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 유지나 “책과 영화는 제 인생의 중요한 놀이입니다”
[책 읽는 대한민국] 유지나 “책과 영화는 제 인생의 중요한 놀이입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01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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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약속 시간 십오 분 전, 그녀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응답이 없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크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을만했다. 그녀는 제자와 논문 주제로 열띤 토론 중이었다. “일찍 왔네요? 미안하지만 십 분 정도만 양해해줄래요?” 제자와의 소중한 토론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얼른 자리를 비켰다. 그리고 정확한 약속 시간에 맞춰 다시 그녀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90년대는 한국 영화비평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쉬리>(1998)를 전후로 한국영화 산업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영화비평 역시 성행했는데, 유지나는 당시 한국 대중들에겐 낯설었던 페미니즘(feminism)을 영화에 적용해 여성주의 관점의 날카로운 영화비평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를 스크린 밖으로 가져와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 특히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영화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었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촉발한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 #METOO)가 충무로까지 번졌다. 한국영화가 탄생한 지 100년에 이르러서야 충무로가 여성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 유지나는 연예계 최초의 미투였던 ‘장자연 사건’부터 ‘김기덕 논란’까지, 한국영화계의 폭압적인 젠더 시스템에 줄곧 비판의 목소리를 낸 지식인 중 한명이었다. 한국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그녀. 그녀와의 인터뷰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과 맞물려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 같아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Q. ‘책 읽는 대한민국’ 캠페인 명사로 선정됐다.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린다.

A. 명사는 좀 그렇고요. ‘이달의 인물’ 정도가 좋을 것 같네요. (웃음) 저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게 취미였어요. 그 다음이 영화 보는 거랑 음악 듣는 거였죠. 어떻게 보면 이 세 가지가 제 어린 시절 주요한 놀이였습니다. 특히 책과 영화는 직업 특성상 유독 가까이하고 있는 측면이 있죠. 4차, 5차 산업혁명을 거론하고 있는 이때, 여러분들과 책이라는 아날로그적인 개념으로 만나게 돼서 뭔가 고고학적인 거 같고, (웃음) 굉장히 즐겁고, 아무튼 저로선 영광입니다.

Q.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다. 영화를 연구하는 교수이자 90년대 한국의 영화비평 문화를 주도했던 영화평론가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작년부터 시끌벅적했어요. 특히 올해는 행사가 많은데, 특별히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서 “한국영화 걸작 100편을 선정해 달라”는 의뢰가 많았습니다. 제가 기획위원으로 있는 문화전문지 <쿨투라>에서도 100편 뽑는 일을 거의 끝냈고요. 그밖에 세미나와 심포지엄도 많아요. 오는 11월에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임권택 감독님과 김지미 선배와 함께 영화 <티켓>(1986)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에요. 이것도 100주년 이벤트 중 하나죠.

영화의 탄생은 대중 상영과 맞물려있어요.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가 첫 공개됩니다. 영화가 대중 앞에 최초로 상영된 순간이었어요. 한국에선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최초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연극 중간에 활동사진이 삽입된 연쇄극 형태의 ‘키노 드라마’였는데, 그게 바로 <의리적 구토>입니다.

영화는 예술이기도하지만 기술이자 산업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당시 조선인들에겐 새로운 문명이자 문화였죠. 그러니까 한국영화 100년은 서양의 근대 문물이 한국에 대중적으로 소개된 상징적 지표인 셈입니다.

Q. 『여성영화산책』(2002)은 영화를 여성주의 관점으로 독해한 책으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영화비평이 대중들에겐 매우 낯설었다. 단순한 영화비평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까지 짚어낸 글들이었다.

A. 일종의 사명감이나 소명감 같은 게 있었어요. 파리7대학에서 줄리아 크레스테바 선생에게 영화기호학을 배웠는데, 유학 시절에도 그랬고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로 일하면서도 그랬고, 선배·동료 학자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페미니즘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연구와 수업을 많이 했어요. 영화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영화비평의 수많은 방법론 중 하나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그저 열심히 한 거였죠.

그때만 해도 여성문화운동, 특히 영화 쪽엔 여성들을 위한 공론의 장이 많지 않았습니다. 나로선 굉장히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느꼈고, 이미 활동하고 있던 선배들이 저를 끌어들여서 계속 이런 글을 쓰도록 격려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특히 학생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BK21(Brain Korea 21) 사업을 통해 석·박사 학생들과 함께 젠더 및 페미니즘 영화비평 연구를 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학생들 역시 굉장히 좋아했고요.

