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의 책 한 모금] 변 사또 수청 거부한 춘향과 페미니즘
[서믿음의 책 한 모금] 변 사또 수청 거부한 춘향과 페미니즘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3.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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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현시대에 페미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성평등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성(性)의 인권신장은 필연적으로 다른 성, 더 나아가 기존 사회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사람은 직간접적으로 페미니즘의 영향권 안에 놓인다. 시대 흐름에 걸맞은 페미니즘 기조를 숙지하지 못한다면, ‘의도’와 별개로 타인에게 상처의 말을 건네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는 만큼 페미니즘 지식을 미리 쌓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출간된 『모두를 위한 성평등 공부』(프로젝트P)는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학, 사회학, 성교육, 언론정보학 분야의 전문가 6인이 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해 알아야 할 개념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책은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페미니즘 개론으로 서두를 연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진보적 여성운동으로 페미니즘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이다. 당시 서구 사회는 이미 페미니즘 3세대를 통과하는 시점이었다. 페미니즘 1세대(1700년대 이후)가 남녀의 동등한 권리(참정권)를 주장하는 ‘평등권 문제’를 다뤘다면, 제2세대(1960년대 중반)는 낙태, 가사노동 등의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주목했고, 제3세대(1980년 이후)에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페미니즘 인식 차이를 고민했다.

여성 참정권의 역사는 길지 않다. 1893년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1918년 영국, 1919년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실현됐다. 한국에서는 1948년 총선거때 여성의 투표권이 주어졌다. 오랜 시간 쟁취해 참정권을 얻어낸 서구와 달리 우리 사회는 외견상 비교적 손쉽게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적지않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1898년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에는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자와 다름없는 사람(여성)으로 규방에 갇혀 밥과 술을 지으리오. (중략) 우리도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라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실시한다”는 「여권통문」이 실려 “여성도 인간”이라는 목소리가 주목받았다.

1934년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를 통해 존중받지 못하는 여성의 처지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나혜석은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라고 외쳤다. 그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노년에 행려병사(行旅病死)했다. 이후 성평등 개념은 1980년대 들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크게 부각됐다.

이런 배경 설명 외에도 성평등과 관련한 다양한 주장이 책에 담겼다. 한채윤 교육플랫폼 ‘이탈’의 기획위원은 ‘정조’(성적 순결)에 초점을 맞춰온 그간의 성폭력 처벌 기조는 온당치않다며 ‘성적자기결정권’을 강조한다. 정조 유무가 처벌 근거가 된다면 이미 정조를 잃은 사람의 경우 성범죄에 무방비로 방치되며, 가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 구도를 고착화하고, 동성 간 성폭력은 간과하기 쉽기 때문에 스스로의 결정이 주목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위원은 또 변 사또에게 수청을 강요받은 춘향을 예로 들며 성폭력은 ‘동의’와 ‘거부’로 쉽사리 구분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동의와 거부만 존재한다면 춘향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비난과 죽음뿐인만큼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환경 내에서 거부와 동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성폭력과 관련한 재현의 윤리를 거론한다. 그는 실제적 묘사가 상황 이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전제하면서 폭력을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폭력 피해자라는 정보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음에도 다수의 미디어가 폭력 장면을 그대로 노출해 사람들을 자극하고 흥분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SBS 드라마 <리턴>(2018)과 일본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 <귀향>(2015)을 선정적 사례로 거론하면서 “재현하는 데에는 윤리적 고려가 필요하고 그래서 방식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타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행위이고 타자를 자신의 올바름을 전시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전유하거나 활용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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