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다] ‘한국출판인회의’ 이광호 회장...“책은 문화의 토대이며 전위입니다”
[명사에게 듣다] ‘한국출판인회의’ 이광호 회장...“책은 문화의 토대이며 전위입니다”
  • 고재권 기자
  • 승인 2024.03.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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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발명은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인류는 문자의 발명으로 비로소 역사와 문명의 초석을 놓았고, 책의 확산을 통해 지성과 문화 혁명을 이루어 냈다. 지난 수천 년간 이어온 문자의 대서사는 21세기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지성과 문화의 뿌리로 영속하고 있다. 그 뿌리의 중심에서 오늘도 이 서사로 땀 흘리며 책을 짓는 출판인들의 모임이 있다. 1998년에 출범해 올해로 스물여섯 돌을 맞는 ‘한국출판인회의’이다. 오늘도 헌신적으로 협회를 이끄는 이광호 회장을 만나 한국 출판계의 현황과 과제에 관해 물었다.

한국출판인회의 이광호 회장 [사진=한국출판인회의]

Q.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간단한 인사와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문학과지성사와 연륜을 함께하는 독서신문에 인터뷰이로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문학평론가로 오랫동안 서울예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2017년부터 문학과지성사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2023년부터 ‘한국출판인회의’ 첫 직선제로 선출된 제13대 회장직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출판계에 입문함과 동시에 출판계의 공적인 일들을 맡게 되어 파란곡절도 많았지만 뜻을 함께하는 단행본 출판인들의 격려에 힘입어 사명감을 가지고 직책을 수행하고 있다.

Q. ‘한국출판인회의’는 어떤 단체인가.

단행본을 출판하는 출판사들의 연대와 사회·문화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단행본 출판인들에 의해 1998년도에 설립된 단체이다. 현재 500여 회원 출판사와 함께 출판권리의 신장과 문화적 진흥, 산업적 발전이라는 시대의 소명을 다하고자 공동체적 연대감 속에서 새로운 출판의 세기를 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출판문화 발전과 국민 지식수준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한국출판인회의]
[사진=한국출판인회의]

Q. ‘한국출판인회의’ 설립 이후 추진한 주요 사업과 성과는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출판인회의는 출판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유용하고 가치 있는 책과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아울러 출판시장의 환경 개선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매진해 왔는데. 출판권자 법적 지위 신장이나, 도서정가제 의식 개선, 출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추진, 저작물 불법 복제 유통 근절, 출판사 관련 예산 증액 그리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사업 등이 그 예이다. 특히 ‘SEOUL BOOK INSTITUTE(SBI)’는 한국출판인회의의 대표적인 주요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Q. SBI는 어떤 기관인가. 추가 설명을 듣고 싶다.

SBI는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고 선도하기 위해 2005년 단행본 출판인들에 의해 창립되었는데, 현재는 정부의 지원으로 출판인들을 양성하는 가장 공신력 있는 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마케터, 디자이너, 편집자를 배출하고 있는데, 지난 18년 동안 1,000명이 넘는 새로운 출판인을 선발해 교육했으며, 7,000명이 넘는 출판인에게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SBI는 출판인이 직접 세운 출판 전문 교육기관의 장점을 살려 현장 중심의 교육을 꾸준히 개발해 왔을 뿐만 아니라, 출판의 역사에 근거한 기본 교육은 물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현장 출판인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그 결과 편집자 과정은 매년 평균 7: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엄격한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과해 선발된 교육생들은 졸업 이후 약 90%가 전국 곳곳의 단행본 출판사에 취업해 맹활약하고 있다. 한편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SBI를 더욱더 질적·양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들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한국출판인회의]
[사진=한국출판인회의]

Q. 국민 독서율이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출판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한민국의 독서 진흥 문제는 출판계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이다. 국민의 독서율이 감소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라고 본다. 가까이는 코로나19 종료 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외부활동에서부터 책보다는 디지털매체가 국민과 더욱더 친숙해지며 새로운 세대의 독자가 유입되지 않는 문명사적 원인, 대학사회와 인문학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학문적 원인, 나아가 인구 감소와 같은 범국가적 원인까지...

이런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변화와 국가의 지원이 매우 절실하다. 우선 책을 읽는 독서 행위가 재미없고 지루한 의무적 행위가 아니라,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매우 가치 있는 행위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려서부터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교과 과정 시스템개발이나 독자가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출판사와 작가, 서점, 도서관 등 출판생태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네트워크가 복원되어야만 한다. 지난해 출판단체 최초로 한국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협회, 한국시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평론가협회 등과 함께 출판단체 최초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문학나눔사업’ 확대나 독서진흥과 출판예산의 증액, 전자책 불법복제 대책을 적극적으로 정부에 요청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출판계의 목소리에 더욱더 귀 기울이기를 희망한다.

