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③]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쓸모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다”…
[문학기행 ③] 조두진의 『북성로의 밤』 “쓸모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6.1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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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글을 읽고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가슴을 두드립니다. 그 상상을 실제 상황과 맞춰보는 것은 또다른 재미이지요. 저자가 처했던 상황, 시대 배경 등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모티브가 됩니다. <독서신문>이 근현대 문학 배경지를 찾는 기행을 시작합니다.

■ 시리즈 기사 연재 순서
“누가 나라를 뺏기라고 했나”... 문학기행 ① – 조정래의 『아리랑』
“생명의 땅 평사리는 인간의 탐욕을 나무라지만”... 문학기행 ② – 박경리의 『토지』
“절대 고독에서 만난 반가움과 사랑” 문학기행 ④ – 변경섭의 『자작나무 숲에 눈이 내린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문학기행 ⑤ - 심훈의 『상록수』

대구 향촌문화관에 전시된 1930년대 북성로 야경 사진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일제는 1906년 대구읍성을 허물고 성곽이 있던 자리에 신작로를 냈다. 대구의 4성로(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가운데 북성로는 일제강점기에 대구의 중심 거리로 성장했다. 당시 북성로에는 철물점과 제화점, 양복점 등 일본인이 운영하는 상점들로 즐비했다. 그래서 북성로의 밤은 언제나 대낮처럼 환했다. 1933년 일본상인 나카에 도미주로가 건립한, 대구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던 북성로의 ‘미나카이 백화점’도 빼놓을 수 없다.

대구 향촌문화관에 전시된 1934년의 북성로 미나카이 백화점 사진
미나카이 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현재는 유료주차장과 여러 기계설비점들이 들어섰다.

조두진의 소설 『북성로의 밤』은 1940년대 북성로에 자리한 미나카이 백화점을 배경으로 개화기 대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미나카이 백화점은 4층짜리 벽돌 건물로, 당시 단층 한옥이 대부분이었던 대구 전역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지어졌다. 소설은 백화점 배달부인 노정주와 백화점 사장의 딸 나카에 아나코의 사랑을 한 축으로, 또 노정주의 사촌 형이자 순사로 일하는 노태영과 독립운동을 하는 노치영 형제의 갈등을 다른 한 축으로 삼으며 전개된다. 조두진은 이 두 축을 교차시키며 식민 지배의 참담한 현실과 비극적인 사랑,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무수한 개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파한다.

조두진 작가

조두진은 1967년생으로 대구 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에서 25년 기자 생활을 한 언론인 겸 작가이다. 일본군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담은 『도모유키』로 2005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장편소설 『능소화』 『유이화』 『아버지의 오토바이』 등을 펴내며 기자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소설을 펴냈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KTX를 타고 대구로 내려가 조두진을 만났다. 그는 『북성로의 밤』으로 욕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던 노태영과 미나카이 백화점을 운영하며 조선에서 부를 일구었던 나카에의 입장에서, 어떤 면에서는 그 행적을 미화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소설가로서 그들의 삶에도 나름대로 어려움과 딜레마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의 입장에서 당시 조선 사회의 생활상을 그려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너는 일본 순사도 불순분자도 되지 마라.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라. 있으면 먹고, 없으면 차라리 굶어라. (중략) 쓸모가 없어야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야 쓸모가 있는 것이다. (중략) 있는 듯 없는 듯 살아라. 지금은 살아남는 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이다.” - <69~70쪽> 노태영 曰

그가 “욕도 많이 먹었다”고 말한 것처럼 『북성로의 밤』은 문제작이다. 조선인의 정서를 담지하고 있는 노정주와 노치영을 배경으로 돌리고, 내지인으로서 조선인을 수탈했던 나카에 집안과 친일파로 살며 독립운동가를 가혹하게 탄압했던 노태영의 심리 묘사에 더욱 천착했기 때문이다.

