러한 평대에 누워있는 책들은 돈을 내고 누워있는 책들입니다. 보통 한 달 단위로 광고 계약을 하니 한 번 누우면 한 달 이상 누워있게 됩니다. 

일부 서점들에서는 한 곳에 산처럼 쌓인 책을 본 적 있을 겁니다. 혹은 특정 출판사의 책 한 종 혹은 두 종만을 진열한 평대도 자주 보입니다. 이러한 책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광고비를 내고 누워있는 책들입니다. 

돈을 내고 책을 누워있게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서점과 오프라인 평대 광고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서점의 규모가 크고 매출이 높을수록, 평대의 위치가 좋을수록 광고비는 높아지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다양합니다. 

둘째는 서점에서 월별로, 혹은 시즌별로 진행하는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가령 작은 출판사 기획전 등에 참여한다면, 도서 공급률(책 한권이 팔리면 출판사가 받는 돈의 비율)을 5~10% 정도 인하해 공급하거나 이벤트 참여비를 내야 합니다.   

사족으로, 온라인 서점에서도 ‘누워 있는 책’의 개념이 있습니다. 서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책들 밑에 조그마하게 “AD”라는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이 책들은 남들이 많이 사는 책이라거나 특별히 좋은 책이 아니라 단지 광고비를 많이 낸 책입니다. 물론, 광고비를 많이 집행할 수 있는 출판사는 주로 대형 출판사일 것이며, 대형 출판사에서 양질의 책이 나올 가능성도 높지만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소규모 출판사에서 낸 어떤 책들은 광고비를 내지 못해서 그 책이 필요한 독자를 먼발치에서 서서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중소형 서점과 동네책방이 더욱 힘들다는데, 앞으로 우리는 더욱더 대형서점에 돈을 낼 수 있는 책들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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