Q. 감소하는 독서율을 진흥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독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도서를 기획하고 출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출판계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다만, 이와 더불어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빠른 디지털화가 가속화 하는 대세에서 시스템상의 전자책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독서율 진흥을 위한 시급한 과제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디지털에 익숙한 새로운 독서인구의 유입은 진정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 몇 몇 온라인 서점에서 일어난 전자책 관련 불법 유출과 저작권 침해 사례에 대해 출판인회의는 출판사와 저작자의 권리를 위해 실질적인 투쟁과 합의를 이끌어내었다. 또한, 확대되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의 정산 방식, 즉 대여 구독제 분배율에 있어서 아직 불합리한 점이 많다. 이것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세우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결국 큰 틀에서 보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획과 디지털화를 진행해야 하는데, 협회 차원의 지원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유통이나, 경영상의 디지털화를 위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을 고도화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KoPub ERP’라는 새로운 ERP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작은 출판사는 자체적인 대형 ERP 시스템을 갖추기가 어려워 진흥원과 함께 이 시스템을 만들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작은 출판사에 공급해 작은 출판사도 유통과 경영에서 디지털화를 통한 업무 역량 강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사진=한국출판인회의]
[사진=한국출판인회의]

Q. 이런 독서율 감소의 상황에서도 출판사 수와 신간 발행 건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협회의 견해가 궁금하다.

책의 종수가 많은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의 가치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 출판시장의 규모가 현저히 작다 보니 그 수많은 책 중 손익분기점을 넘는 비율이 매우 낮다. 그뿐만 아니라, 책을 출판했다 하더라도 그 책을 독자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다. 중앙일간지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는 나날이 줄고 있고, 오프라인 서점에 책을 진열하는 것은 공간의 제약이 심하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 홍보는 너무 높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독자들은 베스트셀러 순위 안에 있는 책만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지금의 출판시장은 과도기로 본다.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장의 양극화의 문제가 있다. 작은 출판사는 대형출판사와 비교해 기획, 작가발굴, 출판, 홍보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출판시장의 양극화를 더욱더 가속화시키고 있다. 협회에서는 능력 있는 작은 출판사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지속해서 고민하고 있고, 정부 또한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한편 시스템이 갖춰진 대형출판사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신규 독자를 독서 시장에 유입할 수 있는 일에 더욱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규 독자를 배가함으로써 독서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워나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Q. 1인 미디어시대가 도래하며 출판계에서도 우후죽순으로 책이 대량생산되고 있다. 이것이 출판계나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협회가 강제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지만, 출판사의 대표로서, 그리고 문학평론가로서 생각해보면,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독자들이 책의 독창성보다는 작가의 미디어상 인지도에 따라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 또한 작품 자체로 경쟁하기 위한 노력 못지않게 자신을 미디어상의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매우 창의적인 작품을 집필했음에도 미디어상의 인지도가 낮거나 없는 작가라면 독자의 선택을 받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제는 매우 풀기 어려운 현안이다. 장단점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독자들의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다양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디어상의 인지도만이 아닌, 독자 자신들의 취향의 자율성과 다양성으로 책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각 지역 작은 서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문하는 독자에게 미디어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어있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다양한 큐레이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시스템상 지역 서점이 자생할 수 없는 환경이다.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역 서점을 지원하고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역 서점이 살아나면 책 선택 기준의 다양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협회는 그동안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왔는데, 최근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의미 있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사진=한국출판인회의]
[사진=한국출판인회의]

Q. 올해 협회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사업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하는 사업 외에 올해의 최우선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출판계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정부에 도서제작비 세액공제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작년에 정부는 영상산업 진흥을 위한 세제 혜택은 확대 시켰지만 정작 영상산업의 뿌리가 되는 출판계의 요청은 아직 외면하고 있다. K-콘텐츠의 세계화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정부에서 그 토대와 마중물이 되는 텍스트 산업, K-출판산업을 외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물고기 없는 어항만 키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 요청에 대한 문체부의 응답과 관련 보고서가 나와 향후 행정부처들과 국회의 출판산업 조세지원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가 진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출판인회의는 도서제작비 세액 공제가 조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할 것이다.

이 외에 전자책 불법 복제 예방, 출판유통 통합 전산망 고도화, 대여 구독 서비스의 분배율의 합리적 개선 등 작가와 독자와 출판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출판생태계 복원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나갈 예정이다.

Q. 마지막으로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술대학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영상이나 숏폼 콘텐츠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사유와 감수성을 정교하게 따라가는 독서 과정에서의 즐거움도 삶에서 귀하고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행복한 독서를 통해 타인의깊은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놓치지 말고 마음껏 누려보길 바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출판산업이 사양화하는 것이 아닌 전자책이나 새로운 형태의 종이책으로 진화하면서 가장 첨예한 사유를 실어나르는 문화의 전위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유구한 세월을 통해 축적된 책의 문화적 에너지와 매력은 매체의 변화를 넘어서 존재해 왔다. 튼튼한 문화적 기반으로써 책이 가지는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기를 바라고 정부는 출판산업이 K-콘텐츠의 세계화 사업에 가장 핵심적 산업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지하기를 바란다. 책은 문화의 토대이며 동시에 전위이다.

특히 출판산업에서 단행본은 출판의 꽃이다. 이곳에 그 사회의 지성과 문화를 성장시키는 모든 자양분이 녹아있다. 단행본 출판이 타격을 받는 것은 곧 문화적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출판사, 작가, 독자, 정부까지 모든 대내외적 역량을 하나로 모아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독서신문 고재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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