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위무해 주는 한 편의 시
가슴을 위무해 주는 한 편의 시
  • 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20.07.0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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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前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삶이 신산(辛酸)스럽다. 수 개 월 째 코로나19랑 대적(?)하노라니 심신이 지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바쁘다”라는 말이 일상어로 작용했었다. 그 때는 누군가가 만나자고 제의를 해오면 솔직히 눈 저울 질 먼저 하곤 했다. 뿐만 아니라 미처 시간을 낼 수 없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가 매우 적절한 거절 방법이 되기도 했다.

요즘은 사람을 만난다는 게 망설여진다. 또한 전과 달리 바쁜 일도 현저히 줄었다. 아니, 바쁠 일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리라.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느라 집에서 지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집안에서 하릴없이 칩거하련만 어느 일에 대해 성과도 제대로 못 올리고 있다. 오히려 바쁠 때보다 더 집중력도 떨어지고 수시로 의기소침 해진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집안에서 텔레비전 연속극에 심취하기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영화 따위를 보며 천금 같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 예사다. 여러 달 째 행동반경도 줄었건만, 여느 때보다 끼니만큼은 악착같이 챙겨 먹는다. 세 끼 밥 먹은 것 소화라도 시킬 요량으로 시시때때 집안 청소를 해 전과 달리 곳곳이 깨끗하다. 이렇듯 무기력한 나날을 보낼 때 무미건조한 나의 심연에 다소 습윤(濕潤)을 얻는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날 삶의 무게에 짓눌려 바짝 메마른 내면이 적으나마 윤기를 얻게 된 단초(端初)는 다름 아닌 어느 짧은 시에 의해서다. 수 년 전으로 기억된다. 낙엽이 꽃처럼 흩날리던 가을날이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 건물 앞을 우연히 지나치다가 웅장한 건물 외벽에 내걸린 대형 현수막에 눈길이 멎었다. ‘내려 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이라는 단 석 줄 밖에 안 되는  「그 꽃」 이라는 제목의 시에 이끌려서다. 그때는 퍽이나 간략한 시라는 생각이었을 뿐, 별다른 감흥도 없이 발화자인 고은 시인의 높은 필력만 경외했었다.

이즈막 어인일인지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해 입속으로 가만가만 암송하려니 짤막한 시 속에 담긴 심오한 의미에서 불현듯 우주의 원리와 세사만반(世事萬般)에 부딪히는 삶의 이치를 깨우친다. 짧은 문면(文面)에 내재된 웅숭깊은 세상사 내면과 평생을 살은 후에야 체득할 수 있는 삶의 통찰을 이 시는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뒤늦게 체현(體現)했다.

이 때 세상살이의 여러 굴곡을 무사히 밟고 넘어섰다는 안도감마저 든다. 이제껏 숱한 세상 풍파를 겪으면서도 결코 무릎 꿇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바람은 다름 아닌 딸아이들에게 향한 것이었다. 진정 사람답게 키우고 교육 시켜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기를 소망했다. 

나의 소원대로 딸아이들이 반듯하게 성장해 제몫을 다하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인생의 장애물은 아직도 내 앞에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우울했다. 허리 좀 펴고 살만하니, 코로나19가 목숨 줄을 쥐락펴락한다. 지난 시간 소홀했던 주위 사람들을 이제라도 돌아보려고 마음먹었으나 그 관심마저도 역병의 창궐로 희석되고 있다.

하지만 모처럼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을 얻게 돼 다행이다. 마음의 거울을 응시하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동안 온갖 욕망과 허울에 가려졌던 삶의 본질에 대한 실체를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세월, 소중하고 귀한 것들에 대한 겉볼안이 많았다. 이점이 못내 뉘우쳐진다.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느라 정작 소중한 것들을 간과했다. 또한 대의(大義)를 위한 업적도 이룬 게 없다. 빈손인 남편을 만나 아이들 셋을 사회인으로 키운 것 밖에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아 돌이켜보니 지나온 삶의 궤적이 왠지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일쯤이야 여인이라면 누구나 행함직한 일들이 전부이련만, 왜? 유독 나만 그토록 힘겨워 했을까?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르익는다는 말이 맞는 성 싶다. 시 한편을 통해 비로소 인간 삶의 존재해명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이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 걸개 시화전에 적힌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에 탑재된 것은  인생에 대한 교훈이 아니던가. 지난날 신기루만 좇은 우매한 마음자리(心)를 지금이라도 제자리를 찾으라는 경구나 다름없어 불면의 여름밤을 이 시를 암송하며 지새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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