지금은 예술대학 최초로 ‘예술과 젠더’라는 수업을 개설해 학부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강의를 하고 있어요. 또 서울시나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여러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 강의도 하고 있고요. 저의 이런 활동들이 페미니즘 영화비평을 확산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저로선 굉장히 뿌듯한 일입니다.

Q. 수많은 영화평론가들이 있다. 사람들이 특별히 유지나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뭘까?

A. 한국은 유독 ‘여자답게’, ‘남자답게’를 강조하는데, 그것으로부터 탈주하는 것. 요즘 각광을 받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적인 관점이기도 하죠. 그걸 영화비평 행위로 쏟아냈어요. 비평이라는 게 결국 내 생각을 말하는 거 아니겠어요?

결정적으로는 제가 TV나 라디오 등 여러 방송을 통해 영화 소개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특히 EBS ‘세계의 명화’에서 유럽 영화를 소개하면서 “제2의 정영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웃음)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내게 기회가 왔고, 여성 영화평론가로서는 드물게 공론의 장에 많이 불려 다닌 게 컸던 것 같아요.

또 ‘경단녀’라고 하죠? 그때는 결혼과 육아로 인해 직장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들이 더 많았는데, 제가 교수로서 어떤 경력 단절 없이 지속성을 갖고 영화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부분도 큰 이유 중 하나죠. 저보다 뛰어난 여성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전 운이 좋은 케이스예요. 영화비평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

Q. 1년 전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 바람이 불었다. 연예계 최초의 미투였던 ‘장자연 사건’부터 최근 ‘김기덕 논란’까지, “결국 유지나의 말이 맞았다”는 말이 많다.

A. 장 뤽 고다르가 <영화의 역사(들)>에서 “영화라는 것은 A girl and A gun(여성 그리고 총)이다”라고 했어요. 의미심장한 말이죠. 영화를 보면 실제로 여성과 총이 나와요.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죠. 여기서 총은 남성이자 가부장의 은유죠. 영화에서 여성은 늘 남성의 욕망을 채우는 관음의 대상이었습니다. 영화의 서사는 물론이고 영화 현장, 영화 보기, 영화 콘텐츠 모두 그랬죠. 그래서 ‘벡델 테스트(Bechdel test, 영화 산업에 있어서의 성차별, 특히나 여성이 적게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 고안된 테스트)’가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한국영화가 특히 더 그렇죠. 영화에 여성만 나오면 남성에 의해 강간당하거나 무참히 죽어 나가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런 현상은 스크린 밖에서도 이어지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장자연 사건’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지금 이런 것들이 말끔히 해결됐나요? 정말 많은 수사가 이뤄졌지만 명확한 가해자가 나오지 않았잖아요?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어요. 그 이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34년에 나혜석 선생님이 「이혼고백서」에서 “여성도 인간이다”라고 했던 말이 아직까지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 역시 그렇고요.

난 그런 불합리한 것들이 보여요. 막무가내로 내가 옳다는 게 아니라 그저 보인다는 겁니다. 책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책이 나의 롤모델입니다. 영화가 예술이고, 예술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일인데, 저도 지식인으로서 미지의 영역 개척해야죠. 우리가 기성세대의 고정 관념을 따라가려고 공부하나요?

Q. 최근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이슈가 뜨겁다. 소위 ‘가짜 페미니스트’들도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그런 분들은 어느 영역에나 다 있어요. 명품도 가짜가 많잖아요? (웃음) 인류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없어지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고, 그래서 공부가 중요한 겁니다. 공부의 물질적 근거가 책이잖아요. 독서. 그러니까 제가 <독서신문>이랑 인터뷰하는 거예요. (웃음) 가짜 혹은 시장 페미니즘 같은 것들도 결국엔 다 올바른 과정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이자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인류의 자양분인 책을 끊임없이 읽어야 해요, 원래 인간은 여러 실패와 자충수 사이에서 성장하는 거니까요.

Q. 최근 수업이나 강연 등에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정신을 강조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또 ‘호모 루덴스’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책과 영화가 있다면 추천 부탁드린다.

