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⑥]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문학기행 ⑥]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7.22 0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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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글을 읽고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 상상을 실제 상황과 맞춰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이지요. 저자가 처했던 상황, 시대 배경 등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됩니다. <독서신문>이 근현대 문학 배경지를 찾는 기행을 시작합니다.

■ 시리즈 기사 연재 순서
“누가 나라를 뺏기라고 했나”... 문학기행 ① – 조정래의 『아리랑』
“생명의 땅 평사리는 인간의 탐욕을 나무라지만”... 문학기행 ② – 박경리의 『토지』
“쓸모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다”… 문학기행 ③ –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절대 고독에서 만난 반가움과 사랑” 문학기행 ④ – 변경섭의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문학기행 ⑤ – 심훈의 『상록수』

[사진=플랫컴]

가산(可山) 이효석은 1930~4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소설가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사회주의’와 ‘자연주의’ 그리고 ‘심미주의’다. 이효석은 고등학교 시절 대중을 계몽하는 참여문학 성격의 러시아 소설을 즐겨 읽었다. 특히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비롯한 객관주의 문학론에 관심을 두었다. 이효석의 이러한 경향은 『도시와 유령』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이효석문학관 앞에 설치된 이효석 좌상 [사진=플랫컴]

현명한 독자여! 무엇을 주저하는가. 이 중하고도 큰 문제는 독자의 자각과 지혜의 힘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도시와 유령』 中

『도시와 유령』은 이효석이 192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현실에 대한 독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선전‧선동적 성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포함하여 이효석이 초기에 썼던 여러 단편을 살펴보면, 당시 그가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유진오, 채만식 등과 함께 ‘동반자 작가’로 불렸다. 동반자 작가란 1930년대 전후에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동조한 작가들을 총칭한다.

이효석은 대학 졸업 후에 취직이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1931년에 고등학교 은사의 도움으로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 검열계에 취직한다. 하지만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맹원으로 활동하던 비평가 이갑기로부터 거센 지탄을 받고, 보름 정도 근무하다가 나오게 된다. 검열계에 취직한 이력은 이효석 인생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았다. 동료들의 비난으로 큰 충격에 빠져 2년 가까이 절필했던 이효석은 1933년에 김기림, 김유영, 유치진, 정지용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학단체인 ‘구인회’에 참여하면서 이념성을 탈피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 이효석이 발표한 소설들은 주로 사회주의 이념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회의적인 견해를 밝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러한 시각이 잘 드러난 작품은 사회주의 운동을 매개로 만난 남녀가 운동보다는 애정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오리온과 능금』, 좌익운동을 하는 여성이 남성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연애 소설인 『주리야』 등이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사회주의 의식을 벗어난 흥미 위주의 서사 구조를 보이는 작품들이다.

이효석문학관 내부 [사진=플랫컴]

하늘의 별이 와르르 얼굴 위에 쏟아질 듯싶게 가까웠다 멀어졌다 한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어느 결엔지 별을 세이고 있었다. … 중실은 제 몸이 스스로 별이 됨을 느꼈다. 『산』 中

1935년을 전후하여 이효석은 본격적으로 자연과 사랑을 소재로 한 순수문학의 세계로 접어든다. 당시에 그가 발표한 소설들에서 이데올로기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다. 한때 열렬하게 추종하던 좌익 이데올로기를 등한시하고, 퇴폐적인 생활에 빠진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미 병들다』와 주인공이 산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이 별이 되는 듯한 환상에 빠져서 사랑하는 여자를 그리워하는 『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조광』에 실린 『메밀 꽃 필 무렵』 [사진=플랫컴]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메밀 꽃 필 무렵』이다. 이 작품은 1936년 10월, 조선일보에서 월간으로 발표했던 잡지 『조광』에 실린 소설이다. 이효석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배경으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효석의 자연친화적인 사상이 시적인 문체로 유려하게 표상된 작품이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이 봉평의 토착적인 자연미와 마침맞게 결합한 소설로, 사랑에 대한 이효석의 관능적이면서도 탐미적인 성향이 잘 드러난다.

봉평 장터를 재현한 전시. [사진=플랫컴]

소설의 주인공은 허생원이다. 그는 늘 허탕만 치는 봉평장을 정기적으로 찾는다. 왜냐하면 젊은 시절, 자신과 하룻밤을 보낸 성서방네 처녀와의 추억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허생원은 우연히 봉평장에서 동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동이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 허생원은 그와 함께 메밀꽃이 핀 달밤을 걸으면서 성서방네 처녀와의 추억을 털어놓는다. 동이 또한 허생원에게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그 순간 허생원은 동이의 어머니가 성서방네 처녀이며, 동이가 제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다.

1972년 10월에 발간된 『문학사상』 창간호. 『메밀 꽃 필 무렵』이 실화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플랫컴]
1977년 10월 9일에 발행된 <독서신문>. 서재에서 쇼팽을 치며 창작에 전념했던 이효석의 취향에 대한 차녀 이유미의 회고록이 실려 있다. [사진=플랫컴] 

봉평에 위치한 이효석문학관에는 『메밀 꽃 필 무렵』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자료는 이 소설이 실화였다고 기록된 『문학사상』 창간호다. 문학관에 근무하는 한경주 해설사는 “소설이 100%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효석이 허생원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하는 데 도움을 준 실제 인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봉평장에는 허생원과 동이가 처음 만났던 충줏집 주막이 있다. 원래 주막은 봉평장 입구에 있었으나 현재 가산공원 내에 복원하였고, 예전 자리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 근처에는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하룻밤을 지냈던 물레방앗간도 복원되어 있다.

