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12.0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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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은행에서 압축 통장을 발급 받았다. 이 때 빼곡하게 숫자가 적힌 통장을 가위로 자르노라니 문득 가장의 노고가 떠오른다. 지난 시간 통장의 빈 공란을 살찌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에 생각이 미치자 새벽 일찍 출근해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갑자기 안쓰럽다.

그러고 보니 인생사가 작든 크든 어느 빈 공간을 채우고 얻는 일로부터 삶이 시작되는 셈이라면 지나칠까. 나 역시 태어나면서 출생신고 서식 공란에 이름이 올려졌다. 초등학교 입학 후 부터는 성적표의 빈칸을 의식하며 공부를 해야 했다. 훗날 학교를 졸업해서는 어느 직장 부서의 출근부 한 칸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혼해서는 혼인신고서 용지 빈 란에 한 남성의 아내로서 이름을 올리기 위해 가슴 설레는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결혼해서는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절약과 검박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 그럼에도 결혼 십 여 년 후에 겨우 열 세 평형 서민 아파트를 마련했을 뿐이다. 처음 내 집 장만을 하던 날, 그동안 세 딸들과 셋방살이를 한 탓인지 열세 평형 아파트 공간이 마치 대궐처럼 넓어 보였다. 그 감격이란 이루 말로 형언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와 같이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나 진배없다. 이 공간을 얻기 위해 생의 일 부분을 내 집 마련에 전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내 집을 구입하느라 고혈까지 쥐어짜는 형국이다 보니 오죽하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다는 ‘영 끌’이라는 말조차 회자 될까.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십 수 년을 모아도 구입하기 어려운 비싼 아파트 값은 서민들에겐 이제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나의 경우 어린 날 겪었던 집 없는 설움은 고통 그 자체였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바람기로 가정 형편은 적빈(赤貧)을 헤어나지 못했다. 급기야는 살던 집마저 아버지의 여자 손에 넘어가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졸지에 거리에 나 앉는 신세가 됐다. 하는 수없이 어머닌 가까스로 중랑천 변 뚝 위에 일곱 평 형 무허가 판잣집을 구하게 됐다. 말이 판잣집이지 날만 새면 팔뚝에 노란 완장을 두른 철거 요원들이 들이닥쳐 둔탁한 쇠망치로 집을 부수기 예사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 형제들과 어머닌 부서진 벽돌과 건물 잔해를 주워서 얼기설기 벽을 쌓고 루핑으로 간신히 지붕을 얹곤 했다. 하지만 철거 요원들이 사흘이 멀다않고 찾아와 집을 부수어대어 그나마 우리 가족의 바람막이를 영영 잃고 말았다.

때는 초등학교 육 학 년 겨울철이었다. 머물 곳이 없어 하는 수없이 천막을 구해 중랑천 변 뚝 위에 천막을 치고 지내야 했다. 살을 에는 강추위가 몰아닥쳤다. 하지만 우리는 냉기 도는 땅바닥에 종이 상자 몇 장을 깔고 천막 안에 피운 연탄불의 온기에 언 몸을 의지했다. 이 때 연탄불이 내뿜는 일산화탄소에 취해 온 가족이 생명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생각 끝에 어머닌 당시 미아리에 사는 친척집으로 어린 동생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날 동생들은 친척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채 다시 천막 안으로 되돌아 왔다.

그날 밤 어린 동생들이 추위로 새파랗게 언 손을 ‘호호’ 불며 천막 안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린 마음이지만 굳은 결심을 했었다. 훗날 자라서 부자가 돼서 꼭 친척집처럼 집안에 수영장도 있고 푸른 잔디가 깔린 초호화주택을 짓고 살 것이라는 꿈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태껏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넓디넓은 파란 잔디밭과 호수가 자리해서 어린 시절의 꿈을 적으나마 이룬 셈이랄까.

요즘 뉴스에선 전세난과 하루가 다르게 고공 행진을 하는 도심지 아파트 값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일주일이 멀다않고 자주 거론됐다. 외국에선 일 년에 한두 번 언론에서 다뤄질 부동산 정책이 한국에선 한 달에 수차례씩 언급 한다. 그래서 인지  내가 사는 마을에 위치한 아파트를 바라볼 때마다 왠지 예사롭지 않다. 아파트 동들에 설치된 무수한 창문들이 흡사 인간의 욕망을 한껏 흡인하는 큰 입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 앞에 위치한 호숫가를 산책 하노라면 근처에 신축된 상가가 텅 빈 가게가 많고 인적이 끊어져서인지 흉물스럽다. 어찌 이곳뿐이랴. 코로나 19로 어려움에 처한 동리 인근 상가들이 문 닫는 곳이 속출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점포에선 상인들이 손님의 발길이 뜸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며 생계를 이어갈 준비에 여념이 없다.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가 생겨도 불안한 일상에서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인들 삶의 애환을 헤아려서일까. 얼마 전 뉴스에서는 어떤 착한 임대인이 자신의 건물에 세 든 어려움을 겪는 상인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는 선행을 전해주었다. 이 소식에 새해엔 허욕을 몽땅 내려놓고 이타심이라는 마음의 따뜻한 빈 칸을 가슴 속에 커다랗게 마련하는 한 해가 돼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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