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산
움직이는 산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08.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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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아파트 회색빛 촌에 갇혀 지내서인가 보다. 봄날에 봤던 절의 풍광을 떠올리노라면 갑자기 마음이 환해진다. 첩첩 산중에 위치한 산사의 정경이 눈앞에 아른거려서다. 지난 봄, 봄바람의 훈풍이 산을 가득 채워 마치 초록빛 털실을 풀어놓은 듯 온 산하가 점차 푸른빛으로 출렁일 때다. 부처님 오신 날을 며칠 앞두고 오색 연등이 물결치는 절을 찾았다. 그때 바라본 산사의 모습은 정녕 한 폭 그림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잠시 그 광경에 홀려 걸음을 멈추자 절 처마에 매달린 풍경의 맑은 소리가 나를 반긴다. 

삶을 살며 욕심 보따리를 챙기느라 급급했던 마음이어서일까. 절까지 오르는 동안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대웅전 큰 부처님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니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욕심들이 한 순간에 사라진 듯 머릿속이 개운하다. 이 때 뿐만 아니라 평소 산사에 가면 허공에 높이 매달렸던 마음이 왠지 땅 아래로 한없이 부려지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곤 한다. 

이로보아 깊은 산중에 위치한 절은 찾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위무 받는 느낌이다. 산사 주변 울울창창한 숲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의 경쾌한 물소리는 스님들 독경 소리와 어우러져 가슴 속 속진(俗塵)을 한껏 씻어주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 기분을 며칠 전 도심지에서도 잠깐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노라면 옛 추억을 반추(反芻)하며 삶에 찌든 마음을 헹굴 수 있어 행복하다. 그곳은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살았던 시내 근교 어느 마을이다. 지금은 도심지 개발로 시내근교가 됐지만 당시엔 그야말로 촌(村) 부락(部落)이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치다가 문득 어렸을 때 일들이 그리워서 그곳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연꽃이 온통 뒤덮은 연못이 예전 모습 그대로 마을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 소로(小路)를 따라 자동차로 몇 분 달리자 어린 날 내가 살았던 집터가 어림짐작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옛날 우리 집은 마당이 넓었다. 해마다 어머닌 마당 한가운데에 꽃밭을 일궈 백일홍, 맨드라미, 봉선화, 나팔꽃 등을 심곤 했다. 그리곤 꽃밭 뒤에 널빤지를 세워 바깥에서 집안과 마루가 보이지 않게 가림 막을 설치했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나팔꽃 줄기가 그 가림 막을 타고 한없이 올라가며 보랏빛 꽃을 활짝 피웠던 게 눈에 선하다. 

지금은 그 터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모 건설 회사의 팻말만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옛 집은 이미 헐려 흔적조차 없고, 어린 날의 추억만 흑백 사진처럼 뇌리에 잔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자동차에서 내려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로 들어서자 지난날 기억이 더욱 또렷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마을 앞에 변함없이 산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앞산을 바라보자 

불현듯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여름날 한바탕 소낙비가 쏟아진 후, 비 개인 푸른 산을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노라면 어린 마음에 마을 앞산이 왜 그리 거대하고 웅장한 품새를 지닌 것으로 보였었는지 모르겠다.

옛집 터에 서서 추억에 잠기노라니 환청처럼 봄이면 밤새 울던 소쩍새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오는 듯 했다. 개구리 소리도 들렸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무렵, 보리밭에서 친구와 놀다가 듣던 뻐꾸기 울음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자연의 교향곡이 아낌없이 펼쳐지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친구인 여루와 나의 유일한 놀이터였던 뒷동산엔 큰 봉분의 묘지도 원형 그대로다.이 때  마침 흩뿌리던 장맛비가 개이자, 산허리를 감도는 안개 탓인지 앞산이 성큼 내 앞으로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어린 날에도 그랬다. 마루에 앉아서 비 개인 날 일곱 빛깔 무지개가 걸쳐진 앞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고열로 끙끙 앓을 때 몽롱한 나의 눈에 비친 앞산은 까마득하게 멀리 보이기도 했다. 이 탓에 어린 마음에 나는 산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친구 여루 어머니는 논 가운데 둠벙에서 빨래를 하다가 멀건 죽으로 요기(療飢)한 탓인지 어지럼증으로 곧잘 그 물에 힘없이 ‘풍덩’ 빠지곤 했다. 다행히 물이 얕아 그때마다 여루 어머니는 온몸이 물에 젖은 채 가까스로 풀뿌릴 잡고 땅위로 기어 올라오곤 했다. 그 웅덩이도 감쪽같이 메워져 보이지 않는다.

여루네 집터로 향했다. 그 아이 가족들은 어디론가 떠났고 폐가만 덩그마니 남아있다. 어린 날 여루와 거닐었던 논둑도 사라졌다. 가을날 햇살이 점점 옅어지는 오후 녘으로 기억된다. 마을 앞 논둑에 심어진 대추나무의 붉은 대추를 여루와 나는 옷 앞섶에 가득 따서 뒷산 묘지 뒤에 숨어서 먹곤 했다. 달디 달았던 그 대추 맛은 아직도 입안에 여전히 감도는데 여루는 떠나고 없다. 마을도 휘황한 문명의 빛에 의해 옛 모습이 퇴색됐다. 

산천은 변했으나 마을 앞산과 연못만이 유일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것으로나마 서러운 자위를 삼으며 오늘도 유년시절의 추억을 곱씹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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