『메밀 꽃 필 무렵』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각색한 영화 대본 [사진=플랫컴]

또한 전시관에는 영화감독 이성구가 『메밀 꽃 필 무렵』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각색한 영화 대본이 전시되어 있다. 허생원 역에 박노식, 동이 역에 이순재, 성서방네 처녀 역에 김지미가 맡아 열연했다. 1960년대에는 원작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문예영화의 붐이 일었다.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각본이 필요했는데, 그 각본을 만들기 위해 명작 소설이 활용됐다. 이성구는 그중에서도 향토적 서정성이 짙게 묻어나는 『메밀 꽃 필 무렵』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이다. 영화는 실제 봉평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60년대 평창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효석달빛언덕에 위치한 꿈꾸는 달 카페에 그려진 『메밀 꽃 필 무렵』 일러스트 [사진=플랫컴]
허생원이 조선달과 동이와 함께 봉평장에서 대화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전시. [사진=플랫컴]

주지하다시피 『메밀 꽃 필 무렵』은 한국 서정소설의 대표작으로 거론된다. 특히 한국에서 여름밤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소설가는 아마도 이효석일 것이다. 그는 『메밀 꽃 필 무렵』에서 무더운 여름날, 허생원과 동이가 함께 봉평장을 벗어나 대화장으로 가는 달밤의 여정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 꽃 필 무렵』 中

김미영 숭실대학교 교수는 “후반기 그의 대표작인 『모밀꽃 필 무렵』에 대해서 많은 문학연구자들은 ‘아름다운 시적 문체의 서정소설’이란 평가를 내려왔다. 문학연구자들이 『모밀꽃 필 무렵』을 서정소설로 보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시적 문체’였던 것”이라며 “기존의 문학연구자들이 이 작품의 문체를 ‘詩的’이라는 판단한 근거는, 이 작품이 동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비유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첩어형 부사나 형용사의 구사가 개성적이며, 반복적 구조의 문장을 자주 활용하여 전반적으로 감각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효석달빛언덕에 위치한 복원생가. [사진=플랫컴]
복원생가 근처에 위치한 실제 생가터. 원래 있던 집을 헐고 다시 지어 옛날의 모습은 사라졌다. [사진=플랫컴]

“이 서러운 소문과 비방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뜻은 더욱 굳어가서 드디어 결혼을 결의하게 되었다는 것. 여주인공이 잠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마치 육체의 일부분을 베어내는 듯 남주인공의 마음은 피가 돋아날 지경으로 아팠다.” 『일요일』 中

1940년에 이효석은 아내와 차남 영주를 잃고 큰 절망에 빠진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그는 심미주의 경향을 심화 시켜 인간의 애정 문제를 소설의 중요한 화두로 삼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는 주인공이 한 여자를 만나 금방 사랑에 빠지며 맹목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내용의 『풀잎』과 상식과 악의에 대한 항의, 사랑의 자유의지 옹호를 테마로 쓴 소설 『일요일』 등이 있다. 아내와 사별하고 2년 뒤, 이효석은 36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성 뇌막염으로 타계한다.

이효석의 방을 재현한 전시. 이 창작실은 클래식과 피아노, 프랑스 영화를 좋아했던 이효석의 취향을 잘 보여준다. [사진=플랫컴] 

이효석은 불합리한 시대에 적극적으로 항거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대로 살고자 했던 자유로운 예술인에 가깝다.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진오는 『이효석과 나』에서 “의복 같은 것도 그때의 효석은 대단히 스마트하게 차려입고 다녔다”며 “구두는 여자 구두 모양으로 나비 형상의 장식을 붙인 것을 신곤 하였다”고 회고했다. 한흑구도 “이효석은 옷도 서구적인 것을 좋아했고 꽃도 나무도 서구적인 것을 사랑했고 음식도 서구적인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효석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문인들의 증언처럼, 그는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했던 모더니스트였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맨 보헤미안이었다. 정착하는 삶을 거부하고,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했던 이효석은 일종의 코스모폴리탄적 유형의 인간이었다. 특히 그는 섬세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이효석의 성격은 그가 소설에서 인간의 심리묘사와 자연의 정경묘사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효석달빛언덕에서 촬영한 메밀꽃 [사진=플랫컴]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효석문학관에는 이효석이 얼마나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는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문학관 주위에는 문학정원, 메밀꽃길, 오솔길 등이 있고, 특히 문학의 숲은 『메밀꽃 필 무렵』을 테마로 한 자연학습장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이 외에도 이효석 복원생가, 푸른집, 근대문학체험관, 달빛나귀전망대 등이 조성된 효석달빛언덕을 포함하여 가산공원, 물레방앗간 등은 봉평 효석문화마을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처럼, 봉평은 메밀꽃이 흐드러진, 여름날의 달밤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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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붓한 2021-08-01 21:37:55
원문에는 '흐뭇한'이 아니라 '흐붓한'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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