A. 저 자신도 한국사회를 살아가면서 큰 아픔을 겪었어요. ‘장자연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들이 참 많았죠. 저는 이 사회의 지식인이라 말할 수 있는 권력이라도 있지만,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특히 우리 사회의 힘없는 여성들의 죽음을 목도할 땐 참 살기가 싫었어요. 한때 너무 살기가 싫어서 본 책이 바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쓴 『호모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입니다. 저는 원래 몸이 약하고, 2013년엔 뇌수술을 크게 받았는데 그때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어요.

인생은 하루살이고, 드넓은 우주의 먼지와 같죠. 그래서 놀아야 합니다. 라틴어로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하죠. 젊은 친구들과 영화를 공부하는 게 제 인생의 주요한 놀이입니다. 왜 놀아야 하냐고요? 아프니까 놀아야죠. 파리 유학 시절, 2년 정도 영국 브라이튼으로 건너가 박사 논문을 썼어요. 그때 우연히 백남준 선생의 전시회를 보게 됐죠. 그 전시회에 쓰인 문구가 “I invented the play to entertain myself.” 이게 백남준 선생의 말씀인데, “나는 내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그 놀이를 발명했다.” 자기 인생론을 그대로 담은 문장이죠. 백남준 선생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너무 힘들었죠. 그래서 놀이를 개발했고, 그게 결국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디오 아트로 이어지게 됐죠. 놀이는 내가 개발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어요.

아무튼 백남준 선생의 전시회를 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왜 프랑스까지 와서 불어로 어려운 박사논문을 쓸까. 나는 그저 프랑스 문학과 영화를 좋아하는데, 지적인 허영심 때문일까? 나는 지식인이 되고 싶은데 이건 일종의 자격증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 내가 즐겁게 살려면 논문을 써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남은 유학 시절을 버텼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제자와 논문 작업을 할 때도 즐거운 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호모 루덴스 정신이죠.

앞서도 말했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참 많이 배웁니다. 저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저와는 굉장히 다른 환경들, 그러니까 저보다 훨씬 더 ‘여자답게’를 강요받고 그걸 물리치지 못한 젊은 친구들의 고통을 시나리오 수업을 통해 알게 됐어요.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갈등을 만들어야하는데, 보면 과반수가 항상 가족 문제를 갈등으로 삼더라고요.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8) 다 마찬가지죠. <벌새>의 식탁은 우리 집의 식탁과 달랐어요. 영화를 통해 한국의 가부장적 식탁이 뭔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소공녀>(2018)같은 탈주자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이라는 책도 추천 드려요. 특정한 가치나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 가려는 사고방식. 그게 바로 탈주적 노마디즘(nomadisme)이죠. 영화로는 <바베트의 만찬>(1987), <로큰롤 인생>(2007), <언터처블: 1%의 우정>(2011) 등이 있어요. <언터처블: 1%의 우정>의 경우, 돈은 많지만 신체가 불편한 백인 남성과 가진 거라곤 건강한 신체뿐인 흑인 남성의 우정을 그린 영환데요. 둘은 서로의 ‘결여’를 채우며 관객들에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그게 바로 호모 루덴스죠.

Q. 교수, 영화평론가, 페미니스트 등 여러 수식어와 직함을 달고 살았다. 남은 인생은 ‘어떤 유지나’로 살고 싶나?

A.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앞서 언급한 ‘노마딕’한 호모 루덴스죠. 정체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싶어요. 물은 고이면 썩죠? 계속 흘러야 합니다. 사람의 몸에 피가 흐르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말이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걸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참 고마워요. 정체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는 가장 큰 요인이거든요.

Q. 어린 시절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독서신문>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

A. 장 발장을 좋아했어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이죠. 장 발장을 보면, 어떤 거대한 규모가 느껴져요. 세상은 너무도 어두운데 거기에 밝은 빛 하나가 있는 느낌.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소공녀』 역시 마찬가지죠. 한 소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제가 만화광이라 모리스 르블랑의 작품에 나오는 아르센 뤼팽도 좋아합니다. 아주 입체적인 도둑이에요. 괴도(怪盜) 루팡이라고도 하죠.

10대 시절엔 이상(李箱)의 『날개』와 『오감도』를 즐겨 읽었어요. 한국 문인 중에 특히 이상을 좋아하는데, 제게 문학적 상상력이 뭔지, 왜 예술을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줍니다. 제가 지루한 걸 안 좋아하는데, 영화로는 클리셰(cliché)라고 하죠? 이상의 작품들은 지루하지가 않아서 좋아요. 고다르 영화 역시 마찬가지죠. 그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지적인 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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