조두진은 “조선인 순사 노태영이 일본인 순사들보다 조선인을 더 가혹하게 대했던 것은 그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순사라면 그냥 눈감고 넘겨도 그만일 ‘조선인의 작은 불순행위’마저도, 조선인 순사였던 노태영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것은 노태영 개인의 심성이 악독하거나 조선인 일반의 심성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조선인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드리워진 불행한 숙명이었다. 일본인 순사는 ‘봐주면’ 너그러운 인품으로 평가 받을 일을, 조선인 순사가 봐주면 사상을 의심 받는다. 그것은 노태영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그런 숙명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나코에 대해서는 “조선인과 사랑에 빠진 아나코는 일본인이지만 조선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배척받았던 인물”이라며 “그들은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다. 나는 민족이라는 거대 서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개인의 편에서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향촌동 일대의 여러 다방과 음악감상실 등에서 문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북성로의 밤』은 대구 근대화 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소설이다. 조두진은 “북성로는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뒤인 1970년대까지 4성로 중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 그러나 대구의 도심 개발 축이 동성로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북성로는 낙후 지역으로 남았다”며 “700미터 남짓 일자로 뻗어 있는 북성로에는 성벽으로 설명할 수 있는 왕조 국가의 특징과 신작로로 설명할 수 있는 제국주의 상업 국가의 속성, 지배와 피지배, 번영과 쇠락, 만남과 이별, 근대와 전근대가 모두 녹아 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북성로는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문화예술인들의 사교와 문화예술활동의 거리로 탈바꿈했다. 시인 구상, 화가 이중섭 등 많은 예술가가 지역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했는데, 그들이 발자취가 담긴 장소들이 북성로 곳곳에 남아 있다. 북성로 좁은 골목에는 옛 백록다방 터가 표시되어 있다. 당시 이중섭이 백록다방에서 담배 은박지에 못을 꾹꾹 눌러 그림을 그렸으나 그때는 아무도 그 가치를 몰랐다고 전해진다.

산업화 시절에는 전국 최대의 공구골목으로 위상을 떨쳤다. 당시 북성로에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깡통이나 트럼통으로 수도관이나 리어카 바퀴 등을 만드는 철물가게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고, 그와 함께 기계공구상들이 자리 잡게 되면서 철물 거리로 바뀌었다. 이토록 번화했던 북성로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에도 북성로에는 공구골목이 남아있다.

경상감영공원

북성로와 연결된 경상감영길을 따라 내려오면 경상감영공원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각 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여 지방 통치를 맡게 했는데, 대구 경상감영은 조선후기 경상도를 다스리던 지방관청으로 관찰사가 기거했던 곳이다. 소설에서 경상감영공원은 노정주와 아나코가 광복 이후 22년 만에 재회했던 장소로 등장한다.

대구근대역사관

경상감영공원 바로 옆에는 대구근대역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대구근대역사관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건립되었으며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이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관 건물은 원형이 잘 보존돼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됐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박물관에는 근대기 대구의 모습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상설전시장과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 등을 갖추고 있다.

대구중부경찰서

대구근대역사관 바로 옆에는 대구중부경찰서가 있다. 이곳은 1895년 경상감영 서편에 설립돼 1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소설 속에서는 대구부 경찰서 순사부장 노태영이 근무했던 장소로 나온다.

미나카이 백화점의 외관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무영당.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경상감영길과 서성로가 이어지는 교차로 근처에는 ‘무영당’이 있다. 무영당은 조선인 자본가 이근무가 건립했는데, 일본 자본이 아닌 조선 자본으로 세워진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다. 미나카이 백화점과 크기가 달랐을 뿐 모양과 디자인은 흡사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대구시는 노후 주택가를 중심으로 한 주민 참여형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인 ‘2021 어반그레이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무영당을 시민들이 활동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근무가 끝날 무렵 다시 찾아온 노태영은 정주를 향촌동의 선술집 ‘고노에’로 데려갔다. 동서로 뻗은 북성로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친 향촌동 좁은 골목에는 양쪽으로 식당, 요릿집, 영화관, 여관, 세탁소, 옷가게, 카페, 양화점과 온갖 술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한밤중인데도 향촌동 거리는 불야성이었다.” - <29쪽>

대구근대역사관과 대구중부경찰서 사이의 길을 걷다 보면 서성로와 교동길, 중앙대로가 이어지는 곳에 향촌문화관이 나온다. 앞선 언급처럼 한국전쟁 기간에 향촌동과 북성로는 ‘문화예술인들의 거리’였다. 음악가 김동진·나운영·권태호를 비롯해 연예인 신상옥·장민호·최은희, 화가 권옥연·김환기·이중섭 등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온 문화예술인들이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쏟았던 곳이다. 특히 중앙통에 자리 잡았던 대구 미국공보원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출판기념회 및 작곡발표회 등 각종 교류 사업이 활발하게 열렸다.

아직도 북성로에는 일본식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쇠락한 공구골목 건너편에는 현재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조두진은 “나이가 많은 분들을 제외하면, 대구 사람들 중에도 북성로와 미나카이 백화점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북성로에 불어오는 개발 바람과 함께 이제 역사적 흔적들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며 “사람이든 건물이든 도로든 세월을 비껴 갈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북성로가 옛 이야기들을 간직하면서 거듭났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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